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발(路) 러시아 루블화가 올 들어 미 달러 대비 약 45% 상승하면서 세계 외환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통화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러한 초강세는 대러 제재 하의 러시아 경제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5년 7월 24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루블 강세로 달러 표시 에너지 수출 대금을 루블로 환산할 때 정부 재정에 유입되는 금액이 감소하고 있다. 동시에 원자재·농업·제조 기업들은 달러 기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그럼에도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약세 통화가 오히려 경제 취약성의 표시라며 긴축 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녀는 “환율은 수출업체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고물가 억제를 위해서는 강한 루블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1. 루블 급등의 직접 요인
올해 루블은 달러 대비 약 45% 상승했다. 핵심 배경은 정책금리 20%대에 이르는 초고금리와 2월 미·러 회담 이후 우크라이나 평화 기대감이다. 고금리는 예·적금 및 투기적 매수 모두를 자극했고, 차입 비용 상승은 수입을 위축시켜 외화 수요를 줄였다.
달러 지수가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해방의 날(Liberation Day)” 관세 발표 후 6.6% 하락한 것도 루블 랠리를 뒷받침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자유 변동 환율’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위안화 매도를 통해 루블을 방어한다. 아비트라지(차익거래) 방지를 위해 루블/위안이 강세를 보이면 루블/달러도 동반 상승한다.
“강한 루블은 수입물가를 낮춰 인플레이션을 억제한다.”
라고 드미트리 피아노프 VTB은행 부행장은 분석한다.
전쟁 초기 도입된 자본 통제도 루블을 방어했는데, 최근에는 수출기업들이 법적 의무 이상으로 외환을 귀국시키면서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2. 러시아 외환시장 구조 – ‘OTC’와 MOEX
2024년 모스크바거래소(MOEX)가 제재 대상이 된 뒤 달러·유로는 장외시장(OTC: Over The Counter)에서 거래된다. OTC란 거래소가 아닌 은행 간 네트워크를 통한 매매 방식으로, 투명성이 낮고 거래 데이터가 중앙은행에만 보고된다.
반면 루블/위안은 MOEX에 상장돼 있으며, 달러·루블 선물도 같은 거래소에서 거래된다. 러시아에는 암시장 환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른 신흥국들과 구별된다.
루블은 국제적으로는 변방 통화가 됐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세계 11위 경제이자 원유·농산물 수출 강국이다. 러시아가 무역 결제를 비서방 통화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은 달러 패권 약화 가능성으로 중국·인도 등 신흥 대국의 관심을 끈다.
3. ‘루블–위안’이 최대 환율 쌍이 된 이유
2024년 러시아·중국 교역의 95%가 위안·루블로 결제됐다. MOEX에서 루블/위안 거래 규모는 33조 루블(약 4,200억 달러)에 달했고, 양국 무역액은 사상 최대인 2,450억 달러를 기록했다.
에너지 기업은 위안으로 받은 수출 대금을 본국에 반입하고, 수입업체는 같은 위안을 사용해 중국산 제품을 결제한다. 이제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는 루블/달러보다 루블/위안 움직임에 주목한다.
4. 정부·기업·대중의 상반된 시각
러시아 재무부는 루블 약세를 원한다. 2025년 예산은 달러당 94.3루블을 전제로 만들었지만, 현재 환율은 약 78루블이다. VTB 애널리스트들은 강세가 지속되면 올해 재정수입의 2.4%가 증발할 것으로 추정한다.
석유·금속·농산물 수출기업들도 실적 악화를 호소하며 ‘달러당 100루블’ 수준을 선호한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최근 루블 강세에 대한 공개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일반 국민에게 달러는 여전히 가치의 척도다. 다만 제재로 해외여행과 달러·유로 송금이 어려워지면서 달러 현찰 수요는 예전보다 줄었다. 2025년 1분기 개인의 외화 매수는 2,000억 루블 수준으로 전년 동기와 큰 차이가 없었다.
5. 향후 전망과 리스크
시장 전문가들은 루블 과대평가를 반복 경고했지만, 통화는 예상 밖의 강세를 유지해왔다. 중앙은행이 곧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당국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시중 금리도 떨어져 예금이탈이 발생, 루블을 약화시킬 수 있다.
더 큰 시험대는 9월 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설정한 50일 시한이 만료될 때 찾아온다. 우크라이나 평화 진전이 없을 경우,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구매자를 겨냥한 2차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는 루블에 새로운 매도 압력이 될 수 있다.
직전 루블 약세는 2024년 11월 가즈프롬방크 제재 이후였다. 중앙은행 내부 소식통은 “2015년 2~7월 기준금리를 17%에서 11%로 낮췄을 때, 루블은 수개월에 걸쳐 완만히 약세 전환됐다”며 이번에도 유사한 패턴을 예상한다고 전했다.
6. 기자의 시각 – 루블 강세의 ‘빛과 그림자’
러시아는 고금리·자본통제로 단기 방어에는 성공했으나, 재정·수출경쟁력 악화라는 역풍을 맞고 있다. 인플레이션 억제와 환율 안정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정책금리–재정정책–통화정책의 미세 조정이 필수다.
특히 9월 이후 미·러 관계가 악화될 경우, 루블 의존도가 높아진 국내 경제는 새로운 충격에 취약할 수 있다. 반대로 서방의 추가 제재가 완화되면 루블 강세가 ‘뉴 노멀’로 고착될 여지도 있다. 따라서 투자자라면 루블/위안·루블/달러뿐 아니라 유가·국제 곡물 가격·러시아 국채 금리를 종합적으로 관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