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 은행들, 정책 다툼 격화 속 워싱턴 로비 강화

미국의 대형 은행들이 지난해 워싱턴 정가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위해 로비 지출을 크게 늘렸다. 로이터 분석에 따르면 이들 은행은 급변하는 정책 환경 속에서 규제·입법 리스크를 관리하고 유리한 규제·입법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로비 활동을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6년 2월 5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자산이 최소 500억 달러(약한화 기준 수조 원) 이상인 은행들 가운데 38개 은행이 지난해 로비 활동을 보고했다. 이들 은행과 주요 업계 단체 7곳은 백악관, 연방 행정기관, 의회를 대상으로 총 $86.8 million을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비당파적 정치자금 추적단체인 OpenSecrets가 제공한 공시자료와 로비스트 인터뷰를 토대로 로이터가 분석한 결과다.

2025년의 로비 지출은 전년 대비 약 12% 증가했다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요 규칙을 다투던 2011년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은행 규제 책임자들은 자본 규제 전반의 개편을 추진하고 있으며, 핀테크와 암호화폐 관련 정책의 잠재적 변화도 논의되고 있다. 또한 의회에서는 디지털 자산에 관한 획기적인 법안들이 검토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정책적 변화들은 은행 업계에 큰 기회와 동시에 중대한 손실 위험을 모두 제시한다.

레이몬드 제임스의 정책 분석가인 에드 밀스(Ed Mills)는 “이처럼 활동이 집중된 환경에서는 반드시 테이블에 완전하게 참여하고 있어야 한다”며 “워싱턴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조치들이 은행들에 유리하다는 견해가 있지만, 여전히 그 의제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은행들을 상대로 정파적 탈(탈)계좌, 즉 debanking을 비난했으며, 올해 의회 선거를 앞두고 생활비 부담 완화 등을 내세운 포퓰리스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 가운데 신용카드 이자율 상한 도입 같은 조치가 제기되자 일부 은행들은 반발했다. 공시자료에 따르면 대형 은행들은 백악관과의 개인적·정치적 연결고리를 가진 로비스트들을 다수 고용했다.

전 미국뱅커스협회(American Bankers Association) 수석 로비스트 출신으로 현재 금융 고객을 상대하는 정부관계 회사를 운영하는 제임스 발렌타인(James Ballentine)은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비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로비 지출의 주된 이유”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워싱턴 로비스트는 특히 affordability politics(생활비 부담 완화 정치)의 부상은 은행들에게 충격이었다고 평가했다. 발렌타인 또한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소위 swipe fee) 제한 법안소비자금융보호국(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 CFPB)을 둘러싼 내부 혼란, 그리고 암호화폐 기업들의 경쟁 심화 등을 은행들이 경계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암호화폐 기업들은 2024년 선거에서 업계 친화적 의원을 대거 지원하기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입했다. 그 결과 작년에는 스테이블코인 관련 입법과 암호화폐 기업들에 더 큰 규제 명확성을 제공하는 법안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입법 진전은 은행들에게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 자산 섹터의 로비 지출은 2025년에 $40.6 million로 전년 대비 66% 급증했지만, 여전히 전통적 은행업계의 지출 규모에는 못 미친다.

물론 은행들이 워싱턴에서 가장 큰 로비 규모를 가진 집단은 아니다. 방위산업, 통신업, 보험업 등 다른 산업들이 통상적으로 더 많은 지출을 기록한다. 또한 트럼프의 재임은 여러 산업에서 정부 관계 활동 전반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OpenSecrets는 분석했다.


백악관의 반응

업계의 정책 형성 노력을 묻는 질문에 대해 백악관은 트럼프 행정부가 “부당한 특혜나 예외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백악관 대변인 쿠시 데사이(Kush Desai)

“대통령 트럼프의 의사결정을 이끄는 유일한 특수 이익은 미국 국민의 최선의 이익”

이라고 말했다.

화이트하우스의 인맥(White House whisperers)

금융 섹터 고객을 대리하는 한 워싱턴 로비스트는 은행들이 정치적·개인적 백악관 연결고리를 적극 활용하려 한다고 전했다. 2025년에는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전 트럼프 대통령 인수위원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였던 브라이언란자(Bryan Lanza)를 고용했고, 모건스탠리는 트럼프 기금모금자였던 제프리 밀러(Jeffrey Miller)을 영입했으며, JP모건은 백악관 비서실장 수지 와일스(Susie Wiles)가 근무했던 Ballard Partners를 retained(고용 유지)했다.

Ballard의 파트너인 저스틴 세이피(Justin Sayfie)는 “백악관의 정권 교체가 있을 때마다 모든 분야의 정교한 이해관계자들은 새로운 정책결정자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옹호팀을 재정비한다”고 설명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 모건스탠리는 이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으며, 란자와 밀러의 대리인들도 답변하지 않았다.


분기별 동향과 주요 은행별 증가 폭

은행의 로비 지출 증가는 특히 4분기에 집중됐다. 과거에는 중간 규모의 대형 은행들이 로비 활동 증가를 주도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번 상승은 주로 업계의 소위 빅 에이트(Big Eight) 월가 대형 은행들에 의해 주도됐다. 스테이트스트리트는 4분기 연간 대비 증가율이 427%로 가장 컸고, 골드만삭스134%, BNY56%, 모건스탠리41%의 증가를 보였다.

10월에서 12월 사이에 증가폭이 특히 두드러진 이유는 즉시 명확하지 않지만, 이 기간 규제당국의 활동이 강화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쟁점이 큰 암호화폐 관련 법안이 진전되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골드만삭스 대변인은 해당 은행의 4분기 로비 비용이 워싱턴에서 개최한 소기업 정상회의(small business summit) 개최로 일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스테이트스트리트는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용어 설명 및 배경

이 기사에서 언급된 몇 가지 용어는 일반 독자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다. OpenSecrets는 정치자금과 로비 활동을 추적하는 비당파 조직이며, 공시자료를 집계해 공개한다.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은 법정화폐 또는 다른 자산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낮춘 디지털 통화다. Swipe fee는 카드 결제 시 가맹점이 부담하는 승인 수수료를 말하며, 이를 제한하는 법안은 가맹점과 금융사 수익구조를 모두 변화시킬 수 있다. Debanking은 은행이 특정 고객이나 단체에 대해 계좌 서비스 제공을 중단하는 행위를 일컬으며, 정치적·규제적 논란이 된다. CFPB(소비자금융보호국)은 미국 연방정부의 소비자 보호 규제 기관으로, 소비자 금융상품·서비스를 감독한다.


시장·정책적 함의와 전망

이번 로비 지출 증가는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정책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졌음을 시사한다. 규제 당국과 의회의 입법 결과는 은행 업계의 수익성, 리스크 관리, 경쟁 구도에 직결된다. 예를 들어 자본 규제 완화나 은행에 유리한 핀테크 규제는 대형 은행들의 수익 개선과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신용카드 이자율 상한이나 스와이프 수수료 제한 같은 소비자 친화적 정책이 도입되면 은행들의 순이자마진과 수수료 수익이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암호화폐 관련 입법과 규제 명확성의 증가는 동시에 두 갈래의 영향을 줄 것이다. 하나는 암호화폐 기업과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시스템 내에서 합법적 지위를 확보해 은행의 전통적 서비스 일부를 잠식할 가능성이 있고, 다른 하나는 규제의 명확화로 기존 은행들과 협력하거나 새로운 서비스 영역을 확장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투자자는 규제 동향과 의회·행정부 내 주요 인물의 발언, 관련 법안의 통과 가능성을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정책 리스크가 증대되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로비·관계자 고용에 집중하는 행위는 단기적으로 비용이지만, 장기적으로 규제환경을 호전시켜 훨씬 큰 재무적 이득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규제·입법의 방향성에 따라 향후 12~24개월 내 대형 은행 실적과 업종 밸류에이션에 눈에 띄는 변동성이 나타날 수 있다.


종합

로이터의 분석은 대형 은행들이 2025년에 로비 지출을 크게 늘린 배경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재편 시도, 의회의 디지털 자산 입법 논의, 암호화폐 업계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소비자정책(신용카드 수수료·이자율 등)의 부상 등을 지목한다. 은행 업계는 백악관 인맥을 활용한 로비스트 고용과 분기별 지출 확대를 통해 정책 리스크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금융시장과 소비자 비용 구조에 실질적 파급효과를 미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