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판결 받은 전 트레이더 톰 헤이스, 리보 조작 책임 두고 UBS에 4억 달러대 소송 제기

스위스 은행 UBS가 글로벌 리보(Libor) 금리 조작 스캔들의 ‘희생양’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하며, 무죄가 확정된 전직 스타 트레이더 톰 헤이스(Tom Hayes)가 4억 달러(약 5,4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25년 10월 2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헤이스는 미국 코네티컷주 고등법원에 제출한 32페이지 분량의 소장에서 UBS가 고의적·악의적으로 자신을 기소의 핵심 피고로 몰아세워 은행 고위층의 책임을 숨겼다고 주장했다.

헤이스 측은 소장에서 “UBS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러티브를 연출하기 위해 나를 ‘완벽하게 맞춤 제작된 악당(hand-picked villain)’으로 설정했다”라며, UBS가 2012년 12월 미국·영국·스위스 규제당국에 15억 달러의 합의금을 지불하고도 형사 기소를 피한 배경에는 이 같은 조작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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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과정은 UBS가 이야기를 통제하고 고위 경영진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세심하게 연출한 연극과도 같았다.” – 소장 중


UBS는 해당 소송 제기에 대해 “논평을 삼가겠다”고 밝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헤이스(46)는 이번 소송에서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평판 훼손, 정신적·신체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징벌적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영국 내 유죄 판결, 대법원의 ‘오판’ 지적 후 뒤집혀

헤이스는 2015년 영국 사법당국에 의해 ‘리보 금리 조작 공모’ 혐의로 11년형을 선고받고 약 절반을 복역한 뒤 2021년 가석방됐다. 그러나 2024년 7월 23일 영국 대법원은 “리보 금리 제출 과정에서 은행이 상업적 이해를 고려할 수 없다”는 1심 판사가 배심원단에 잘못 안내했다고 판결하며 유죄를 파기했다. 재판부는 해당 지침이 ‘절차적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용어 해설 – 리보(Libor)
리보(런던 은행 간 Offered Rate)는 다수 글로벌 은행이 ‘자신들이 예상하는 단기 조달금리’를 제출해 산출되는 벤치마크 금리다. 전 세계 300조 달러 규모의 대출·파생상품 금리를 결정하는 핵심 지표였으나, 조작 가능성 및 투명성 논란이 불거진 뒤 2022년 1월 공식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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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 스캔들로 은행들은 총 90억 달러 이상의 벌금을 물었고, 영국·미국에서 19명의 트레이더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UBS 역시 관련 조사 과정에서 15억 달러를 납부하고 형사 기소를 면했다.


“경력과 삶이 송두리째 망가졌다” … 헤이스의 반격

헤이스는 런던 자택에서 낸 성명에서 “무죄를 입증하고 내 이름을 되찾는 데 10년 이상 걸렸다”며 “이제는 UBS가 나를 희생양으로 삼은 책임을 져야 할 차례”라고 밝혔다.

그는 UBS의 미국 트레이딩 본부(코네티컷 스탬퍼드)에서 근무하며 선도금리 기반 파생상품 거래를 담당했다. 헤이스 측은 UBS가 미 법무부·영국 금융감독청(FCA) 등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수사당국에 그를 ‘악의적 주범’으로 제시, 회사 고위층에 대한 형사 책임을 무력화시켰다고 주장했다.

UBS의 면책 전략에 대해 소송장은 “은행이 고위 임직원의 개입 사실을 가리고, 시장 신뢰 하락에 따른 주가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헤이스 개인에게 모든 화살을 돌렸다”고 적시했다.


전문가 시각 – 금융기관 ‘조직적 책임’ 논란 다시 부상

이번 소송은 대형 금융기관이 내부 통제 실패 혹은 조직적 위법 행위를 개인 직원에게 전가하는 관행에 경종을 울릴 것으로 보인다. 영국 시티대학교(Cass) 금융법 연구진은 “규제당국이 은행 고위층을 사실상 기소하지 못하는 구조가 금융 시스템의 도덕적 해이를 키운다”는 분석을 내놨다.※해당 평가는 연구진 일반 논평으로, 본 소송과 무관

소송 결과에 따라 UBS뿐 아니라, 과거 합의금을 통해 리보·외환·금리 스캔들을 매듭지은 글로벌 은행들의 책임 범위가 재조명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파생상품 이자율 산정 체계 전반에 대한 법적 해석이 업데이트될 수 있어 금융 규제 환경에 적지 않은 파급력이 예상된다.


향후 일정 및 관전 포인트

코네티컷주 법원은 조만간 사건번호를 부여하고, UBS에 소장 송달을 완료할 예정이다. UBS는 통상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해야 한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UBS가 조기 합의를 시도할지, 아니면 본안 소송으로 맞설지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헤이스가 이번 소송을 통해 리보 스캔들에 관여한 다른 금융사·전현직 임원에 대한 추가 법적 대응에도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실제 배상액이 4억 달러 수준으로 확정될지 여부는 배심원 평결 및 판사의 최종 판결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장기전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이번 소송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악명 높은 금리 조작 스캔들”로 평가받는 리보 사건의 책임 소재를 역사적으로 재검증하는 과정을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