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소셜미디어 플랫폼 X(구 트위터)에 올라온 2023년 게시물이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사타라 경찰의 문제제기를 받았다. 팔로워 수가 수백 명에 불과한 계정이 집권당 고위 정치인을 “쓸모없다(useless)”고 표현한 것이 계기였다.
게시물 삭제를 요구한 비밀(CONFIDENTIAL) 문건에서 지텐드라 샤하네 사타라 경찰 반장은 “이 게시물은 심각한 종교적·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적었다. 그러나 해당 게시물은 여전히 온라인에 남아 있다.
2025년 8월 6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X는 3월 인도 정부를 상대로 카르나타카 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나렌드라 모디 행정부가 추진해 온 광범위한 인터넷 검열 조치의 위헌성을 문제 삼았다.
X 측은 소장에서 “정부가 수십 개 중앙·주(州) 기관과 수천 명의 경찰관에게 과도한 삭제 권한을 부여해 합법적 비판까지 억눌렀다”며 인도 정보기술법(IT법)과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표현의 자유’ 맞선 ‘불법 콘텐츠 근절’
반면 인도 정부는 법원에 제출한 반박 자료에서 “불법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어 책임 있는 온라인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며, 메타·알파벳 등 다수 글로벌 IT기업이 자발적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각 사는 본 기사에 대한 논평을 거절했다.
자유로운 플랫폼을 표방하는 머스크는 미국·브라질·호주 등에서도 규제 당국과 삭제 요구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 왔다. 그러나 인구 14억 명의 거대 시장인 인도에서 벌어지는 이번 소송은 인도의 검열 체계 전반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
머스크는 2023년 “인도는 대국 중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닌 국가”라며 테슬라와 스타링크 사업 확대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그 과정에서 모디 총리로부터 투자를 독려받았다고도 전했다.
검열 시스템의 ‘블랙박스’
로이터가 단독 입수한 비공개 법원 서류 2,500쪽과 관련 경찰관 7명 인터뷰에 따르면, 삭제 명령 대상에는 허위정보 대응 목적의 게시물뿐 아니라, 대형 압사 사고 보도 같은 뉴스 기사, 모디 총리를 풍자한 만평, 지방 정치인을 조롱한 이미지 등도 포함돼 있었다.
특히 2023년 이후 IT부는 삭제 권한을 대폭 확대해, 모든 중앙·주정부 기관·경찰이 ‘어떤 법률로든 금지된 정보’라 판단하면 즉시 지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기업이 불응할 경우 ‘게시물 면책특권(세이프 하버)’을 상실해 형사·민사 책임을 지게 된다.
2024년 10월 공개된 정부 웹사이트 싸혀그(Sahyog, 힌디어로 ‘협력’)는 이러한 지시를 온라인에서 손쉽게 발부·추적하도록 설계됐다. X는 이를 “검열 포털(censorship portal)”이라 규정하며 가입을 거부했고,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으로 삼았다.
“일부 차단 명령은 풍자나 정당한 정부 비판을 제한하려는 권한 남용 패턴을 보인다.” — X의 6월 24일 법원 제출서류
다층적 삭제 요구… ‘적신호’ 켜진 표현의 장
법원 기록에 따르면 2024년 3월~2025년 6월 사이 연방·주 기관이 X에 요구한 차단·삭제 건수는 약 1,400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70% 이상이 사이버범죄조정센터(I4C)에서 발부됐다. 해당 기관은 싸혀그 포털을 구축했으며, 아미트 샤 내무장관이 총괄한다.
정부가 법원에 제출한 92쪽 보고서에서 I4C는 “X가 사회적 증오·분열을 확산하고 있으며, 가짜뉴스가 치안 문제를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또한 아동성착취물, 허위정보, 음란물 등 약 300건의 ‘불법 콘텐츠’ 사례를 열거했다.
예컨대 2025년 1월 I4C는, 모디 측근인 제이 샤 국제크리켓평의회(ICC) 회장을 비키니 차림 여성과 합성한 ‘명예훼손 이미지’ 3건을 지목하며 삭제를 요구했다. 현재 2건은 여전히 열람 가능하다.
철도부는 2월 뉴델리 최대역 압사 사고(사망 18명) 관련 언론 보도를 삭제하라는 지시를 여러 차례 내렸다. 대상에는 아다니 그룹 산하 NDTV 기사 2건이 포함됐지만, 현재까지 차단되지 않았다.
같은 달 첸나이 경찰은 빨간 공룡 ‘인플레이션’이 모디 총리와 타밀나두 주(州) 수장이 물가를 잡지 못해 허우적대는 모습을 그린 만평 등 ‘도발적 게시물’ 다수를 문제삼았다. 경찰은 “정치 긴장을 초래한다”고 주장했으나, X는 “게시 시점(2024년 11월)과 현재 시차가 커 선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첸나이 사이버범죄수사국 베. 기타 부국장은 로이터에 “X는 문화적 민감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삭제 요청에 좀처럼 협조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배경 용어 해설
싸혀그(Sahyog)는 인도 정부가 2024년 10월 개설한 온라인 포털로, 공무원과 기업 간 삭제·차단 명령을 전자적으로 주고받기 위한 시스템이다. 포털 접속 권한은 정부 기관과 등록된 SNS 기업에만 주어지며, 일반 이용자는 열람할 수 없다.
세이프 하버 조항은 플랫폼 사업자가 이용자 게시물에 대해 법적 책임을 면책받도록 한 규정이다. 인도 정부는 ‘법적 명령 불이행 시’ 면책을 박탈해, 기업 스스로 자율 검열에 나서도록 압박하고 있다.
전망 및 전문가 시각
IT 법률 전문가들은 “카르나타카 고등법원 판결이 향후 인도 디지털 거버넌스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 평가한다. 만약 정부가 승소할 경우, 글로벌 플랫폼은 더 강력한 현지화·검열 압박을 받게 된다. 반대로 X가 승소하면 플랫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법적 보호 선례가 확립될 수 있다.
또한 테슬라·스타링크의 인도 투자가 진행 중인 가운데, 머스크와 모디 정부의 관계가 법정 공방을 계기로 악화할지 여부 역시 글로벌 IT·자동차 업계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표현의 장을 넓히려는 빅테크와, 국내 정치·사회 안정을 중시하는 주권국가 간 갈등은 앞으로도 빈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소송 결과가 곧 전 세계적인 ‘디지털 검열 vs. 표현 자유’ 논쟁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