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로이터 – 전기차 배터리 핵심 원재료인 리튬 가격이 최근 반등하면서, 재무 압박에 시달리던 호주 광산업체들이 한숨 돌릴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2025년 8월 14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내 공급 감축 소식이 전해진 뒤 리튬 스포듀민(Spodumene) 현물가격은 4년 만의 저점이던 t당 610달러에서 880달러 선까지 되돌아왔다. 이에 발맞춰 호주 리튬 생산업체들의 주가는 8월 들어 최대 30% 이상 급등하며 시장 전체의 투자심리를 끌어올렸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전기차(EV) 판매 둔화 여파로 리튬 가격은 급락했고, 리튬 기업들은 시설 가동 중단·자산 매각·구조조정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했다. 이 가운데 급등한 가격이 마른 재무 체력을 일부 회복시켜 주면서 업계 전반에서 ‘울며 겨자 먹기식 매각’ 의사가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매각 검토 중이던 핵심 자산, 일단 ‘보류’ 가능성*1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호주 광산 대기업 미네랄 리소스(MinRes)와 칠레 리튬 1위 업체 SQM은 올해 초부터 서호주 자산 지분 매각을 추진했으나 가격 격차 탓에 진척이 없었다. 이와 함께 IGO는 중국 톈치리튬(Tianqi Lithium)과의 합작 정제소(JV) 손실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예고한 상태다.
그러나 리튬 현물가 회복세가 당분간 지속될 경우, 매수자들이 밸류에이션 하락기를 노려 헐값에 자산을 확보하려던 계획이 무산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호주 생산업체 입장에선 소위 ‘치명적인 가격‧시장 환경’이 숨통을 조이고 있었으나, 최근 반등으로 영구적 구조조정 카드를 서랍 깊숙이 넣어둘 수 있게 됐다.”
라고 시드니 증권사 바렌조이(Barrenjoey)의 애널리스트 댄 모건은 진단했다.
매물로 거론됐던 자산의 세부 내역
① MinRes – 서호주 마운트 매리언(Mt Marion)·워드지나(Wodgina) 프로젝트 지분 일부(관측치: 20~30%)
② SQM – 호주 내 2개 프로젝트 지분 20%
③ IGO – 손실 지속 중인 Kwinana 리튬 정제소 지분 매각 또는 JV 재편
시장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매물은 서방권이 ‘중국 의존 탈피’ 명분으로 리튬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시점과 맞물려 있었기에 잠재적 인수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다만 가격 반등이 이어질 경우, ‘바닥 논쟁(시장 사이클 최저점)’을 둘러싼 셀러-바이어 간 눈치싸움이 더욱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리튬 가격의 ‘롤러코스터’
2022년 폭등 당시 리튬 스포듀민은 t당 6,000달러를 훌쩍 넘어섰으나, 2023~2024년 전기차 수요 둔화로 가격은 90% 이상 폭락했다. 이번 반등에도 전고점 대비 85% 이상 낮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바닥을 찍었다”는 평가에는 신중론도 동시에 제기된다.
호주 증권사 E&P 파이낸셜은 리포트에서 “중국발 공급 감축이 일시적일지, 구조적 전환의 신호탄일지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인 CATL이 8월 9일 자로 장시성(江西성) 이춘(Yichun) 지역 광산 채굴 면허 만료를 이유로 현지 가동을 중단한 데 따른 여진으로도 해석된다.
주가 급등, ‘쇼트 커버링’ 영향
호주 리튬 업체들은 호주증권거래소(ASX) 기준 상위 5대 공매도 종목에 항상 이름을 올려왔다. 데이터 제공업체 숏맨(Shortman)에 따르면, 중국발 공급 쇼크 이후 공매도 투자자들이 대규모로 포지션을 청산(쇼트 커버)하면서 주가 상승 폭이 확대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세부 사례: MinRes 매각 불발
부채 부담이 컸던 MinRes는 올해 2월~5월 사이 마운트 매리언·워드지나 프로젝트 지분 매각을 위해 인도·일본계 투자자와 협상을 벌였다. 두 소식통은 “20억 달러 이상으로 제시된 가격이 너무 높아 거래가 무산됐다”고 전했다. 회사 대변인은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옵션을 수시 검토하지만, 시장 추정·추측에 대해서는 논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3월에는 로이터가 인도 국영 기업 4곳이 SQM의 호주 프로젝트 20% 지분 확보를 위해 6억 달러 투자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SQM 측은 이번 건에 대해 즉답을 피했지만, 칠레 자국 내 국가정책 변화로 해외 확장을 서두르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또 다른 변곡점: IGO의 정제소 고심
IGO는 Kwinana 리튬 정제소 누적 손실이 늘어나자 “모든 전략적 옵션”을 검토 중이라고 밝혀왔다. 업계에서는 지분 매각·JV 재편·부분 가동중단 등이 거론된다. IGO 측은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지만, 리튬 가격이 추가로 올라갈 경우 매각 대신 ‘시간을 벌어 설비 효율화를 꾀하는 시나리오’도 고려될 수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생산 탄력성, 가격 안정의 복병?
호주가 가격 급락기 ‘생산 감축 1번지’가 됐듯, 반대로 가격이 오르면 빠르게 공급이 복귀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로 호주 최대 독립 리튬 생산사 필바라 미네랄스(Pilbara Minerals)는 2024년 말 가격 부진을 이유로 눙가주(Ngungaju) 공장을 일시 폐쇄했다가 “시장 여건 호전 시 4개월 이내 재가동이 가능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용어 해설
*1스포듀민(Spodumene)은 리튬을 경제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광석으로, 주로 리튬-알루미늄-이노솜실리케이트 형태다. 채광 후 농축·정제 과정을 거쳐 수산화리튬 혹은 탄산리튬으로 가공된다.
공매도(Short Selling)란 주가 하락을 예상한 투자자가 주식을 빌려서 먼저 판 뒤, 이후 더 낮은 가격에 되사서 차익을 남기는 전략이다. 주가 급등 시에는 포지션 정리에 나서야 해 주가가 추가 상승하는 ‘쇼트 커버링’이 발생한다.
배터리 공급망 다변화는 미국·유럽·일본 등이 ‘중국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적극 추진 중인 국가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호주의 리튬 프로젝트는 지정학적·지질학적 이점을 바탕으로 서방권 투자자들에게 크게 각광받고 있다.
전문가 시각
복수 애널리스트들은 “가격 반등이 단기에 그칠지, 본격 회복 구간으로 전환할지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면서도, 최소한 “호주 리튬 업체들의 유동성 위기 완화와 자산 헐값 매각 가능성 축소”라는 단기 효과에는 공감대를 보였다. 중장기적으로는 전기차 보급 속도, 중국 내 규제 환경,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하 우대조치 등이 리튬 시장 방향성을 결정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