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 이하 TI)의 주가가 24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장중 11% 급락하며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회사 경영진이 실적 전망을 대폭 낮추고, 전방산업 수요 회복세에 대해 신중한 태도로 돌아선 것이 직접적인 촉매로 작용했다.
2025년 7월 23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TI는 전날 발표한 2025년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3분기 순이익 가이던스를 시장 예상치 하단으로 제시했다. 하비브 일란(Haviv Ilan) 최고경영자(CEO)는 “자동차 부문 회복이 예상보다 더디고, 관세가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해 수요 반등 폭이 제한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란 CEO는 이어 “2분기 매출이 시장 기대치를 웃돈 것은 일부 고객사가 잠재적 관세 부과를 피하기 위해 주문 시점을 앞당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는 앞선 4월 실적 발표 당시 “자동차·산업용 반도체 수요가 바닥을 통과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던 태도와 크게 대조된다.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관세 변수에 대한 경영진의 언급 톤이 급격히 보수적으로 바뀌었다.” — 스테이시 래스곤(Stacy Rasgon) 번스타인 애널리스트
래스곤 애널리스트는 전분기 컨퍼런스콜과 비교해 TI 경영진의 기조가 “다소 갑작스럽게 전환됐다”고 지적했다.
관세 충격, 반도체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
TI뿐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이 관세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노광장비 업체 ASML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TSMC 역시 지난주 각각의 실적 발표에서 관세와 무역 불확실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JP모건 애널리스트들은 “관세·무역 여건 악화의 영향이 이제 서서히 숫자에 반영되기 시작했으며, 연중 이 시기에 통상 나타나는 수요 강세보다 약한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 분석했다.
미국 내 생산 확대, 단기 마진 압박 요인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TI가 미국 내 제조 역량을 공격적으로 확충하면서 단기적으로 영업이익률이 희석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회사는 6월 텍사스·유타 3개 부지에서 7개 반도체 공장을 신·증설하기 위해 600억 달러(약 78조 원)를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중국 업체의 추격을 따돌리고, 고객의 리쇼어링(해외 생산시설 국내 이전)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밸류에이션 및 주가 흐름
올해 들어 TI 주가는 관세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약 15% 상승했다. 그러나 24일 급락으로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34.66배까지 낮아졌다. 이는 경쟁사 아날로그 디바이스(Analog Devices)의 27.64배보다 여전히 프리미엄이 붙어 있는 수준이다.
용어 해설
① 관세(Tariff): 국가가 수입품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자국 산업 보호와 무역 정책 수단으로 활용된다. ② PER(주가수익비율): 시가총액을 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기업의 수익 창출 능력 대비 주가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다. ③ 파운드리: 다른 업체로부터 설계 도면을 받아 대신 칩을 생산해 주는 공장(Foundry)을 뜻한다.
기자 분석 및 전망
본지는 TI의 이번 실적 가이던스 하향이 단순히 관세 리스크뿐 아니라, 전 세계 자동차 수요 둔화·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미국 내 설비투자 부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판단한다.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반도체 업계의 공급망 재편은 불가피하다. TI와 같은 아날로그·혼합신호 칩 강자는 고객 다변화로 상대적 방어력을 갖췄지만, 단기 펀더멘털 변동성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전기차·자율주행차 전환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지면, TI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꼽혀온 차량용 반도체 포트폴리오가 앞으로 4~6분기 동안 수요 공백을 겪을 수 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설비투자 집행 속도, 재고 추이, 고객 주문 패턴을 주시해야 한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미국 정부의 CHIPS법(반도체 지원법) 인센티브와 자국 내 생산 확대 정책이 TI의 공급 안정성·정부 보조금 확보라는 긍정적 레버리지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결론적으로 관세 변수와 수요 회복 지연이 당분간 TI 주가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TI가 확보한 대규모 캐파(Capacity)와 기술력은 중장기 성장성의 근간으로 남는다. 변동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신중한 포트폴리오 접근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