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1일(현지시간) 급락했다. 9월 인도분 WTI(서부텍사스산원유) 선물은 배럴당 1.93달러(-2.79%) 하락한 67.24달러에, 9월 RBOB(휘발유) 선물은 갤런당 0.0553달러(-2.54%) 내린 2.12달러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WTI는 미국산 표준원유, RBOB는 정제 휘발유 선물 계약을 의미한다. 두 상품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며, 글로벌 원유·정유 시장의 투자 심리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통한다.
2025년 8월 1일, 나스닥닷컴 보도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글로벌 수요 둔화를 우려해 에너지 시장에서 위험 회피성 매물을 대거 쏟아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늦게 ‘글로벌 최저 10% 관세 및 대(對)미 무역흑자국 대상 최소 15% 관세’ 부과 방침을 밝혀 글로벌 교역 차질 가능성이 부각됐다. 관세 정책은 8월 7일 자정 이후 발효될 예정이다.
더해 7월 미국 비농업 부문 고용이 7만3,000명 증가에 그치며 시장 예상치(10만4,000명)를 크게 밑돌았다. 6월 고용도 14만7,000명에서 1만4,000명으로 크게 하향 수정됐다. 같은 달 ISM 제조업 지수는 1.0포인트 떨어진 48.0을 기록, 9개월 만에 가장 빠른 수축 속도를 나타내며 시장 컨센서스(49.5 상승)를 완전히 빗나갔다.
S&P500지수는 장중 2주 만의 최저치로 밀려 투자 심리 위축이 에너지 수요 둔화 전망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통상 주식시장과 원유시장은 경기 기대감이라는 공통 분모를 공유하기 때문에 증시 급락은 유가 하방 압력으로 전이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변수와 제재 리스크
관세 이슈와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은 7월 28일 러시아가 10일 내 우크라이나와 휴전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산 에너지 수출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이겠다고 경고했다. JP모건체이스는 ‘세 자릿수에 달하는 관세가 현실화되면 원유 시장이 러시아 수출 물량의 충격을 외면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세계 원유 수출량의 10% 안팎을 차지한다.
“OPEC의 유휴 생산 능력은 제한돼 있어 대규모 러시아 물량을 대체하기 어렵다” – JP모건 원자재 보고서
유럽연합(EU)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20개 러시아 은행을 SWIFT에서 추가 퇴출시키고, 제3국에서 재정제된 러시아산 석유에까지 제재를 확대했다. 인도의 대형 정유사 ‘나야라 에너지’(러시아 로스네프티 지분 보유)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아울러 ‘그림자 선단’으로 불리는 러시아 유조선 105척이 추가 제재 대상이 되면서 제재 대상 선박은 400척을 넘어섰다.
OPEC+ 증산 논의와 공급 과잉 우려
한편 블룸버그는 7월 10일 “OPEC+가 10월부터 증산 속도를 멈추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OPEC+는 9월 54만8,000배럴(bpd) 증산을 끝으로 추가 증산 일정을 일시 중단할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분기 이후 재고가 하루 평균 100만 배럴씩 쌓이고 있어 2025년 4분기에는 소비 대비 1.5% 공급 과잉에 직면한다”고 경고했다. OPEC+는 8월 1일부터도 54만8,000bpd를 늘리기로 합의한 상태다.
공급 과잉 공포는 7월 5일 OPEC+의 증산 결정 이후 더 커졌다. 당시 산유국들은 시장 예상치(41만1,000bpd)를 웃도는 54만8,000bpd 증산을 합의했고, 사우디는 “향후 유사 규모의 추가 증산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이는 카자흐스탄·이라크 등 ‘쿼터 초과 생산국’에 대한 징계 수단이자 유가 하락 압박 카드로 해석된다.
OPEC+는 2026년 9월까지 220만bpd 감산 분을 단계적으로 환원해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한다는 청사진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6월 원유 생산량은 전월 대비 36만bpd 늘어난 2,810만bpd로 1년 반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추가로 이라크 정부는 2023년 3월부터 가동이 중단된 ‘이라크-터키 원유 수송관’을 다시 열어 자치 정부인 쿠르디스탄 지역 원유 23만bpd를 수출 시장에 공급하기로 승인했다. 이라크는 OPEC 내 2위 산유국이다.
선적 저장량·시추기 가동 추이
선박 기반 저장량도 증가세다. 조사업체 보텍사(Vortexa)에 따르면 7월 25일로 끝난 주간 기준, 7일 이상 정박한 유조선에 저장된 원유는 전주 대비 23% 늘어난 8,499만배럴로 집계됐다. 부유식 재고 확대는 물리적 장으로 공급 물량이 넘친다는 신호다.
한편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7월 25일 기준 미국 상업용 원유 재고가 계절 평균치보다 5.6% 낮고, 휘발유·디스틸레이트 재고는 각각 0.7%, 15.2% 밑돌았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미국 원유 생산은 사상 최고치(2024년 12월 첫째 주 1,363만bpd)보다 조금 낮은 1,331만4,000bpd로 0.3% 증가했다.
시추 활동은 둔화세다. 베이커휴스는 8월 1일로 끝난 주에 미국 내 가동 중인 원유 시추기 수가 5기 감소한 410기로, 3년 9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022년 12월 627기에서 2년 반 만에 34% 급감한 수준이다.
시황·시장 심리 종합
전문가들은 관세 충격과 경기 둔화 조짐, OPEC+ 증산 기조, 러시아 제재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단기적으로 유가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관세로 촉발될 글로벌 무역 위축이 체감되기 시작하면 석유 수요가 추가로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다만 미국 재고가 장기 평균보다 낮고, 시추기 가동이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공급 측 방어 요인으로 지목된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가격이 65달러 선 아래로 추가 하락할 경우, 셰일업체들의 신규 투자 위축이 심화해 중장기 공급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투자 전략 측면에서는 단기 매도세가 과열된 만큼 기술적 반등을 염두에 둔 단기 스프레드 거래나, 러시아 추가 제재 시나리오를 겨냥한 콜옵션 매수를 거론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변동성 확대 국면에서는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필수라는 점이 공통된 조언이다.
한편 본 기사 작성 시점 기준, 원문 작성자 리치 아스플런드는 해당 종목에 대한 직접적 또는 간접적 포지션을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