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긴장 완화 기대가 커지면서 국제유가가 화요일 급락했다. 7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3.10달러(-3.40%) 내린 배럴당 88.10달러 수준에서 마감했으며, 7월물 RBOB 휘발유 선물도 0.0495달러(-1.61%) 하락했다. WTI는 7주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고, 휘발유 가격은 8주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RBOB 휘발유는 미국에서 널리 거래되는 휘발유 선물로, 정제유 시장의 단기 수급과 운전자 연료비 전망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2026년 6월 9일, 나스닥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하락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휴전이 유지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시장은 이 휴전이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을 끝내는 합의로 이어지고, 호르무즈해협이 다시 열릴 가능성을 높인다고 보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은 중동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로, 이곳이 봉쇄되면 세계 원유 공급에 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이날 백악관이란 관련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우려도 남아 있어 유가 하락 폭은 장중 변동성을 동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전쟁이 신속히 끝나고 이후 유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보며, “우리는 매우, 매우 좋은 합의의 마지막 단계에 있으며, 빠르면 하루나 이틀 안에 그 합의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언의 핵심은 중동 정세가 완화될 경우 원유 공급 불안이 줄고 유가도 내려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또 다른 국면에서 이란이 미군 헬리콥터를 격추했다고 비난하며 미국이 대응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평화 구상이 위태로워졌다는 경계감도 다시 커졌다. 이란과 이스라엘 간 합의가 흔들릴 경우 호르무즈해협이 계속 닫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되살아나고, 이는 전 세계 원유 공급을 더욱 조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중국 수요 부진도 국제유가 약세를 부추겼다. 중국의 5월 원유 수입량은 하루 약 780만 배럴로 떨어져 8년 넘게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만큼, 중국 내 수요 둔화는 글로벌 원유 가격에 직접적인 부담이 된다. 통상 중국의 수입 감소는 아시아 지역 정유사들의 원유 조달 의지를 약화시키고, 현물 시장 전반에도 약세 신호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생산 확대 전망 역시 유가에는 부정적이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화요일 2026년 미국 원유 생산 전망치를 기존 하루 1,365만 배럴에서 1,372만 배럴로 상향 조정했다. 생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공급 확대 기대를 키워 유가 상단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해석된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이 러시아 에너지 인프라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은 공급 측면에서 유가를 지지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5월 들어 러시아 정유소를 겨냥한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자 제트연료 수출을 금지했다. 또한 블룸버그 자료상 러시아의 5월 정유 가동률은 전년 동월 대비 13% 감소한 하루 458만 배럴로 떨어져 2009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석유 기업, 인프라, 유조선에 대한 제재도 러시아산 원유 수출을 억누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5월 발표한 월간 보고서에서 3월과 4월 전 세계 원유 재고가 하루 약 400만 배럴 감소했다고 밝혔다. IEA는 전쟁이 곧 끝나더라도 시장이 10월까지 “심각한 공급 부족(severely undersupplied)”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페르시아만 원유 생산이 하루 약 1,450만 배럴 줄어들었고, 현재의 차질로 세계 원유 재고가 이미 거의 5억 배럴 감소했으며, 6월까지는 10억 배럴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OPEC+의 증산 기조는 또 다른 약세 요인이다. OPEC 대표단은 5월 14일, 카르텔이 앞으로 수개월간 일련의 원유 생산 할당량 인상을 이어가며 9월 말까지 중단됐던 생산을 완전히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2023년 감산분 165만 배럴 가운데 약 3분의 2를 되돌리기로 공식 합의한 상태이며, 나머지 물량도 3단계의 월별 증산을 통해 회복할 계획이다. 다만 5월 3일 OPEC+는 6월 산유량을 하루 18만8,000배럴 늘리겠다고 발표했고, 5월에도 하루 20만6,000배럴 증산했다. 그러나 중동 전쟁으로 산유국들이 실제 생산을 줄이고 있어 추가 증산은 당분간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OPEC의 5월 원유 생산량은 하루 336만 배럴 감소한 1,633만 배럴로, 4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다.
원유 현물과 파생상품 시장의 유동성에도 변화가 감지됐다. 에너지 시장 정보업체 보텍사(Vortexa)는 6월 5일로 끝난 주에 최소 7일 이상 움직이지 않은 탱크선에 저장된 원유가 전주 대비 1.2% 증가한 8,659만 배럴이라고 6월 9일 밝혔다. 이는 해상 저장 원유가 늘었다는 의미로, 공급이 즉시 소비되지 못하고 떠다니는 물량이 확대됐음을 시사한다.
주간 재고지표에 대한 시장 예상도 유가 흐름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6월 11일 발표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주간 통계에서 원유 재고가 220만 배럴 감소하고, 휘발유 재고는 100만 배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주 EIA 보고서에 따르면 5월 29일 기준 미국 원유 재고는 계절 평균 5년치보다 3.5% 낮았고, 휘발유 재고는 4.9% 낮았으며, 디젤·난방유 등 중간유분 재고는 12.4% 낮았다. 같은 기간 미국 원유 생산량은 전주 대비 0.1% 감소한 하루 1,370만7,000배럴로 집계됐으며, 이는 11월 7일 주에 기록한 역대 최고치 1,386만2,000배럴에는 다소 못 미친다.
미국 내 시추 활동은 다소 늘었다. 베이커휴즈는 6월 5일 종료 주간 미국 원유 시추기 수가 2기 증가한 431기로, 11개월 만의 최고치라고 발표했다. 이는 2024년 12월 19일 주의 4년 3개월 만의 최저치인 406기보다 많은 수준이다. 다만 지난 2년 반 동안 미국 원유 시추기 수는 2022년 12월의 5년 반 만의 최고치 627기에서 크게 감소한 바 있어, 셰일 업계의 투자 기조가 예전만큼 강하지는 않다는 점도 함께 읽힌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유가 급락이 단순한 일일 변동이 아니라, 중동 평화 기대, 중국 수요 둔화, 미국 생산 증가 전망, OPEC+의 증산 기조,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 차질이 동시에 작용하는 복합 국면을 반영한다고 본다. 특히 호르무즈해협 재개방 여부는 국제유가의 단기 방향성을 좌우할 최대 변수로 꼽힌다. 반대로 휴전이 흔들리거나 중동 분쟁이 재격화될 경우, 유가는 빠르게 반등할 수 있다. 수급상으로는 재고가 낮은 상태가 유지되고 있어, 공급 충격이 발생하면 상승 탄력도 빠르게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변동성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리치 애스플런드(Rich Asplund)는 이 기사 게재 시점에 본 기사에서 언급된 증권에 대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포지션을 보유하지 않았으며, 기사 내 모든 정보와 데이터는 정보 제공 목적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