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로이터 통신 — 미국 정부가 2026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부터 주요 20개국(G20) 순회 의장국 지위를 넘겨받는 즉시, 회의 구조를 대폭 축소해 ‘금융 논의 중심’의 원점 회귀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고 복수의 행정부 소식통이 전했다.
2025년 7월 17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미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는 이날 남아공 더반(Durban)에서 개막한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불참했다. 올해 들어 두 번째 불참 사례로, 워싱턴은 이미 G20 일정 전반에 대한 참여 축소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전·현직 관리와 전문가들은 베센트 장관의 불참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다자주의 회의체에 대한 회의론을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9년 미국 주도로 창설된 G20을 포함해 다자 기구에 일관되게 비판적 태도를 보여 왔다. 그는 광범위한 무역 전쟁을 벌이며 개발도상국을 겨냥했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워 대외 원조 자금을 대폭 삭감했다.
세 명의 미국 측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자국 건국 250주년과 시기가 겹치는 올해 말 G20 의장국을 예정대로 인수할 예정이다. 다만 회의 체계는 리더 정상회의(Leaders’ Summit)와 금융트랙(Financial Track) 두 축으로만 구성하고, 에너지·보건·상무·환경 등 분야별 실무그룹 및 장관급 회의는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 ‘백 투 베이식스(Back to Basics)’ 전략
이 같은 구조조정은 베센트 장관이 4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서 “기후금융·성평등 이슈보다 금융 안정과 개발 지원의 본래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한 입장과 맥을 같이한다. 당시 발언은 다수 회원국의 공감을 샀지만 기후변화·개도국 지원을 중시하는 유럽 등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워싱턴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 국제경제센터장 조시 립스키(Josh Lipsky)는 “베센트 장관과 백악관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으며, 상당수 G20 회원국도 이를 수용하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미국은 올해 중국과 공동 의장을 맡았던 ‘지속가능금융 워킹그룹’에서 손을 뗐고, 트럼프 대통령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 참석할지도 미지수다.
■ G20 내부 ‘슬림화’ 공감대 확산
두 명의 협상 소식통은 “여러 회원국이 G20 의제 범위가 지나치게 방대해졌다는 데 동의했다”고 전했다. 2024년 브라질 의장국 당시 ‘초고소득층 글로벌 최저세’ 도입이 논의됐으나, 바이든 행정부는 이는 ‘과도한 권한 확대’라며 반대했다. 현재 남아공은 전체 프로세스 점검 작업을 진행 중이며, 미국의 축소 방안과 방향성이 일치한다는 설명이다.
시민단체와 개도국은 신중히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국제 NGO 주빌리 USA 네트워크의 에릭 르콩트(Eric LeCompte) 사무총장은
“금융 안정, 부채, 경제 문제는 개발·성장 의제와 분리할 수 없다. 축소가 오히려 G20의 생존 전략이 될 수도 있다”
고 말했다.
■ G20의 기원과 시험대
G20은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직후 재무장관급 회의체로 출범했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정상급 회의로 격상됐다. 이후 미·중 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동 분쟁 등으로 매년 초대형 난제를 직면해 왔다.
미국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선임연구원 브래드 셋서(Brad Setser)는 “G20은 여전히 고위급 양자 외교의 무대”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격식 없는 형태로 미국에 초청해 만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전직 재무부 관료인 벤 해리스(Ben Harris)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의 역할 축소는 중국 등 다른 국가에 리더십을 과시할 기회를 준다”며 “공백이 생기면 반드시 누군가 채우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 용어 설명
금융트랙(Financial Track)은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가 주도해 글로벌 금융안정, 국제금융규범, 부채 문제를 다루는 회의 라인을 의미한다. 리더 정상회의는 각국 정상이 모여 최종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는 최상위 회의다. 이러한 두 트랙 외에 에너지·보건 등 분야별 워킹그룹이 존재했으나, 미국은 이를 대폭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지속가능금융(Sustainable Finance)은 기후변화 대응·사회책임투자(SRI) 등을 고려한 자본 배분을 지칭한다. 미국의 탈퇴는 해당 의제의 향후 추진 동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