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모든 노동자가 동일 급여를 받는다면 경제는 어떻게 변할까

상상 실험이다. 만약 실리콘밸리 거대 기술기업의 CEO와 동네 슈퍼마켓 계산원이 똑같은 월급을 수령한다면 미국 경제는 어떤 모습으로 재편될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교사, 헤지펀드 매니저, 환경미화원 등 직무·학력·경력을 막론하고 ‘완전 평등 급여 체계’가 적용되는 상황을 가정한다.

2025년 7월 23일, 나스닥닷컴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급진적 구상이 최근 의류 브랜드 ‘터널 비전(Tunnel Vision)’의 창립자 매들린 펜들턴(Madeline Pendleton)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터널 비전은 설립자 본인을 포함한 전 직원이 동일 시급(시간당 약 20달러)을 받으며, 5년 내 지분 100% 균등 배분을 목표로 한다고 알려졌다.

터널 비전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평등 임금 실험 이미지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가 집계한 2020년 데이터를 통해 확인되듯, 당시 CEO 평균 보수는 일반 노동자의 351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극심한 소득·자산 격차가 지속되는 현실에서 ‘급여 평준화’는 대안으로 떠오른다.

“한 기업 내부의 동일 임금제와 국가 단위의 강제 임금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금융 분석기관 NationalBusinessCapital.com의 애널리스트 크리스 모톨라(Chris Motola)는 이렇게 지적한다. 기업 단위 실험은 자본주의 시장 속 ‘사회주의 기업’으로 존재하지만, 국가 전체에 동일 임금을 법으로 강제하면 사실상 ‘보수 통제 레짐(Compensation Regime)’이 된다는 설명이다.

동기 부여와 성과는 어떻게 될까?

가장 큰 난제는 동기 부여 문제다. 성과와 무관하게 누구나 같은 급여를 받는다면, 추가 노력에 대한 금전적 인센티브가 사라진다. 모톨라는 “국가를 일종의 거대 기업으로 간주해 국내총생산(GDP) 증가분이나 국부펀드* 수익을 ‘보너스’처럼 배분하거나, 금전 외(非金錢) 보상——예컨대 지위·토지·유연 근무——를 제시하는 방안이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고성과자와 저성과자가 동등 보상을 받을 경우, 불만·소진(burnout)이 확산될 위험도 크다. 누가 비금전적 특권을 배분할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지 또 다른 갈등이 발생한다.

시장과 투자, 그리고 새로운 격차

임금이 평준화돼도 투자·자산 소유가 허용된다면 새로운 계층 분화가 불가피하다. 모톨라는 “시장이 존재하고 누구든 투자할 수 있다면 급여 외 수익으로 빈부 격차가 다시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주식·부동산 등 자본소득이 임금 대신 불평등의 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부업 경제’의 종말과 혁신 둔화

추가 수입을 얻기 위한 ‘허슬 경제(hustle economy)’는 즉각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부수입을 위한 플랫폼 노동·프리랜스 기회가 사라지면서 번아웃에서 해방되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혁신·창의 활동에 대한 물질적 보상 체계가 약화될 수 있다고 전문가는 경고한다.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

동일 임금제가 도입되면 전통적 기업 계층구조가 약화된다. 금전적 승진 동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모톨라는 “계층화의 핵심 가치는 빠른 의사결정에 있는데, 위계가 약화되면 ‘합의제 경영’이 보편화돼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보수 독재자의 일방적 오류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이점도 있다.

유토피아인가, 실현 불가능한 공상인가

미국 경제 시나리오 터널 비전 사례는 ‘공평 급여’가 소규모 조직에서는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국적 확대에 대해 모톨라는 “장기적으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unworkable)’하다”고 단언한다. 급여를 평준화하려면 임금뿐 아니라 가치·성공·야망을 정의하는 문화적 규범 전체를 재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 시각 및 함의

경제 분석 관점에서 보면, 동일 임금제는 노동시장 가격 신호를 제거해 직무·숙련·위험에 따라 ‘배분’되던 인적자원이 경직화(sticky)될 위험이 있다. 결과적으로 노동 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자본 투자·기술 혁신에 대한 시장 기반 보상 메커니즘이 축소되면 생산성 성장률이 둔화될 수 있다. 반면 교육·보건·돌봄처럼 현재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사회적 필수 노동의 가치는 재조명될 여지가 있다.

동시에 국가 단위 동일 임금제는 조세·재정 구조 개편을 요구한다. 누진세 기능이 약화되면 공공 재원 조달 방식도 전면 재설계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 운용·배당이 핵심 재분배 장치가 될 수 있지만, 한국의 국민연금처럼 대규모 국가투자기금 운용 역량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용어 정리

국부펀드* : 원유·무역흑자 등으로 형성된 외환보유액을 기반으로 정부가 운용하는 투자펀드. 노르웨이, 싱가포르, 아부다비 등이 대표적이다.
허슬 경제 : 주업 외 부업(side gig)이나 디지털 플랫폼 노동 등을 통해 추가 수익을 창출하는 경제활동 전반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