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기 둔화 우려 속 국제유가 3% 가까이 급락

WTI 9월물RBOB 가솔린 9월물이 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각각 -2.79%, -2.54% 하락하며 한 주를 마감했다. WTI 9월물은 배럴당 1.93달러 내린 67.18달러, RBOB 가솔린 9월물은 갤런당 0.0553달러 떨어진 2.1233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2025년 8월 4일 05시 28분(UTC) 나스닥닷컴 보도에 따르면, 이날 급락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전날 밤 전격 발표한 전 세계 최저 10% 관세대미 무역흑자국에 대한 15% 이상 고관세 방침과 맞물린 미국 경제 지표 부진이 직접적인 배경이다. 투자자들은 글로벌 교역 위축→성장률 둔화→에너지 소비 감소라는 연쇄 반응을 우려하며 위험자산을 대거 정리했고, S&P500지수도 2주 만에 최저치로 밀려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당 관세 조치를 8월 7일 0시부터 발효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따라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원유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즉각적으로 반영됐다. 블룸버그는 “관세가 실질적으로 부과될 경우, 특히 제조업·물류 비중이 큰 아시아권의 연료 수요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라는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을 전했다.

고용·제조업 지표 부진도 매도세를 부추겼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7월 비농업 고용은 7만3천 명 증가에 그쳐 시장 예상치(10만4천 명)를 크게 밑돌았다. 6월 수치도 14만7천 명에서 1만4천 명으로 대폭 하향 수정됐다. 같은 달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 지수는 전월 대비 1포인트 떨어진 48.0을 기록, 9개월 만에 가장 빠른 수축 속도를 나타냈다. ISM 지수가 50 미만이면 경기 위축을 의미한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고관세 정책은 단순히 미국과 교역 상대국 간 긴장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해 원유 및 석유제품 흐름을 구조적으로 바꿀 수 있다.” — 서울 소재 대형 증권사 에너지 스트래티지스트

러시아 제재·OPEC+ 변수도 복합 작용

트럼프 전 대통령은 10일 이내에 우크라이나와 휴전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경고했다. JP모간체이스는 “러시아 수출 물량 규모와 OPEC의 제한적 잉여 생산능력을 고려할 때, 실제로 세 자릿수 관세가 도입되면 시장이 공급 충격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러시아의 추가 침공 행위를 이유로 20개 러시아 은행을 SWIFT에서 추가 차단하고, 제3국에서 재정제•가공된 러시아 석유제품에까지 제재 범위를 넓혔다. 인도 대형 정유회사 중 러시아 국영기업 로스네프트가 일부 지분을 보유한 시설도 블랙리스트에 올랐으며, 이른바 ‘그늘선박(shadow fleet)’ 400척 이상이 제재 명단에 포함됐다.

OPEC+ “증산 일시 중단” 시사…그러나 우려 여전

블룸버그는 7월 10일, OPEC+가 9월 54만8천 배럴 증산 후 10월부터 추가 증산을 보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재고가 하루 100만 배럴씩 늘어나고 있으며, 2025년 4분기에는 수요 대비 1.5% 공급 과잉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요일 예정된 OPEC+ 회의에서도 9월 증산안이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증산 자체는 이미 시장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7월 5일 회의에서 OPEC+는 8월 54만8천 배럴, 9월 추가 증산 계획을 승인해 시장 예상치 41만1천 배럴을 웃돌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카자흐스탄·이라크 등 쿼터 초과국을 징계하기 위한 의도”라며 지속적인 증산 공세를 예고했다. OPEC+는 2026년 9월까지 220만 배럴을 순차적으로 회복해 2년간 유지했던 감산 체제를 완전히 해제할 계획이다.

이라크·쿠르드 지역 파이프라인 재개 추진

이라크 정부는 2023년 3월 이후 중단됐던 이라크-터키 파이프라인을 통한 쿠르드산 원유 수출 재개 방안을 승인했다. 자치정부는 일일 23만 배럴을 국내 시장에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라크는 OPEC 내 두 번째 생산국인 만큼, 본격 수출이 재개될 경우 공급 과잉 우려가 추가로 부각될 전망이다.

부유식 저장 물량 증가세

해상 운송 데이터 업체 보텍사(Vortexa)에 따르면 7월 25일 주간 기준 7일 이상 정박한 탱커에 저장된 원유는 전주 대비 23% 늘어난 8,499만 배럴로 집계됐다. 부유식 재고 확대는 현물시장 압박 요인으로 평가된다.

미국 내 생산·재고 상황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7월 25일 기준 미국 원유 재고가 5년 평균 대비 5.6% 적고, 휘발유와 중간유 재고는 각각 0.7%, 15.2% 낮다고 밝혔다. 같은 주 미국 원유 생산량은 주간 0.3% 증가한 1,331만4천 배럴로, 2024년 12월 기록한 사상 최고치(1,363만1천 배럴)에 근접했다.

베이커휴스 집계에 따르면 8월 1일 주간 미국 내 가동 중인 원유 시추기는 전주 대비 5기 감소한 410기다. 이는 3년 9개월 만의 최저치로, 2022년 12월 627기에서 2년 반 동안 35%가량 줄어든 수치다.

전문가 해설: 지표·용어 한눈에 보기

  • WTI(서부텍사스산중질유): 미국 텍사스 서부지역에서 생산되는 기준유로, 국제유가의 글로벌 벤치마크 중 하나다.
  • RBOB 가솔린: Reformulated Blendstock for Oxygenate Blending의 약자로, 미국에서 환경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산소화합물을 첨가하기 전 단계의 휘발유 벤치마크다.
  • ISM 제조업 지수: 미국 공급관리협회가 300여 제조업체 구매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경기 선행지표이며, 50 이상이면 확장, 미만이면 위축을 뜻한다.
  • 부유식 저장(해상 재고): 항구 밖 해상에서 일정 기간 정박 상태로 저장되는 원유를 의미하며, 통상 공급 과잉 국면에서 증가한다.

기자 관전포인트

에너지 시장은 관세·지정학·공급정책이라는 세 갈래 위험에 노출돼 있다. OPEC+가 최종적으로 증산 중단을 선언한다 해도, 러시아·이라크 변수 및 미국 경제 둔화가 맞물리면 유가 변동성은 오히려 확대될 개연성이 크다. 본지는 원유가격이 단기적으로 배럴당 60~75달러 박스권을 형성하겠으나, 관세 충격의 실물 반영 시점과 러시아 제재 강도에 따라 재차 80달러선을 시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