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SCOW – 러시아 금융시장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제재 경고에 신중하게 반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루블화 약세와 국제 유가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러시아 경제에 지지대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2025년 7월 30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안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에 진전 없다면 새로운 관세와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전날 밝혔다. 이 발언 직후 브렌트유와 WTI 등 주요 유가는 3% 이상 급등했으며, 이는 자원 수출국인 러시아에 즉각적인 가격 효과를 제공했다.
같은 기간 루블화는 7월 24일 이후 달러 대비 4.3% 하락해 1달러당 81.9루블을 기록했다. 러시아 MOEX 주가지수도 같은 기간 3.4% 떨어졌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들은 “환율 약세가 수출 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려 달러 기준 수익을 루블로 환산할 때 매출을 확대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미국 제재 가능성에 따른 불확실성이 러시아 투자자 심리를 짓누를 것”이라고 알로르(Alor) 브로커리지의 알렉세이 안토노프는 분석했다.
올해 들어 루블화는 러시아 중앙은행의 고금리 정책과 2월 사우디아라비아 회담 이후 미·러 관계 완화 기대감 덕분에 달러 대비 최대 45% 상승한 바 있다. 그러나 통화 강세는 원유·가스·금속·비료 등 수출기업의 루블 환산 매출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해왔고, 이들 기업은 러시아 증시 시가총액의 약 60%를 차지한다.
■ 수출주 주가 반등
루블 약세가 시작되자 일부 수출 대기업 주가는 반등했다.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티(ROSNEFT)의 주가는 주초 대비 2% 이상 상승했고, 니켈·팔라듐 생산업체 노르니켈(Nornickel)은 7월 29일 하루에만 5% 넘게 올랐다. BCS 브로커리지의 미하일 젤츠서 애널리스트는 “급등하는 유가와 약세 루블이 러시아 수출주에 펀더멘털 지지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러시아 중앙은행이 7월 25일 기준금리를 인하한 점도 루블 약세를 부추겨 국가재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루블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 기준으로 책정되는 에너지 수입이 루블로 환산될 때 늘어나기 때문이다.
■ 국가재정 방어 효과
실제로 에너지 부문은 2025년 상반기 러시아 연방 예산 수입의 27%를 차지했다. 직전 2개 회계연도(2023~2024년) 30% 안팎과 비교하면 비중이 소폭 줄었으나, 루블 약세 덕분에 달러에서 루블로 환산되는 실제 세수는 일정 부분 보전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참가자들은 “달러당 90루블” 수준의 완만한 약세는 허용 가능하다고 평가하면서도, 100루블을 상회하는 급락은 인플레이션과 자본유출을 초래해 실물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부 전문가는 2024년 11월 트럼프의 전임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단행한 ‘고별 제재 패키지’ 당시 루블이 11월 22일부터 27일까지 11% 폭락했던 전례를 상기시킨다. 이들은 “이번에도 비슷한 충격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 설명
보고서에서 피남(Finam) 애널리스트들은 “러시아 투자자들이 위험 헷지를 위해 외화를 매입하고 있다”면서, 트럼프가 중국·인도 등 러시아산 원유 구매국에 이른바 2차 제재를 가할 경우 수출 물량이 감소해 기업 실적과 재정수입이 동반 악화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2차 제재란 본국 기업이 아닌 제3국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제재 대상국과 거래할 때 미국이 그 제3국 기관까지 제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달러결제망 접근 제한, 해외 자산 동결 등 강력한 금융 차단 효과를 수반한다.
피남은 “바이든의 2024년 말 제재가 루블 급락을 촉발한 전례가 현실적 위험성을 방증한다”고 강조했다.
■ 전문가 시각과 전망
종합적으로 러시아 시장은 “제재 리스크와 유가·환율 효과”라는 상반된 변수에 놓여 있다. 단기적으로는 **루블 약세**와 **유가 상승**이 수출 및 재정에 긍정적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투자 심리 악화·금융시장 변동성 확대가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시장 컨센서스다.
필자는 특히 달러당 100루블 돌파 여부를 핵심 분기점으로 본다. 해당 수준 돌파 시,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시장 안정 조치 등을 동원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90루블 수준에서 안정된다면, 러시아 수출기업들은 환차익 효과와 고유가에 힘입어 견조한 실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용어 설명
- 루블(rouble): 러시아 연방의 법정 통화.
- MOEX: 모스크바거래소(Moscow Exchange) 주가지수.
- 브렌트유·WTI: 국제 원유 가격을 대표하는 두 벤치마크.
- 기준금리: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적용하는 정책금리로, 통화 공급과 물가안정에 핵심 영향을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