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시아 IPO ‘활황’ 속 유럽만 제자리…자본시장 격차 벌어지나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Klarna)가 뉴욕 증시를 차기 상장 무대로 낙점하면서, 미국·아시아와 유럽 간 IPO(기업공개) 시장 격차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북미와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이 연초 이후 170여 건의 대형 딜을 쏟아내는 동안, 분절된 규제 체계를 가진 유럽은 상대적으로 부진해 ‘상장 사막’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2025년 9월 14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북미 IPO 조달액은 153건, 177억 달러에 달했다. 반면 유럽은 57건, 55억 달러에 그쳐 규모·건수 모두 격차가 뚜렷하다. 아시아도 2025년 들어 ‘신고가 랠리’를 연출하며 ECM(주식자본시장)의 ‘주도권’을 확실히 공고히 했다는 평가다.

아시아는 올해 내내 활황이었고, 시장 리더십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 토미 뤼거 UBS 글로벌 ECM 공동대표

뤼거 대표는 “유럽에도 국지적인 강세 포켓은 있지만, 연말까지 북미·APAC이 신규 발행시장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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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건 캐피털마켓 총괄 케빈 폴리 역시 “미국에선 연내 30건 이상의 굵직한 딜이 대기 중이지만 유럽은 ‘침묵(modest)’ 상태”라고 지적했다.


유럽 IPO 시장 부진의 원인으로는 상장 절차의 장기화·불확실성이 단연 꼽힌다. 미즈호 EMEA ECM 공동대표 조너선 머리는 “평균 3~12개월 걸리는 승인·가격결정 과정에서 시장 변동성 리스크가 상장을 좌초시킨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올해 MSCI 프랑스 지수는 4.5% 상승에 머물렀고, 독일·이탈리아 주요 지수도 봄철 급락 후 겨우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

바클레이즈 전략가 엠마누엘 코는 “미·중·일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사이, 유럽은 AI(인공지능) 모멘텀 부재와 지정학 리스크 속에 박스권에 갇혔다”고 말했다.

사모펀드(PE) 운용사 입장에서도 확실성이 높은 M&A(인수·합병) 매각이 ‘막판 실패’ 가능성이 있는 IPO보다 매력적이다. 루카 에르피치 제프리스 EMEA ECM 공동대표는 “시장 필터가 까다로워진 탓에 PE 포트폴리오 기업 상당수가 공개시장에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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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리티 필터’ 속에서도 성공 사례는 존재한다. 유럽 최대 PE 운용사 EQT가 올해 스킨케어 기업 갈더마(Galderma)를 스위스 증시에 상장한 후 주가가 125% 급등, 추가로 53억 스위스프랑(66억 달러)을 회수했다. 이는 우량 자산은 여전히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인정받을 수 있음을 방증한다.


딜 플랫폼 데이터사이트(Datasite)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IPO 파이프라인은 전년 동기 대비 2% 늘었다. 이는 향후 6~9개월 내 발표될 수 있는 물량을 의미한다.

유동성(liquidity)이 핵심이다. 거래 유동성이 없으면 ‘상장’이라는 간판의 가치가 떨어진다.” – SPAC 스폰서 안드레이카 베르나토바

그는 25억 달러 규모로 디지털 자산 기업 더 이더 머신(The Ether Machine)을 상장시키며 “미국 시장은 깊이·유동성 측면에서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은 규제 파편화가 걸림돌이다. SEC(미 증권거래위원회)가 단일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는 미국과 달리, 각국 감독당국 규정이 상이해 기업과 투자자 모두 ‘마찰 비용’을 부담한다.

제프리스의 에르피치는 “클라르나 같은 우량 비즈니스는 사실 어느 시장이든 성공 가능성이 높다”며 “뉴욕행은 장기적 최적화 전략이지, 유럽에서 상장 불가피해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시장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용어 설명*
*IPO : 기업이 주식을 처음 일반 투자자에게 공개·판매하는 절차.
*SPAC : 비상장 회사를 인수·합병하기 위해 설립되는 ‘백지수표 기업’으로, 먼저 상장 후 대상 회사를 찾아 합병한다.
*PE(Private Equity) : 비공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기업에 투자·경영 개선 후 매각 차익을 노리는 사모펀드.

전문가 시각에서 볼 때, 유럽 IPO 시장이 완전히 낙후된 것은 아니다. 다만 거시 불확실성·규제 복잡성·산업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북미·아시아 대비 경쟁력이 약해진 것은 분명하다. AI·에너지 전환 등 장치산업수십~수백억 달러 단위의 대규모 자본이 필수이기에, 뉴욕 증시로의 자금 쏠림 현상은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결국 유럽 거래소단일 규제 체계 정비·기술 기업 유치 인센티브 확대·상장 프로세스 단축에 성공하느냐가 향후 2~3년 IPO 생태계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2026~2027년 유럽발 대형 딜 재개 가능성에 여전히 ‘베팅’을 걸고 있다. 실질적 경쟁력 제고 없이는 ‘탈(脫)유럽’ 상장 러시는 지속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