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소스·딥(dip) 등 콘디먼트(Condiment) 시장이 고급화되고 있다. 셰프들은 자신들의 시그니처 소스와 딥을 레스토랑 밖으로 확장하며 가정용 제품으로 선보이고, 달콤하면서도 매운맛을 결합한 ‘스와이시(swicy)’가 여전히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번 변화는 뉴욕 맨해튼 자비츠센터(Javits Center)에서 열린 전미 스페셜티푸드협회(Specialty Food Association·SFA) 주최 ‘서머 팬시푸드쇼(Summer Fancy Food Show)’를 통해 집중 조명됐다. 2025년 7월 4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7월 첫째 주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6월 29일~7월 1일)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2,000개가 넘는 업체가 참가해 조만간 슈퍼마켓 진열대와 레스토랑 메뉴에 오를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사람들이 트렌드를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방문하는 쇼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크리스틴 쿠벨리에(Christine Couvelier) / 컬리너리 컨시어지(Culinary Concierge) 설립자 겸 트렌드 스포터
쿠벨리에는 3개 층에 걸쳐 설치된 부스를 CNBC 취재진과 함께 돌며 자신이 주목한 트렌드와 ‘베스트 부스’를 소개했다.
1. 올리브오일의 재해석
올리브오일은 미국 가정에서 수십 년간 사용돼 왔으나 최근 몇 년 사이 풍미(flavors)를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늘었다. 스페인 가족 기업 카스티요 데 카네나(Castillo de Canena)는 수백 년간 올리브오일을 생산해 왔지만, 이번 쇼에서는 하리사(Harissa) 풍미 올리브오일과 셰리 캐스크(Sherry Cask) 마무리 올리브오일 등 최신 제품을 전면에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참고로 하리사는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래한 고추 기반 매운 소스로, 최근 글로벌 레스토랑과 가정식에서 각광받고 있다. 올리브오일에 하리사를 접목하면 매콤한 풍미가 더해져 샐러드뿐 아니라 아이스크림·케이크 위 토핑으로도 활용 범위가 넓어진다.
2. 머스터드의 재탄생
익숙한 머스터드 역시 대대적 개편 조짐을 보이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 기반 팝 머스터드(Pop Mustards)는 “머스터드계의 캐비아”를 자처하며 전체 겨자씨(whole mustard seed)를 활용해 새로운 식감을 구현했다. 그 과정에서 발효·훈연·염지(brining) 등 복합 공정을 적용, 씨앗 본연의 풍미를 극대화했다.
한편, 뉴욕의 카플랜스키 디켈리센(Caplansky’s Delicatessen)은 전통 델리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소규모 배치(small-batch) 머스터드를 선보였다. 클래식 옐로 머스터드나 디종(dijon)보다 다층적 풍미와 깊은 향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머스터드 케이팝’ 등 색다른 응용 제품도 등장해, 소스 시장에서의 머스터드 존재감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3. 플랜트베이스드 2.0 — 맛 중심으로 진화
비욘드미트(Beyond Meat)의 성공 이후 식물성 대체식품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지만, 최근 카테고리 침체로 부스 수가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완전 소멸’은 아니었다. 업체들은 ‘비건’이라는 라벨보다 순수한 맛을 전면에 내세우며 변화를 시도했다.
대표적으로 우미움(Umyum)은 캐슈넛 기반 치즈·버터 대체품을 선보였는데, 포장에 “Our craft just happens to be plantbased”(우리는 우연히 식물성일 뿐)라는 문구를 새겨 맛에 대한 자신감을 강조했다.
한국 소비자에게는 ‘캐슈 치즈’가 다소 낯설 수 있다. 이는 캐슈넛을 불린 뒤 분쇄·발효해 치즈 특유의 크리미함과 고소함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최근 유럽·북미의 고급 비건 레스토랑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4. 셰프 브랜드, 식탁 진출 가속화
팬데믹 기간 문을 닫았던 레스토랑들이 테이크아웃·배송용 제품을 개발하면서 ‘셰프 주도(chef-led)’ 브랜드가 급증했다. 식당 영업이 정상화된 뒤에도 이 흐름은 지속되고 있다.
필라델피아의 레스토랑 ‘자하브(Zahav)’와 뉴욕의 ‘레이저 울프(Laser Wolf)’로 유명한 마이클 솔로모노프(Michael Solomonov) 셰프는 자하브 푸즈(Zahav Foods)라는 이름의 포장식품 라인을 선보여 이스라엘식 훔무스·소스를 가정에 보급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카플랜스키 머스터드 역시 셰프 제인 카플랜스키(Zane Caplansky)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크리스틴 쿠벨리에는 “셰프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맛’을 소비자와 직접 공유하겠다는 열망이 이 트렌드를 지탱한다”고 평가했다.
5. ‘스와이시(swicy)’ 열풍, 세부 카테고리로 확장
‘스와이시’는 Sweet + Spicy의 합성어로, 달콤하면서 동시에 매운맛이 공존하는 트렌드를 말한다. Z세대 소비자가 열광하면서 식품·음료 시장 전반으로 빠르게 퍼졌다.
마이크스 핫 허니(Mike’s Hot Honey)는 ‘스윗 히트(Sweet Heat)’ 흐름을 주도한 브랜드로, 이번 행사에서 치즈 딥 브랜드 헬루바굿(Heluva Good)과 협업한 신제품을 공개했다. 또 케첩 제조사 스매시 키친(Smash Kitchen)은 핫 허니 케첩을, 슬로사(Slawsa)는 달콤·매운 양배추 기반 렐리시를 선보여 ‘스와이시’ 영역을 딥·케첩·릴리시 등으로 세분화했다.
한국어 독자는 ‘렐리시(relish)’가 생소할 수 있다. 이는 잘게 다진 채소·과일을 설탕·식초와 함께 절여 만든 콘디먼트로, 햄버거나 핫도그에 곁들이는 피클류에 가깝다.
6. 비프 탈로(beef tallow) — 동물성 지방의 재조명
지난 1년간 미국 보건복지부(HHS)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가 “씨앗 기름(seed oil)보다 건강하다”고 주장하면서 소 지방을 렌더링한 비프 탈로가 급부상했다. 영양학계는 이에 대해 의견이 갈리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관련 제품이 등장하고 있다.
이번 쇼에서는 부처 벤스(Butcher Ben’s)의 탈로 제품과, 비피스 오운(Beefy’s Own)이 비프 탈로로 튀긴 감자칩을 선보였다. 비프 탈로는 과거 패스트푸드 체인들이 튀김유로 사용하다가 콜레스테롤 우려로 식물성 오일로 전환했던 재료로, 최근 ‘클린 라벨(clean label)’ 트렌드와 맞물려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다.
이때 ‘렌더링(rendering)’은 고기·지방을 가열해 순수 지방 성분만 분리·추출하는 가공법이다. 탈로는 상온에서 고체 상태이며 열 안정성이 높아 튀김식품의 바삭함을 강화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트렌드의 명암
SFA는 매년 ‘트렌드 프레딕션(trend prediction)’을 발표해왔다. 최근 대표적 성공사례로는 식초의 재발견, 오일 기반 매운소스, 라벤더 향미 등이 있다. 반면, ‘두바이 초콜릿(Dubai chocolate)’처럼 틱톡·SNS를 중심으로 단기간 유행했으나 지속성은 불투명한 제품도 존재한다.
쿠벨리에는 “올해 행사에서만 6개 부스가 두바이 초콜릿을 전시했지만, 내년에는 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트렌드의 ‘옥석 가리기’ 중요성을 강조했다. 해당 제품은 튀르키예 디저트 ‘카다이프(Kadayif)’와 피스타치오를 넣은 초콜릿바로, 미국 내 셰이크쉑(Shake Shack) 매장까지 판매망을 열었지만, 대량 유통 지속 여부는 미지수다.
새 브랜드의 등용문
SFA 팬시푸드쇼는 ‘푸드 테크·스타트업’ 등 신생 브랜드의 교두보 역할을 해 왔다. 과거 허니스트 티(Honest Tea), 벤 앤 제리스(Ben & Jerry’s), 테이츠 베이크숍(Tate’s Bake Shop) 등이 이 행사에 참가하며 대형 소비재 브랜드로 성장했다.
올해 역시 수백 개 신생 기업이 자신들의 혁신적 제품을 소개했으며, 관계자들은 “식음료 산업 전반에서 지속가능성·클린 라벨·지역성(locality)이 핵심 화두로 부상했다”며 향후 추세를 점쳤다.
용어·트렌드 간단 해설
1 스와이시(swicy): 달콤함(sweet)과 매운맛(spicy)의 결합을 뜻하는 신조어로, Z세대 입맛을 사로잡으며 글로벌 프랜차이즈 메뉴에 빠르게 채택되고 있다.
2 플랜트베이스드(Plant-based): 동물성 원료를 배제하고 식물성 원료로 만든 식품을 통칭한다. 최근에는 ‘건강’ ‘환경’ 요소뿐 아니라 ‘맛’까지 개선하려는 2세대(2.0) 제품이 출시 중이다.
3 비프 탈로(Beef Tallow): 소 지방을 녹여 냉각·정제한 고체 형태의 지방. 튀김유·제빵·비누·스킨케어 등 다용도로 사용된다.
4 카다이프(Kadayif): 얇은 국수 형태 반죽을 굽거나 튀겨 시럽을 입힌 터키 전통 디저트로, 피스타치오·견과류를 채워 단맛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