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명문 완성차업체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가 미국 시장에서 자사 EQ 배터리 전기차(BEV) 출고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2025년 7월 30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로이터통신(Reuters)은 알레산드로 파로디·아미르 오루소프 기자의 취재를 인용해 “메르세데스-벤츠가 미국 내 EQ 모델 주문 접수를 당분간 중단(putting on hold order banks)한다”는 사실을 전했다.
회사 대변인은 “현재 시장 수요와 일치하도록 공급을 조정하는 차원”이라며 “미국 딜러 네트워크에서 고재고(high inventory)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전기차(EV) 인센티브 축소를 골자로 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예산지출법(Spending Bill)이 이달 초 조기 통과되면서 EV 세액공제 혜택이 예상보다 빨리 줄어든 영향으로 풀이된다.
EQ 라인업 생산 거점과 미국 전략
메르세데스-벤츠는 미국 앨라배마주 터스컬루사(Tuscaloosa) 공장에서 세단·SUV를 포함한 여러 차종을 생산한다. 이 공장은 내연기관 모델뿐만 아니라 배터리 전기차(BEV)*도 조립해 북미 딜러망에 공급해 왔다. *BEV란?내연기관 없이 배터리만으로 주행하는 순수 전기차를 의미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나 하이브리드(HEV)와 구분된다.
그러나 올해 들어 EV 판매가 둔화된 데다 딜러 재고가 누적되자, 본사는 수급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공급 스위치를 잠시 내렸다. 이 같은 결정은 단기적으로는 판매 감소를 의미하지만, 과잉 재고에 따른 딜러 마진 하락과 브랜드 가치 훼손을 방지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미국에서 BEV 수요가 0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중장기적으로는 채택률(adoption rate)이 서서히 상승할 것으로 기대한다.” — 올라 켈레니우스(Ola Kaellenius)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CEO
켈레니우스 CEO는 2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이렇게 강조하며 미국 전동화 로드맵을 재확인했다.
제품 포트폴리오 재조정 배경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 2월, 신규 라인업으로 내연기관 차량 19종과 BEV 17종을 2027년까지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030년까지 전기차 전환’을 선언했던 초기 청사진에 비해 내연기관 비중을 늘린 것으로, 전년 대비 BEV 판매가 25% 급감한 현실을 반영한 전략 수정으로 풀이된다.
시장조사업체들은 EV 세제 혜택 축소, 충전 인프라 불균형, 배터리 원재료 가격 변동 등을 미국 EV 수요 둔화의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마련된 이번 예산지출법은 EV 세액공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해 예정보다 빠른 시점에 가격 부담을 키웠다.
전문가 시각과 향후 변수
산업 애널리스트들은 메르세데스-벤츠의 결정이 폭스바겐·BMW 등 다른 유럽 브랜드에도 도미노처럼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공급 조절이 장기화되면 미국 내 고급 EV 시장의 경쟁 구도가 재편되고, 테슬라(Tesla)·리비안(Rivian) 등의 점유율 확대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미 행정부의 정책 변화나 주(州)정부 차원의 친환경 인센티브가 다시 확대될 경우 수요 회복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일부 주에서는 연방 세제 혜택 축소분을 보완하기 위한 지방 세금 공제와 충전 인프라 투자를 검토 중이다.
켈레니우스 CEO는 “시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생산을 조정하면서 기술 혁신과 배터리 공급망 투자를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소비자는 결국 전동화 흐름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편집자 해설: ‘잠정 중단’이 의미하는 것
‘주문 접수 일시 중단’은 생산라인을 즉각 멈추는 수준은 아니다. 통상 딜러 재고가 소진될 때까지 신규 주문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판매 가격 급락을 완화하고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이는 국내 완성차 업계가 반도체 공급난 때 선택했던 ‘스톱오더(stop order)’와 유사한 개념이다.
또한, 메르세데스-벤츠가 내연기관 차종 개발을 이어 가겠다는 방침은 글로벌 탄소중립 규제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유럽연합(EU)과 중국은 2035년 이후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규제 환경, 배터리 기술 진화, 소비자 선호 변화가 맞물리면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전략 수정은 여러 차례 반복될 전망이다.
※ 관련 용어 정리
• BEV(Battery Electric Vehicle): 배터리를 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순수 전기차.
• Order bank: 제조사가 딜러를 통해 수주해 놓은 미처 생산되지 않은 주문 물량을 의미.
• High inventory: 딜러에 쌓여 있는 재고가 적정 수준을 초과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