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발(로이터) – 글로벌 투자자들은 미국발(發)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는 동시에 물가가 고공 행진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자산 가격 전반에 복합적 충격을 가할 수 있어, 포트폴리오 전술 조정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2025년 8월 18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BofA 글로벌리서치가 8월 초 실시한 설문에서 전 세계 기관투자가의 70%가량이 향후 12개월 내 미국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미국의 고용 지표 둔화, 근원 소비자물가 급등, 그리고 생산자물가(PPI)의 깜짝 상승세가 이런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증시는 여전히 사상 최고치 부근을 유지하고 있으며, 채권 시장의 변동성도 제한적이다. 이는 ‘스태그플레이션 리스크가 시장의 인식에는 반영됐지만 가격에는 충분히 내재되지 않았다’는 카르미냑(Carmignac) 채권운용 매니저 마리안 알리에의 분석과 궤를 같이한다.
용어 설명: 스태그플레이션이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경제활동의 침체(stagnation)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이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통상 경기둔화 국면에서는 물가가 안정되지만,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고공 행진해 통화·재정정책 모두 대응이 어려워진다.
1) 채권시장: 장·단기 금리의 복합 리스크
“장기적으로 끈질긴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는 고정 이표(利表) 증권의 실질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 러셀인베스트먼트 폴 아이텔만
러셀인베스트먼트의 폴 아이텔만은 약 1조 달러 규모 자산을 운용하는 연기금·보험사들이 장기채권 보유 비중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올해 들어 미국·독일·영국의 2년물 수익률은 하락한 반면, 30년물 수익률은 상승했다. 이는 인플레이션 기대가 장기 구간에 더 크게 반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마이앙크 마칸다이(Foresight Group)는 “G7 국가 장기금리는 동조(同調) 현상이 강하다”며 “미국 30년물 금리가 급등하면 여타 선진국 금리도 연쇄적으로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지 못할 경우, 단기채권 역시 가격 하락(수익률 상승)을 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2) 주식시장: 빅테크 ‘외줄타기’ vs 중소형주 경계령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캐럴라인 쇼 매니저는 미국 성장률 둔화를 기본 시나리오로 제시하면서도, 대형 기술주에 대해서는 긍정적 시각을 유지했다. 다만 7월 중순에는 러셀 2000 지수(미국 중소형주)에 풋옵션을 매입해 하락 위험을 헤지했다.
State Street 마이클 메트칼프는 1990년 이후 데이터를 분석, “미국 제조업 지수(ISM)가 위축 구간에 머물면서도 물가가 평균 이상으로 오른 기간에 세계 주가는 평균 15%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테크 주가가 상승세를 지속하는 것은 “글로벌 공급망 변수가 빅테크 실적을 흔들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베팅”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맨그룹의 크리스티나 후퍼는 “‘악재’를 외면하고 ‘호재’만을 선택적으로 반영하는 ‘확증 편향적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면서도, 스토리 탄탄한 빅테크 외 종목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3) 외환시장: 달러 약세·유로·엔·파운드 강세
에드몽드 드 로스차일드 AM의 나빌 밀랄리는 “미국 성장 둔화와 지속적 인플레이션의 이중 위협이 달러 가치를 동반 압박할 것”이라며 달러-유로 포지션을 숏(매도) 방향으로 조정했다. 실제로 연초 이후 유로화는 달러 대비 12% 넘게 상승했고, 일본 엔화와 영국 파운드화 역시 강세를 보였다.
4) 대안 자산: 금·물가연동채·인플레이션 스와프
금(Gold)은 전통적으로 위기·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으로 꼽힌다. 맨그룹 후퍼는 “스태그플레이션 리스크가 부각될수록 금이 추가적 대안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포사이드그룹의 마칸다이는 단기물 물가연동채(TIPS) 매입을 제시했다. 이는 명목금리 변동에 덜 민감한 동시에 물가 상승분을 일정 부분 보전해 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기관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 스와프에도 관심을 키우고 있다. 이는 일정 물가지수 상승분을 수취(Receive)하는 파생계약으로, 실질 금리를 고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2년 만기 미국 인플레이션 스와프 금리는 2년 만에 최고 수준 부근에 머물고 있다.
전문가 시각 및 향후 관전 포인트
이번 조사 결과는 “스태그플레이션은 기우(杞憂)가 아니라 현실적 리스크”임을 시사한다. 다만 실물지표와 자산가격 간 괴리가 확대되는 ‘골디락스(적당히 따뜻한) 국면’이 이어질 경우, 위험자산 랠리와 불안 심리가 동시 존재하는 불안정한 시장 환경이 장기화될 수 있다.
결국 향후 1~2분기 미국 고용지표(비농업 부문 고용·실업률), 근원 CPI·PPI, 그리고 연준의 통화정책 스탠스가 글로벌 자산군 리프라이싱(repricing)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