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Reuters) — 미국 하원의 초당적 의원 그룹이 CHIPS법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이 중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향후 10년간 구매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법안을 목요일(현지시간) 발의했다. 이번 조치는 첨단 노광장비부터 웨이퍼 절단·패키징 장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장비 군을 포괄 대상으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2025년 11월 2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 법안은 CHIPS법 보조금 수혜를 조건으로 중국에서 생산된 반도체 장비의 미국 내 구매를 10년 동안 차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안은 수입 제한 대상을 특정 기업이 아닌 ‘장비 범주’ 중심으로 설계해, 기술 발전과 장비 라인업 변화를 고려한 유연한 적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법안은 네덜란드 제조사 ASML이 생산하는 것과 같은 복잡한 리소그래피(노광) 장비에서부터, 칩이 인쇄되는 실리콘 웨이퍼를 슬라이싱(slicing)·다이싱(dicing)하는 기계까지 제조 공정 전반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를 폭넓게 겨냥한다. 이는 첨단·성숙 공정을 가리지 않고 장비 의존 구조 자체를 재편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하원 법안은 공화당의 제이 오버놀트(Jay Obernolte) 의원과 민주당의 조이 로프그렌(Zoe Lofgren) 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상원에서는 민주당의 마크 켈리(Mark Kelly) 의원과 공화당의 마샤 블랙번(Marsha Blackburn) 의원이 12월 중 동종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여야가 함께 참여한 초당적 입법이라는 점에서 정책 추진력에 무게가 실린다.
CHIPS법은 바이든 행정부 아래인 2022년 제정돼,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역량 강화를 목표로 390억 달러를 배정했다. 이 예산은 신규 팹(fab) 건설과 기존 시설 확장을 촉진하는 데 투입되도록 설계됐다.
이 법에 따라 인텔(Intel),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전자(Samsung Electronics) 등이 보조금을 받았다.
다만 미국은 이후 인텔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지분 참여(equity stake)’ 형태로 전환했다고 보도는 전했다.
이는 보조금 운용 방식이 현금 지원에만 국한되지 않고 투자 참여로도 전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의원들이 제공한 배경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반도체 산업, 특히 제조 장비 분야에 4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왔으며, 이 분야의 시장점유율이 상당폭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자료는 장비 생태계에서 중국의 위상이 빠르게 커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의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대중(對中) 수출 제한이 매출 감소와 R&D 투자 여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여기에 CHIPS 보조금으로 중국산 장비를 구매하는 관행이 더해지며 정책 목표와 산업 구조 간 괴리가 발생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번 법안은 바로 그 충돌을 해소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미국의 주요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는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pplied Materials), 램리서치(Lam Research), KLA가 꼽힌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 위치를 점하는 이들 기업은 대중 수출 규제와 내수 조달 정책 변화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다.
법안은 중국산 장비를 주된 대상으로 삼지만, 이란, 러시아, 북한 등 ‘우려 국가(nations of concern)’로 분류된 국가의 장비 또한 차단한다. 이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공급망 정책에 구조적으로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예외 조항도 마련돼 있다. 미국 또는 동맹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특정 장비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면제(waiver)를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기술 대체 불가능성과 공급망 안정성을 함께 고려한 장치로 풀이된다.
이번 조치는 미국으로의 수입만을 제한하며, CHIPS법 보조금 수혜 기업들의 해외 사업 운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즉, 미국 외 지역에서의 장비 조달과 운영은 이번 법안의 직접적 규율 대상이 아니다.
핵심 포인트 요약
• 대상: CHIPS법 보조금 수혜 기업의 중국산 반도체 장비 구매 금지(미국 내 수입 기준)
• 기간: 10년
• 장비 범위: 노광장비(예: ASML)부터 웨이퍼 슬라이싱·다이싱 장비까지 광범위
• 예외: 미국·동맹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특정 장비에 한해 면제 가능
• 영향: 대중 수출 제한 하의 미국 장비업계 R&D 여력, 내수 조달 전략과 직결
용어 설명과 맥락
CHIPS법: 미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22년에 통과된 법률이다.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통해 미국 내 생산시설(팹)의 신설·확장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총 390억 달러의 보조금 프로그램이 핵심으로 언급된다.
리소그래피(노광) 장비: 웨이퍼 위에 회로 패턴을 빛으로 전사하는 장비로, 반도체 미세화의 성패를 좌우한다. ASML은 해당 분야의 대표적 글로벌 제조사로 지목된다.
슬라이싱·다이싱 장비: 대형 실리콘 웨이퍼를 개별 칩(다이)로 정밀하게 절단하는 공정 장비다. 첨단 공정뿐 아니라 범용 제품 생산 라인에서도 필수적이다.
면제(waiver): 특정 장비가 미국 또는 동맹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경우, 개별 승인을 통해 제한을 일시적으로 적용 제외할 수 있는 제도다. 공급망 단절로 인한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판 성격이 강하다.
‘우려 국가’: 법안은 중국 외에도 이란·러시아·북한의 장비를 차단 대상으로 열거한다. 이는 안보·수출통제 프레임이 반도체 장비 조달 정책에도 직접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업 및 시장 영향 분석
이번 법안이 시행될 경우, CHIPS 보조금 수혜 기업들은 미국 내 설비 확장 시 중국산 장비를 대체할 조달 계획을 재정립해야 한다. 이는 벤더(공급업체) 적격성 재검토, 장비 인증·검증 리드타임 증가, 공정 통합(process integration) 재최적화 등 실무적 전환 비용을 수반할 수 있다. 특히 노광장비와 같이 생산성·수율에 미치는 영향이 큰 핵심 장비는 대체 가능성 자체가 제한적이어서, 면제 제도의 적용 가능성과 기준이 업계의 중요한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동시에, 미국 장비업체(Applied Materials, Lam Research, KLA 등)에는 내수 수요의 상대적 견조화라는 요인이 작동할 수 있다. 기사에서 지적하듯 이들 기업은 대중 수출 제한으로 매출과 R&D 투자 여력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 왔는데, 미국 내에서 CHIPS 보조금이 중국산 대신 ‘비중국산’ 장비 구매로 연결될 경우, 일정 부분 수요 보완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이는 면제 범위, 동맹국 장비의 가용성·가격, 공급 리드타임 등 복합 변수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의 관점에서 보면, 본 법안은 미국 내 수입만 제한하고 수혜 기업의 해외 사업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미국 내 시설과 해외 시설 간 장비 표준과 유지보수 체계를 이원화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운영 복잡성과 비용 증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반대로 공급망 리스크 분산에는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이 제조 장비 분야에 400억 달러 이상 투자하며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왔다는 배경은, 장비 생태계의 구조적 상호의존성을 단기간에 해소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결국 예외(면제) 제도 운용의 세부 기준과 동맹국 장비의 조달 역량이, 법안의 실효성과 산업 파급효과를 가르는 주요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법안 진행 현황과 관전 포인트
현재 법안은 미 하원에 발의됐으며, 상원에서는 12월 중 발의가 예고돼 있다. 양원 발의가 완료되면, 업계는 장비 범주 정의, 면제 판단 기준, 동맹국 범위와 판정 절차 등 세부 설계를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내 수입만 제한이라는 범위 설정이 해외 공장 운영과 어떤 컴플라이언스 경계를 형성할지에 대한 명료한 가이드라인이 요구된다.
종합하면, 이번 입법 시도는 CHIPS법 보조금이 국가안보 및 공급망 전략과 정합성을 갖도록 다듬는 방향으로 읽힌다. 중국·이란·러시아·북한 등으로부터의 장비 조달을 제한하면서도, 대체 불가 장비에 대한 예외 통로를 열어 둔 이중 트랙은 기술 현실과 정책 목표 사이의 균형을 도모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