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IG STORY
레고 블록이 흩어진 바닥, 아이들을 위해 멈춰 선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막대사탕을 빨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세 명의 소년—이곳은 중국 저장성 이우(義烏·Yiwu) ‘국제소상품시장(International Trade Market)’의 한풍경이다. 이 다섯 층 규모의 도매시장은 전 세계 크리스마스 장식의 절반 이상을 선적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2025년 9월 17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여름 방학이 끝나기 직전인 8월 말 찾아간 평일 오전과 오후 내내 시장은 예상과 달리 조용했다. ‘세계의 슈퍼마켓’이라 불릴 정도로 북적여야 할 이 공간에는 구매자보다 아이들이 더 많았고, 이 점은 미·중 무역전쟁과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청소용 스펀지를 파는 리(李) 씨는 “지금은 외국 바이어 성수기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주요 고객이 미국이 아닌 중동·동남아시아라고 설명했다. 그는 “관세 영향은 크지 않다”고 했지만, 광둥성 고향 공장들은 타격을 받았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정적이 흐르는 ‘세계의 슈퍼마켓’
기자가 만난 열여섯 곳 남짓의 상인들은 인터뷰를 대체로 거절했다. 그러나 매장 곳곳에서 아랍어, 한국어, 러시아어 간판이 늘어난 사실만으로도 고객층 이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카프를 판매하는 한 층은 대부분이 이슬람 전통 히잡을 겨냥했고, 이는 과거 영어·중국어 중심이던 간판 지형과 대비됐다.
무역업체 IMEX Sourcing Services의 창립자 아시시 몽가(Ashish Monga)에 따르면, 이우의 대(對)미국 수출 비중은 8년 전 20% 수준에서 2024년 15%로 내려앉았고 올해는 더 줄었다. 이 추세는 국가 전체 수치와도 일맥상통한다. WIND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CNBC에 따르면, 2025년 1~7월 중국의 미국행 수출액은 12% 감소한 반면, 중동 10대 경제권으로의 수출은 13% 늘었다.
몽가는 “EU 규제 적합성(Compliance)을 충족하지 못하는 소상품이 많아 유럽 판매가 제한적”이라며, 라틴아메리카 수요 확대에 따라 이우 당국이 상인 대상 스페인어 수업까지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형 바이어를 잃으면 신흥시장에서 같은 이익을 내려면 다섯 곳은 확보해야 한다”며, “More work for less money”라는 현실을 강조했다.
통계로 보는 중국의 무역 피벗
올해 7월 기준 중국의 대미 수출 총액은 251억4천만 달러로 여전히 절대규모가 크다. 그러나 중동행 수출(116억5천만 달러)뿐 아니라 유럽·동남아시아로도 물동량이 급증했다. 특히 아프리카로의 수출은 1년 새 24% 급증해, 지역 다변화가 숫자로 입증된다.
“첫 번째 무역전쟁의 후유증이다. 누구도 미국 한 곳에 발목 잡히길 원하지 않는다.” — 캐머런 존슨, Tidalwave Solutions 상하이 파트너
존슨 파트너는 “올해는 공급업체들이 미국 외 대체 시장을 본격 공략하는 해”라며, 성장속도가 다소 느려도 정치·경제적 안정성을 높게 평가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으로 돌아갈 유인은 아직 없다
이번 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미·중 무역협상은 관세 해소가 아닌, 바이트댄스(ByteDance) 산하 틱톡 분리 문제에 대한 ‘프레임워크 합의’만을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세부 최종 조율을 위해 9월 19일 통화를 예고했지만, 양국 관세율은 여전히 평균 55% 수준으로 트럼프 1기 때(25%)보다 높다.
이 때문에 미국 기업들은 올 초 ‘프론트로딩(front-loading)’—향후 관세 인상을 예상하고 선(先)주문을 대량으로 넣는 전략—으로 재고를 확보했다. 이 덕분에 2025년 크리스마스 시즌 공급차질은 피했지만, 업계에서는 “조만간 소비자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더불어 10월 14일부터는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이 미국 항만에 입항할 때 새로운 부과금이 적용된다. 선주 국적과 관계없이 최대 수백만 달러의 추가 비용이 예상돼, 중국 공급망에 또 다른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용어로 이해하는 무역전쟁
① 프론트로딩(front-loading): 관세 인상·규제 강화가 예고될 때, 기업이 재고 확보를 위해 통상 시기보다 앞당겨 대량 주문하는 것을 뜻한다.
② 이우(Yiwu): 저장성 진화시(금화시)에 속한 현급 도시로, 1982년 농산물 자유시장 개설 이후 세계 최대 소상품 도매시장으로 성장했다. 75만㎡ 규모의 ‘국제소상품시장’은 75,000여 개 점포가 입주해 ‘지구에서 가장 큰 도소매 단지’로 불린다.
시장·경제 동향
17일 오전 11시 15분 기준 중국 본토 CSI 300 지수는 0.47% 상승했으며, 홍콩 항셍지수는 1.16% 올랐다. 항셍테크지수는 2.89% 급등했다. 특히 베이징 본사 검색엔진 대기업 바이두 홍콩 상장은 최대 14% 폭등해, 전일 미국장 9% 상승세를 이어갔다.
한편, 베이징 당국은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가 현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며 조사를 지속할 방침을 밝혔다. 중국 경기둔화도 뚜렷하다. 8월 소매판매 증가율은 3.4%로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고, 1~8월 고정자산투자는 부동산 침체 탓에 거의 성장세가 멈췄다.
향후 일정
• 9월 17~19일: 베이징 샹산포럼
• 9월 20일: 전기차 업체 Nio ES8 신형 SUV 출시 행사(항저우)
• 9월 22일: 중국 기준대출금리(LPR) 발표
• 9월 말: 2019년 이후 최초 美 하원대표단 방중 예정
전문가 한마디
“협상 테이블에 올라올 품목은 항공기, 대두 등 구매계약이 전부일 가능성이 크다.” — 커트 통, 아시아그룹 매니징 파트너
종합적으로 볼 때, 55%에 달하는 미국 관세와 신규 선박부과금은 중국 공급망의 미국 복귀를 가로막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제조업체·상인들은 중동·동남아·남미·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으로 ‘피벗’을 가속하며, 더 많은 거래처를 확보해야 하는 낮은 수익률의 다변화 전략을 수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