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전문기자 조앤 김】 미국의 투자등급(investment-grade) 대기업들이 올해 들어 인수합병(M&A) 자금을 조달할 때 전통적인 회사채 발행보다 자사주(주식)와 보유 현금을 더 많이 사용하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2025년 8월 5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은행권과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은 “금리가 여전히 높은 데다 등급 강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부채를 통한 조달 매력이 떨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최대 화제가 된 사례는 철도 운영사 유니언 퍼시픽(Union Pacific)이 경쟁사 노퍽 서던(Norfolk Southern)을 약 8,50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한 건이다. 애널리스트들은 전체 거래금액 가운데 주식이 대부분이고, 현금 일부와 부채 150억~200억 달러만 조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북미 철도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 거래가 될 가능성이 높다.
1. 주식·현금 선택이 늘어나는 배경
“지금은 부채보다 주식이 더 매력적인 시기다.” — 피어스 로넌(Piers Ronan) 트루이스트 증권 공동 본부장
애틀랜타에 본사를 둔 투자은행 트루이스트(Truist) 증권의 로넌 공동 본부장은 “과거에는 세전 기준 비용 차이가 뚜렷해 부채가 유리했지만, 주식과 부채의 비용 격차가 크게 좁혀지면서 주주가치 훼손 없이 주식 발행으로 거래를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LSEG 자료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M&A 전체 자금조달의 11%인 2,500억 달러가 순수 주식으로 이뤄졌고, 15.3%는 현금 + 주식 혼합 구조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주식이 차지한 비중이 14%(4,410억 달러), 현금·주식 혼합이 7%에 불과했다.
2. 회사채 발행 부담과 등급 강등 위험
미국 대기업 상당수는 견조한 실적과 자유현금흐름(free cash flow) 덕분에 굳이 부채를 늘리지 않아도 M&A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 소재 자산운용사 페이든앤드리겔(Payden & Rygel)의 나탈리 트레비식(Natalie Trevithick) 전략본부장은 “탄탄한 현금창출력이 ‘주식 활용 확대·부채 의존 축소’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유니언 퍼시픽처럼 거래규모가 큰 기업은 조달 과정에서 신용평가사의 예의주시를 피하기 어렵다. 무디스, S&P, 피치는 “이번 거래로 레버리지(차입 규모)가 확대될 경우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매디슨 인베스트먼트(Madison Investments) 채권부문 책임자 마이크 샌더스(Mike Sanders)는 “등급 강등은 회사채 세컨더리 마켓(유통시장) 가격을 크게 흔들어 유동성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Warner Bros Discovery)가 기업 분할 발표 후 ‘투기등급(정크)’으로 내려앉으며 회사채가 급락한 사례를 예로 들었다.
3. 시장 지표와 내년 전망
*Bps(베이시스 포인트): 1bp는 0.01%p
ICE BofA 투자등급 회사채 지수에 따르면, 회사채 스프레드는 최근 82bp로 1998년 기록한 77bp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근접했다. 스프레드가 좁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신용 위험을 낮게 평가한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발행사 입장에서는 자금조달 비용이 과거만큼 저렴하지 않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미네아폴리스에 본사를 둔 US Bank의 카일 스테게마이어(Kyle Stegemeyer) 본부장은 “2025년 M&A 관련 투자등급 회사채 신규 공급이 2,2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올해 남은 기간에 다국적 대형 M&A가 성사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어, 2024년 1조5,000억 달러에 달했던 발행 규모에 못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4. 용어·배경 설명
투자등급(Investment-Grade)은 무디스 Baa3, S&P·피치 BBB- 이상을 의미한다. 이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정크본드(고수익·고위험 채권)’로 분류돼 차입 비용이 급증한다.
자유현금흐름(Free Cash Flow)은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에서 설비투자(CAPEX) 등을 제외하고 남은 잉여 현금이다. 인수대금, 배당, 자사주매입 등 주주환원 정책에 쓰인다.
스프레드(Spread)는 동일 만기의 무위험 자산(미 국채) 대비 회사채 금리 차이를 뜻한다. 좁을수록 시장이 해당 기업의 부도 위험을 낮게 본다.
5. 기자 시각
이번 사례는 ‘고금리 환경에서 레버리지 축소·재무 안전판 강화’라는 기업 재무전략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3%대 저금리가 당연시되던 시기에 비해, 지금은 자사주 활용과 현금 비축을 통해 위험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북미 철도업계처럼 규제 장벽이 높고 경쟁사가 제한적인 산업에서는 대규모 통합이 ‘규모의 경제’와 ‘노선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지만, 그만큼 독과점 이슈와 정책 리스크도 뒤따른다.
향후 미 연준(Fed)이 금리를 몇 차례 인하하더라도, 기업들이 바로 회사채 발행으로 회귀할지는 미지수다. 시장은 펀더멘털 개선 못지않게 규제 환경, ESG 요구, 그리고 주주 행동주의를 함께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M&A 자금조달 구조의 다변화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