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발 —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의 창립자 레이 달리오(Ray Dalio)가 미국 노동통계국(BLS) 국장 에리카 맥앤타퍼(Erika McEntarfer) 해임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에게 명확한 해명과 근거 제시를 요구했다.
2025년 8월 4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달리오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X(구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나 역시 고용통계가 부정확하다고 판단한다면 국장을 경질했을 것”이라면서도, “대통령은 해임 결정의 구체적 이유와 증거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노동통계국장 맥앤타퍼를 전격 해임하며 ‘고용지표 조작’ 의혹을 제기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같은 조치는 공식 통계의 독립성 훼손 우려를 불러일으키며, 미 국채·통화·주식시장 등 전반에 ‘정책 신뢰도 리스크’를 확대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1. 달리오의 문제 제기 — “산식이 낡았고 오류가 많다”
달리오는 BLS의 현행 고용 추정 방식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오류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요일(8월 2일) 발표된 고용지표가 대규모 수정(revision)을 거쳤는데, 이는 민간 기관이 이미 제시한 수치와 큰 폭으로 수렴했다”라며 공식 통계의 신뢰성 저하를 우려했다. 실제로 BLS는 매월 발표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수치를 수정한다. 해당 달 수정 폭이 예상을 뛰어넘어 시장에 충격을 주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에서, 달리오의 ‘산식·표본 개선’ 요구가 동력을 얻고 있다.
“지도자가 정치적 목표를 위해 숫자를 조작한다면 그 결과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 레이 달리오
2. ‘데이터 정치화’ 논란 — 월가·학계의 반응
JP모건 미국 담당 수석경제학자 마이클 페롤리(Michael Feroli)는 “데이터 수집·발표 과정에 정치적 개입이 이뤄진다면 장기적으로 투자자·소비자·기업 모두가 정책 지침으로 삼을 지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3~4일 내에 새 국장을 임명할 계획이라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인사권 남용’에 따른 정책 가이던스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BLS는 1884년 창설된 상무부(Department of Commerce) 산하 기관으로, 실업률·비농업부문 고용자수·시간당 임금 등 핵심 노동지표를 매월 발표한다. 의회예산국(CBO), 연방준비제도(Fed), 재무부 등 주요 정책 당국은 해당 데이터를 토대로 경제 전망·재정정책·통화정책을 설계한다. 따라서 BLS 통계의 중립성과 정확성은 미국 경제 전반의 ‘신뢰 인프라’로 간주된다.
3. 정치권·시장에 미칠 영향
정치권에서는 ‘통계 독립성 훼손’이 조세·재정지출·부채상한 협상에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통계 오류가 누적되면, 경기 과열·침체 국면에서 적절한 대응 속도가 늦어지고 정책 실패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실업률 1%p 왜곡만으로도 연간 수천억 달러 규모의 재정·통화정책 오판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시장 측면에서는 미국 국채 수급과 달러 인덱스 변동성이 확대될 여지가 있다. 헤지펀드·연기금·보험사 등 대형 기관투자가는 고용·임금 지표를 기반으로 듀레이션·환헤지 전략을 조정한다. 통계 신뢰가 흔들리면 위험 프리미엄이 높아져 차입비용 상승, 기업 투자 위축, 소비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4. 전문가 해설 — 왜 ‘리비전(Revision)’이 중요한가
고용통계는 가구조사(월 6만 가구 표본)와 기업조사(비농업 사업체 약 70만 곳 표본) 결과를 결합해 추정한다. 발표 후, 세금 자료와 주 노동청 정보 등이 추가 반영되면 1차·2차 리비전이 이뤄진다. 경제 활동이 빠르게 변하는 시기에 표본 변화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경우, 초기치 오차가 커지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달리오가 ‘산식 개편’을 촉구한 배경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는 ▲ 표본 크기 확대 ▲ 실시간 세금·전자거래 데이터 연동 ▲ 머신러닝 기반 계절 조정 등 ‘빅데이터·AI 활용’으로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캘리포니아 주정부·EU 통계청 등이 도입을 검토 중인 ‘고빈도 통계(High-frequency statistics)’ 접근법과도 맥을 같이한다.
5. 브리지워터 지분 정리 이후 달리오의 입지
달리오는 2022년 회사를 차세대 경영진에 완전히 이양하고 잔여 지분도 매각했다. 그러나 그가 1600억 달러(추정 운용 자산) 규모 펀드를 창업해 ‘알파(초과수익) 제조기’로 불린 업계 경력은 여전히 투자자·언론·정책권의 귀를 잡아끌고 있다. 자산운용 업계에서는 달리오의 이번 발언을 ‘공식 통계 개혁’ 논의의 기폭제로 평가하며, 헤지펀드 + 거시경제 지표 두 영역이 만나는 ‘빅 피처’를 주목하고 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달리오가 강조한 “지도자 숫자 조작의 위험성”을 2024년 이후 세계 각국에서 빈번히 대두된 포퓰리즘·정치적 통계 왜곡 사례와 연결해 해석한다. 신흥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통계 기준을 변경하거나 특정 시점을 선택적으로 강조하는 ‘프레임 전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6. 향후 일정 및 관전 포인트
트럼프 대통령은 3~4일 이내에 신임 노동통계국장 지명 계획을 밝히겠다고 공언했다. 인선 과정에서 ‘정치적 충성도’ 대 ‘통계 전문성’이 어떤 무게로 작용할지가 핵심 관심사다.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는 공화·민주 양당이 통계 개혁 청사진과 독립성 확보 방안을 놓고 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참여자들은 ▲ 8월 말 잭슨홀 연준 심포지엄 ▲ 9월 고용보고서(8월 실적) ▲ 예산협상 시한 등을 ‘리스크 이벤트’로 지목하고 있다. 특히, 연준이 ‘데이터 의존적(data-dependent)’ 접근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고용지표 신뢰 붕괴는 금리·유동성 전망에 직접적인 파급력을 지닌다.
결국, 달리오의 요구처럼 대통령의 해임 배경 설명과 ‘통계 거버넌스 강화’ 로드맵이 조속히 제시되지 않을 경우, 정책·시장·경제 주체 전반에서 ‘통계 불확실성 프리미엄’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