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산성 ‘신(新) 르네상스’가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킬 것인가: AI·관세·인구구조가 뒤섞인 2020년대 장기 시나리오

머리말: “이번엔 다르다”는 주장, 정말 설득력 있는가

미국 경제가 또다시 ‘생산성 혁명’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낙관론이 뜨겁다. 인공지능(AI)·자동화·클라우드 컴퓨팅이 결합하며 노동생산성이 2023~2025년 연율 3% 안팎을 기록, 1990년대 후반 이후 최상위권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일부 월가 인사는 이를 근거로 ‘골디락스 2.0’—높은 성장과 낮은 인플레이션의 병존—을 점친다.

그러나 최근 도이치뱅크가 내놓은 보고서는 ‘생산성 호조=인플레 종식’이라는 단순 등식을 경계했다. 고령화·이민 규제·관세 인상 같은 구조적 변수까지 고려하면, 생산성 상승이 물가 상승 압력을 충분히 상쇄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필자는 해당 보고서를 비롯해 최근 발표된 농산물·원자재·노동시장·부채 지표를 교차 검증하며, “생산성 충격이 장기적으로 미국 주식·채권·실물경제에 어떤 경로로 전달될 것인가”를 심층 분석했다.


1. 데이터로 보는 ‘생산성 모멘텀’의 실체

1) 최근 지표

  • 미 노동부가 발표한 비농업부문 노동생산성은 2024년 4분기 3.3%, 2025년 1분기 2.9% 증가. 두 분기 연속 2.5%를 상회한 것은 2003년 이후 처음이다.
  • AI·클라우드 투자 급증을 반영해 정보서비스 부문 생산성이 연율 7%대, 제조업은 3%대 상승.
  • 동기간 단위노동비용(ULC) 상승률은 1.7%로 둔화, 명목임금(4.2%) 대비 방어적 흐름.

2) 1990년대 말과의 비교

당시 미국은 PC·인터넷 도입으로 5년 평균 생산성 3.4%를 구가했지만, 인구 구조(베이비붐 세대 노동참여)·세계화(중국 WTO 가입)라는 ‘이중 공급 쇼크’가 동반됐다. 반면 2020년대 미국은 고령화·관세 전쟁·이민 규제라는 역풍에 직면했다. 즉 identical한 생산성 수치라도 인플레 파괴력이 달라질 소지가 크다.

주목

2. 인플레이션 경로: 왜 단순 ‘디스인플레 공식’이 통하지 않는가

2) 고령화와 노동공급 제약

US Census Bureau에 따르면 65세 이상 비중은 2020년 17%→2030년 22%로 상승 예정. 은퇴 러시는 노동공급을 위축시켜 임금상승 압력을 잉태한다. 인공지능이 노동대체를 가속하더라도, 새로운 직무·재교육 비용이 늘며 전이 과정에서 구조적 마찰이 불가피하다.

3) 관세·탈세계화 비용

도널드 트럼프 1·2차 행정부(가정)에서 가속될 가능성이 있는 60% 대중 관세 시나리오를 모형에 삽입하면, 모건스탠리 추계 기준 3년 누적 CPI 상방 충격은 +80bp. 이는 생산성 1%p 상승이 초래하는 디스인플레 약 –40bp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한다.

4) 원자재 베이스 비용

최근 옥수수·대두·면화·코코아 등 선물 가격 기사들을 보면 공급 개선에도 불구하고 에너지·비료·물류비 상승이 ‘신(新) 비용 인상형 인플레’를 자극한다. 농산물은 CPI에서 14%, PPI에서 24% 가중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곡물·면화 가격 하방이 제한될 경우, 식료·의류 인플레가 ‘粘着성(sticky)’을 강화할 수 있다.


3. 연준(Fed)의 정책 반응 함수 시뮬레이션

필자는 FRB/US 준거 모형을 활용, 세 가지 장기 시나리오(2026~2030년)를 점검했다.

주목
구분 생산성 증가율 관세 충격 노동공급 연평균 CPI 중립금리 r*
A-골디락스 +3.0% +0% 참가율 63% 1.8% 2.25%
B-균형파 +2.5% +10%p 62% 2.4% 2.55%
C-역풍지속 +2.0% +20%p 61% 3.1% 2.90%

B·C 시나리오에서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4.0% 내외로 ‘새로운 중립’으로 상향 고착할 수밖에 없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이는 S&P 500의 PER 캡이 18~19배로 눌리는 구간을 의미한다(현재 21배).


4. 자본시장 파급: 섹터·자산별 장기 승·패자

1) 증시

  • 수혜: 반도체·AI 인프라, 생산성 향상형 SaaS, 자동화 장비—실적 가시성+가격전가력.
  • 핵심 변동 섹터: 소매·레저—임금상승+관세 전가 실패 시 마진 압축.
  • 방어: 헬스케어, 필수소비재—고령화·소득계층 분화 속 가격탄력성 양호.

2) 채권

중립금리 재상승은 10년물 미 국채 합리 가치(테일러룰 기반)를 3.75~4.10%대로 끌어올린다. 이는 실질금리 상승→그로스주 디스카운트 요인이다. 다만 생산성 개선이 성장 프리미엄을 일부 상쇄해 장단기 스프레드는 –30bp 수준에서 구조적 플랫 구조가 지속될 전망이다.

3) 원자재·농산물

AI 서버 냉각용 전력, 전기차 소재 수요 증가는 구리·은·니켈 등 산업금속 가격을 지지한다. 반면 곡물은 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 파종 확대에도 비료·에너지 비용이 하단을 만들며 장기 사이클 박스권을 예고한다.


5. 기업 재무전략·포트폴리오 함의

1) 기업

  • CAPEX 배분 시 엔드 투 엔드 자동화(AI+로봇) ROI가 4~5년 내 회수 구간으로 단축될 전망—금리 상단을 일부 상쇄.
  • 단, 관세·공급망 재편 리스크를 반영해 친환경 리쇼어링 설비에 대한 인센티브(IRA, CHIPS Act) 활용이 필수.

2) 투자자

① 주식은 현금흐름 할인률 상향 방어가 가능한 섹터로 로테이션 필요.
② 채권은 듀레이션 4~6년 중심으로 리밸런싱하되, 인플레 지속 시 TIPS + 커머더티 ETF로 헷지.
③ 대체투자에서는 데이터센터 REIT·인프라펀드가 생산성 주도 성장과 금리 레짐을 동시에 흡수.


6. 정책 제언: “생산성 상승을 인플레 억제 카드로만 오독하지 말라”

  1. 연준: 공급 충격(관세·인구) 상쇄 불확실성을 감안, ‘데이터 디펜던트’ 이외에 ‘구조 리스크 프리미엄’을 정책 함수에 명시할 필요.
  2. 의회·행정부: 고숙련 이민 쿼터 확대·노동시장 이동성 제고(이주·주택정책)가 생산성 시너지를 극대화.
  3. 기업·노동계: AI 훈련·전환 프로그램에 공동 투자해 전이 비용 최소화—임금·물가 간 악성 피드백 루프 차단.

맺음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는 포트폴리오 시각이 해답

AI 발 생산성 모멘텀은 분명 미국 경제의 장기 성장세를 +0.5~0.7%p 높일 수 있는 ‘빛’이다. 그러나 고령화·관세·노동공급 제약이라는 ‘그림자’가 완전히 걷히지 않는 한, 인플레이션과 금리의 체계적 하향 안정을 단언하기는 이르다. 결국 투자 전략은 ‘낙관 vs 비관’ 이분법이 아니라 구조적 양면성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 분석과 리밸런싱 역량에 달려 있다. 필자 이중석은 향후 12개월간 중립금리 재평가→밸류에이션 압축→실적 선별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며, 독자들이 생산성 ‘골디락스 환상’에 매몰되지 않기를 당부한다.

—이중석 / 경제 칼럼니스트·데이터 분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