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페이퍼 달러 이후” 시대의 서막
지난 7월 16일(현지시간)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사내 IR 콜에서 ‘스테이블코인 출시가 사실상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하루 뒤 모건스탠리도 “시장 상황·규제 환경을 면밀히 검토 중”이라는 유사 발언을 내놓았다. 동시에 미국 하원은 GENIUS·CLARITY 법안으로 불리는 스테이블코인·가상자산 시장질서 법안 처리를 일괄 추진 중이다. 필자는 이 두 축—월가의 진입과 연방 차원의 법제화—가 만나면서 달러 시스템이 ‘디지털 네이티브’ 버전으로 전환되는 구조 변곡점이 도래했다고 판단한다.
1. 스테이블코인 시장 현주소
구분 | 2023년 12월 | 2024년 12월 | 2025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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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유통량(달러 환산) | $1320억 | $1525억 | $1810억 |
달러 페깅 비중 | 94% | 93% | 92% |
1일 결제·송금 처리액 | $70~90억 | $120~150억 | $190~210억 |
자료: CoinMetrics, CCData, 2025.07
불과 18개월 만에 유통량이 37% 늘었다. 특히 달러 페깅 스테이블코인이 압도적이어서 사실상 글로벌 달러 유동성의 사설 섀도 레이어 역할을 한다. 문제는 발행·유통 메커니즘이 증권법·예금보험·지급결제망 어디에도 완전히 귀속되지 않아 법적 회색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2. 현행 법안 핵심 요약
① GENIUS Act(상원 통과)
– 은행·비은행 이원 라이선스 체계 도입
– 준비자산 100% 예치·매일 보고 의무
– 예금 유사 이자 지급 금지
– 연준·FDIC·OCC 공동 감독
② CLARITY Act(하원 처리 예정)
– ‘디지털 자산’의 증권·상품 구분 기준 명문화
– SEC & CFTC의 관할 경계 확정
– 합법적 거래소·커스터디 기준
두 법안이 모두 통과되면 스테이블코인은 “예금은 아니나 현금 등가물에 준하는 특수결제자산”으로 제도권 편입된다. 즉, 은행·브로커딜러·핀테크·블록체인 플랫폼 모두 동일 규제 틀에서 경쟁한다.
3. 대형은행 진입 논리
- 결제·송금 비용 절감 — BofA 내부 백테스트에 따르면 국경 간 달러 송금 비용이 건당 평균 $14→$0.36로 축소.
- 자본·유동성 규제 우회 — 현행 LCR·NSFR 산정에서 Fed 계좌 현금과 동일위험가중치(0%) 적용 가능성.
- 데이터 레벨 디지털 전환 — 거래·KYC·AML 메타데이터를 온체인화, 리스크·재무회계 실시간 통합.
- 리테일 침투 — 페이팔·USDC 사례가 입증하듯 시중은행 예금>스테이블코인 이동 채널이 열리면 새로운 수수료 수익 창출.
곧 발표될 BofA·Morgan Stanley 화이트페이퍼 초안에는 “준비자산의 20%를 FRB 구좌, 80%를 태환성 T-Bill로 구성”하는 듀얼 레이어 모델이 담겼다. 이는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대신하는 민간 하이브리드 달러 구상으로 볼 수 있다.
4. 장기 시나리오: 2025~2030
시나리오 A – 제도권 융합(확률 55%)
- 스테이블코인 총 발행량 1조 달러 돌파
- 미국 대형 시중은행 6곳+메가 핀테크 4곳이 시장 점유율 70%
- 달러 국제결제(CIPS·SWIFT)의 5~7%를 온체인 스테이블코인이 차지
시나리오 B – 규제발 속도조절(확률 30%)
- 이자 제한·KYC 강화로 성장률 급락, 7000억 달러 수준에서 성장 정체
- 중소 거래소·알트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태 → 중앙집중화 심화
시나리오 C – 정책 역풍·분산화(확률 15%)
- 정권 교체·긴급 행정명령으로 은행권 발행 한시 중단
- USDT·DAI 등 오프쇼어 코인이 시장 점유율 60% 회귀
필자 견해: 파월 후임 인선과 의회의 감독 구조 확정 정도를 감안할 때 A 시나리오가 현실적이다. 연준·OCC가 “지역은행에 대한 디지털 지급준비금 창구”라는 관점에서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할 경우, ‘디지털 달러’의 사실상 민자(民資) 위탁 모델이 완성된다.
5. 거시·자산시장 파급
1) 국채 수요 증가
발행사가 준비자산으로 T-Bill·ON RRP를 매입하므로 미 재무부 단기물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 최소 1조 달러 유동성 흡수 효과 >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 안정.
2) 은행 예금 유출 vs. 수수료 확대
예금 일부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돼 NIM(순이자마진)은 압박받지만, 지갑·송금·환전·커스터디 수수료로 보완. 리테일 저축성 예금 대비 고부가가치 전환이 가능.
3) FX 패러다임 재편
EM(신흥국)에서는 달러 현금 대신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하는 세컨더리 달러라이제이션 확대. 이에 따라 현지 통화 변동성↑·통화정책 자율성↓.
4) 암호화폐 밸류에이션
이더리움·솔라나 등 L2·스마트컨트랙트 플랫폼이 결제·유통 인프라로 채택되면 네이티브 토큰 수요 증가. 반사적으로 ETH Staking APR 하향 안정, 네트워크 안전성↑.
6. 리스크 요인
- 정치 리스크 — 행정부 교체 시 ‘스테이블코인=섀도 뱅킹’ 프레임 부활 가능.
- 기술 리스크 — 브릿지·커스터디 해킹 시 시스템 시스템 전반 신뢰 붕괴.
- AML/CFT 규제 — 글로벌 자금세탁·제재 회피 통로 우려로 국제공조 압박 강화.
- CBDC 경쟁 — 유럽·중국 디지털화폐가 글로벌 결제 시장에서 파이를 나눌 경우 성장속도 둔화.
7. 투자 전략 체크리스트
① 은행주·핀테크주: 규제 통과 직후 재평가(리레이팅) 기회. ROE가 아닌 FVT(기업가치/총결제량) 멀티플을 주가에 반영.
② 국채 단기물 ETF: 준비자산 편입 비율 증가 전망에 따른 수급 개선.
③ 스테이블코인 지급 인프라(L2, 오라클) 토큰: 거래 수수료·검증 보상 수혜.
8. 결론: 디지털 달러의 ‘민간 파일럿’이 시작된다
달러는 지난 80년간 군사·경제 패권의 상징이었다. 이제 그 패권이 스마트컨트랙트·실시간 결제·AI 신용평가에 맞춰 다시 코딩되고 있다. 월가 은행의 참여는 달러 디지털화가 ‘소수 개발자들의 크립토 실험’ 수준을 넘어, 전통 금융의 대차대조표에 기입되는 제도권 화폐기술임을 확인시켜 준다.
정책·규제는 여전히 변수지만, 장기적 방향성은 명확하다. 달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2030년의 달러는 은행 API–블록체인–모바일 월렛–AI 회계가 실시간으로 얽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일 것이다. 우리 투자자의 과제는 기술적·규제적 파고 사이에서 유동성·안전성·수익성이라는 세 개의 닻을 균형 있게 내리는 일이다.
작성자: 이중석(경제 칼럼니스트·데이터 분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