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발 — 르노(EPA: RENA) 새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된 프랑수아 프로보가 8월 1일(현지시간) 공식 취임한다. 그는 최근 실적 둔화 조짐과 함께 하향 조정된 연간 수익 전망 속에서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안고 있다.
2025년 7월 30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르노는 7월 초 신차 판매 부진을 이유로 올해 이익 전망을 하향 조정하며 긴장감을 자아냈다. 시장에서는 프로보 신임 CEO가 부임 즉시 해결해야 할 복합적 과제로 치열해진 경쟁, 유럽 의존도, 규모의 한계, 신규 모델 출시 일정, 상용차 부문 부진, 신용등급 회복, 그리고 닛산과의 지분 정리 등을 꼽고 있다.
1. 경쟁 환경 악화
르노는 미국 시장에 차량을 판매하지 않아 미국발 관세 직접 충격을 피했지만, 유럽 내 경쟁은 오히려 심화됐다. 미국 수요 위축을 보완하려는 독일·이탈리아 완성차 업체들이 유럽 시장 공략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르노의 2분기 판매량은 전년 대비 0% 성장에 그쳤고, 6월 실적은 약세를 예고했다. 여기에 중국 전기차(EV)·하이브리드 브랜드의 공세까지 겹치며 가격 경쟁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바클레이즈 애널리스트는 “올해 상반기 르노의 가격ㆍ제품 믹스(Price-Mix) 효과가 둔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는 통상 고가 트림 비중을 높여 수익성을 지키는 전략이 예전만큼 먹히지 않음을 시사한다.
2. 유럽 의존도와 신흥시장 확대
르노는 전체 판매량의 70% 이상을 유럽에서 거둔다. 유럽 경제 성장률이 정체 국면에 들어간 상황에서 지리적 다변화는 필수 과제로 꼽힌다. 회사는 2027년까지 비유럽 시장용 르노 브랜드 신차 8종 출시를 위해 30억 유로(약 4조3천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EV 충전 인프라, 금융 서비스 등 자동차 매출 변동에 덜 민감한 사업군을 육성하는 중기 전략도 준비 중이다.
3. 규모 열세와 독립성 논란
르노는 글로벌 완성차 판매 순위 15위로, 거대 경쟁사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여력이 제한적이다. 이를 보완하고자 중국 지리(Geely)와 동맹을 맺어 내연 및 하이브리드 엔진 사업을 분담하고, 볼보 그룹과는 전기 상용밴 합작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프랑스 내 노조는 “기술 축적과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우려한다. 시장에서는 르노가 스텔란티스(NYSE: STLA) 등 대형 업체와 합병설에 빈번히 휩싸이는 배경도 이러한 ‘규모의 한계’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지리와의 파트너십을 두고는 중국 정부의 잠재적 영향력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다만 르노 지분 15%를 보유한 프랑스 정부는 “독립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4. 사상 최대 수준의 신차 러시
루카 데 메오 전 CEO 재임기 동안 르노는 2023년 10종 신차·2종 부분변경이라는 대규모 라인업 교체를 진행했다. 2025년에도 7종 신차와 2종 페이스리프트가 예정돼 있으며, 2026년에는 8종이 추가될 전망이다. 대표 모델로는 레트로 열풍의 르노 4, SUV 시장을 겨냥한 다치아 빅스터 등이 거론된다. 신차 효과는 시장점유율 확대의 핵심이지만, 동시에 막대한 마케팅 비용·공장 재조정 비용을 동반한다.
5. 상용밴 부문의 ‘급락’
르노는 유럽 상용차 시장 1위를 장기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올 상반기 밴 판매량은 –29%를 기록했다. 경기 둔화와 더불어 일부 모델 단종·라인업 재편이 영향을 미쳤다. 상용차는 마진율이 승용차 대비 높아, 회복 여부가 전사 수익성에 결정적이다.
6. 투자등급 복귀
무디스는 르노 장기신용등급을 Ba1으로, S&P 글로벌은 BB+로 각각 평가한다. 두 등급 모두 투자적격보다 한 노치 아래다. 시가총액도 100억 유로에 그쳐, 경쟁사 스텔란티스(230억 유로)와 비교해 크게 낮다. 프로보 CEO는 비용·현금흐름 관리를 통해 ‘투자등급 회복’과 ‘기업가치 제고’라는 이중 과제를 떠안았다.
7. 닛산과의 복잡한 디스인베스트먼트
르노는 2023년부터 닛산(OTC: NSANY)과의 지분 재조정을 추진해 직접 보유 17.05%, 신탁을 통한 18.66% 등 총 35.7%로 줄였다. 그러나 향후 추가 매각 시점은 닛산의 재무·경영 성과에 좌우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닛산이 다른 완성차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추진할 경우 르노가 중요한 견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르노는 최근 혼다(NYSE: HMC)와의 제휴 논의에서 ‘경제적 혜택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용어 설명
가격·제품 믹스(Price-Mix)는 고가 트림·옵션 선택 비율을 높여 평균 판매단가(ASP)를 상향시키는 전략을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이 지표를 통해 수익성 개선 여부를 판단한다.
투자등급(Investment Grade)은 국제 신용평가사가 부여하는 채권등급의 상위 구간으로, BBB- 이상(S&P 기준)을 의미한다. 투자등급 유지 여부는 기관투자자의 투자 요건과 직결돼, 자금조달 비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 관전포인트
프로보 CEO는 그간 르노의 신흥시장 전략을 총괄해 온 ‘현장형 리더’로 평가된다. 그는 유럽 의존도 완화와 수익 기반 다변화를 목표로, 브라질·인도·한국 등에서 생산·판매 체계를 재정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EV 전환 가속과 동시에 내연기관 효율화를 병행하는 ‘듀얼 트랙’ 전략으로 비용·환경 규제 리스크를 최소화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글로벌 금리 고점·소비 둔화 등 거시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단기간 내 가시적 성과를 내기에는 환경이 만만치 않다.
시장 참가자들은 8월 1일 예정된 상반기 실적 발표에서 프로보 CEO가 내놓을 구체적 로드맵과, 상용밴 회복 전략·지리 파트너십 세부조건·신용등급 목표 시점 등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