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열린 2심(연방 제2순회항소법원) 심리에서 아르헨티나 정부가 2012년 국유화한 국영 석유기업 YPF S.A.를 둘러싼 161억 달러(약 22조 원) 규모 손해배상 판결의 미국 내 관할권이 정당한지에 대한 날 선 질문이 쏟아졌다.
2025년 10월 29일,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세 명으로 구성된 항소부 재판부 가운데 최소 두 명의 판사가 “이 사건이 과연 미국 법원이 다룰 사안이 맞느냐”는 논점을 집중 부각하며 1심 판결 파기 여부를 심도 있게 검토했다.
쟁점은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1심)이 2023년 9월 YPF 소수주주 두 곳에 총 161억 달러를 지급하라고 명령한 판결의 법적 타당성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유화 조치는 자국 공공정책에 관한 사안”이라며 부당이득과 계약위반 여부를 판단할 실질적 연결고리가 아르헨티나에 존재한다고 주장해 왔다.
판사들의 질문은 관할권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민상법(Civil and Commercial Code) 해석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두 명의 판사는 “뉴욕 법원이 아르헨티나 법령을 원용해 거액 배상을 명령한 근거가 충분했는지 의문”이라며 “국가주권적 행위(acta jure imperii)로 볼 여지도 크다”고 지적했다.
반면 소수주주 측 대리인은 “배당정책·주식매입 의무 위반이 뉴욕 증시에 상장된 YPF ADR 투자자에게 직접 손해를 끼쳤다”는 점을 들어 국제 자본시장법 적용이 불가피하다고 반박했다. 양측 모두 ‘주권면책’(Foreign Sovereign Immunities Act)과 ‘포럼 부적합’(forum non conveniens) 등의 쟁점을 두고 날카로운 설전을 벌였다.
판결 배경
• 2012년 4월: 아르헨티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정부, YPF 지분 51% 국유화 발표
• 2023년 9월: 뉴욕 연방지법, 소수주주 두 곳에 161억 달러 배상 판결
• 2025년 10월 29일: 항소심 구두변론 진행
이번 소송의 자금줄은 런던 상장 버포드 캐피털(Burford Capital Ltd.)이다. 버포드는 소송 투자 전문회사(litigation funding firm)로, 민사소송 당사자에게 소송비를 대납해 주고 승소 시 배상금 일부를 돌려받는 구조다. 회사 측은 “이번 사건에 투입한 자금이 약 4억 달러”라고 밝힌 바 있으며, 1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수십억 달러를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돼 왔다.
그러나 이날 두 판사의 비판적 발언 직후 버포드 캐피털 주가는 런던 증시에서 10% 넘게 급락했다. 투자자들은 항소심이 1심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을 민감하게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관할권 쟁점을 둘러싼 논의는 국제 투자분쟁에서 자주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포럼 쇼핑’이라 불리는 전략적 제소지 선택은 원고에게 유리한 법원과 배심원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번 사안에서도 소수주주 측이 “미국 투자자 보호”를 명분 삼아 뉴욕 법원을 택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항소심을 거쳐 상고 절차를 밟을 여지도 남아 있다. 만약 연방대법원(US Supreme Court)까지 갈 경우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 수년이 소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장 관측통들은 “향후 판결이 동일한 유형의 국가주도 국유화 손배소에 선례로 작용할 것”이라며, 신흥국 공기업에 투자한 글로벌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리스크 관리가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법조계에서는 ‘관할권 적정성’ 판결과 ‘실체적 손해’ 인정을 분리해 판단할 필요성이 강조된다. 만일 관할권 결함이 인정될 경우, 사건은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상업법원 등 국내 사법체계로 이송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기존 1심 판결은 사실상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미국 항소법원의 최종 판단은 161억 달러 상당의 배상금뿐 아니라 국제 자본 이동, 신흥국 투자 환경, 그리고 소송 투자 산업 전반에 걸쳐 중대 변곡점을 형성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