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약 대기업 로슈(Roche)가 미국 바이오테크 기업 89바이오(89bio Inc.)를 최대 35억 달러 규모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계약은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2025년 들어 가장 주목받는 거래 중 하나로 평가된다.
2025년 9월 1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로슈는 89바이오의 지분 전량을 24억 달러에 우선 매입하고, 일정 성과 조건 달성 시 추가로 최대 11억 달러를 지급하는 비유통형 조건부 가치권(Contingent Value Right, CVR)을 부여하기로 했다. 총 인수 금액은 최대 35억 달러1에 달한다.
이번 인수는 간 질환 전문 신약 파이프라인 강화를 노리는 로슈의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89바이오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및 중증 간 섬유화 치료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으며, 특히 ▲페글리페라민(pegozafermin)과 같은 FGF21 기반 치료제가 임상 단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89바이오와 로슈, 무엇이 달라지나?
89바이오는 2018년 설립 이래 간 대사질환 분야에 집중해 온 차세대 바이오벤처다. 2020년 나스닥 상장 이후에도 공격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임상 2상까지 진입했다. 반면 로슈는 종양학과 희귀질환 분야에 강점을 보유해 왔으나, 만성 대사질환 영역에서는 경쟁사 대비 존재감이 다소 약했다. 따라서 이번 인수를 통해 로슈는 파이프라인을 다각화하고, 89바이오는 글로벌 임상·허가·마케팅 역량을 단숨에 확보하게 된다.
로슈 경영진은 성명에서 “89바이오의 혁신 기술은 만성 간 질환 치료 패러다임을 바꿀 잠재력이 있다”면서 “자사의 글로벌 인프라와 결합해 미충족 의료 수요(火急)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계약 구조와 CVR의 의미
조건부 가치권(CVR)은 일정 연구·개발(R&D) 마일스톤 달성 시 추가 대가를 지급하는 구조다. 일반 주식처럼 거래되지 않으며, 신약 승인을 포함한 명확한 성과 지표를 만족해야만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바이오 섹터에서 빈번히 활용되는 M&A 구조로, 기술 리스크를 인수사와 피인수사가 분담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거래에서 로슈는 89바이오 주주에게 우선 현금 24억 달러를 지급한다. 이어 FDA 또는 EMA 신약 승인 등 세부 조건이 충족될 경우, 주당 일정 금액을 추가로 지급해 총액을 35억 달러까지 확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리스크 관리와 인수 성공률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린 셈이다.
글로벌 NASH 시장 경쟁 구도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은 전 세계 환자 수가 약 1억 명으로 추정되나 승인된 치료제가 전무한 분야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연평균 40% 내외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애브비·길리어드·일라이릴리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89바이오의 FGF21 기반 치료제는 지방간 감소 및 염증 억제에서 뚜렷한 효능을 보여 주목받아 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인수를 통해 로슈가 NASH 임상 3상 개발 속도를 높이면, 2028~2029년 허가를 목표로 한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베스트 인 클래스(Best-in-Class) 경쟁 구도가 가속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투자자·시장 반응 및 향후 일정
로이터에 따르면 인수 공시 직후 89바이오 주가는 프리마켓에서 40% 이상 급등했으며, 로슈 주가는 소폭 상승으로 마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형 제약사가 중소 바이오벤처를 흡수하는 ‘바이오 M&A 웨이브’가 하반기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로슈와 89바이오는 2026년 상반기 내 거래 종결을 목표로 한다. 주주총회 및 규제 당국 심사 통과가 관건이며, 미국 FTC(연방거래위원회)와 EU 집행위원회 승인이 필요하다.
용어 해설
• FGF21: 섬유아세포 성장인자 21(Fibroblast Growth Factor 21). 지방 대사와 포도당 항상성을 조절하는 단백질로, 간·근육·지방세포 등에서 발현된다.
• NASH: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과도한 지방 축적으로 간 염증과 섬유화가 진행되는 질환으로, 장기간 방치 시 간경변·간암으로 악화될 수 있다.
• CVR: Contingent Value Right. 인수합병 시점에 지급하지 않은 대금을 후속 성과에 따라 지급하는 권리다.
전망과 시사점
로슈의 89바이오 인수는 경쟁사 대비 뒤처졌던 대사질환 영역을 보강함과 동시에, 기술 기반 성장 전략을 강조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글로벌 제약 생태계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파이프라인 확장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켰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기술 블록버스터 확보를 위한 대형 인수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자본 시장 역시 임상 2상~3상 단계의 ‘미드 캡’ 바이오기업을 주목할 전망이다. 향후 로슈가 NASH 분야에서 실제 임상·허가 성과를 내면, 이번 거래는 모범적 딜 모델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