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 ― 멕시코 정부가 국영 석유기업 페멕스(Pemex)의 재무 건전성 회복을 위해 단계적 지원 종료 시점을 2027년으로 못 박았다. 정부는 해당 시점까지 부채를 대폭 축소해 회사가 독자적으로 채무를 상환·운영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2025년 8월 5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멕시코 클라우디아 쉰바움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2027년이 되면 페멕스는 더 이상 재무부의 지원이 필요 없을 것”이라며 “회사가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고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뒤로는 에드가르 아마도르 재무장관, 로실라 나레 에너지장관, 빅토르 로드리게스 페멕스 최고경영자(CEO)가 배석해 이번 계획의 정부·기업 공조를 강조했다.
그동안 페멕스는 정부의 자본 투입·세제 감면·신용공여 등 각종 재정적 안전망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과다한 차입 구조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부채가 많은 에너지 기업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로이터가 인용한 최근 공시에 따르면, 금융부채는 약 990억 달러, 공급업체 미지급금은 약 230억 달러로 집계됐다.
투자 비히클 신설·부채 발행 병행
재무부는
“정부 보증 투자 비히클을 통해 2025년 한 해에만 최대 2,500억 페소(약 130억 달러)를 조달해 생산 저하를 막겠다”
고 설명했다. 이는 작년 말 단행한 12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커머셜 페이퍼) 발행에 이은 추가 유동성 공급책이다. 재무부는 해당 자금을 신규 유전 개발·추가 파이프라인 건설 등에 투입해 원유 산출량을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는 51억 달러, 2026년 187억 달러, 2027년 77억 달러에 달한다. 정부는 이러한 상환 일정을 감안해 단기 유동성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줄이겠다는 계산이다.
생산 정상화·인프라 확충
빅토르 로드리게스 CEO는 신(新)사업 전략을 내놓으며 “Zama와 Trion 해상 유전 개발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잠재력이 큰 유전을 재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3개의 신규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도 공개했다. 그는 “안정적인 송유 인프라가 확보돼야만 생산량 감소세를 멈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드가르 아마도르 재무장관은 구체적인 부채 감소 로드맵을 제시했다. 2025년 말 부채를 888억 달러까지 낮추고, 2030년에는 773억 달러 수준으로 축소한다는 목표다. 그는 “이미 진행 중인 자본확충(capitalization)과 리파이낸싱(financing) 작업이 성과를 내고 있다”며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
전문가 해설: ‘부채의 늪’을 벗어날 수 있을까?
페멕스는 1938년 국유화 이후 멕시코 경제의 중추였지만, 2013년 이전까지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다가 석유 고갈·설비 노후화로 경쟁력을 빠르게 잃었다. 전문가들은 페멕스 부채가 한때 멕시코 GDP의 10% 안팎에 달할 정도로 심각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번 정부 보증 투자 비히클은 유동성(단기 자금 조달 능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운영 효율성과 비용 구조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또한 ‘자본화(capitalization)’는 국영 기업이나 공기업이 보유한 자본금을 직접 늘려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반면 ‘리파이낸싱(refinancing)’은 만기가 임박한 기존 부채를 더 긴 만기의 새로운 부채로 갈아타 상환 부담을 뒤로 미루거나 이자 비용을 낮추는 기법이다.
기자 시각
필자는 부채 절벽을 피하기 위한 정부의 광범위한 개입이 재정 건전성 악화라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멕시코 재무부가 현재 통화·재정 정책 여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국제 유가 하락이나 멕시코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경우 추가 재정 부담이 불가피하다. 결국 페멕스가 내부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으로 실질 현금흐름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지원 종료 시점’이 재차 연기될 공산도 남아 있다.
다만, 이번 계획이 장기·단기 부채를 동시에 줄이고, 생산 설비 투자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과거 단순 현금 투입과 차별화된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전 세계 국영 석유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구와 에너지 전환 압력에 직면한 상황에서, 멕시코 정부가 화석연료 기반 경제 구조의 ‘질서 있는 연착륙’을 시도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환율 기준: 1달러 = 18.8228멕시코 페소로이터 보도 원문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