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로이터) — 러시아 은행들은 치솟는 금리에도 불구하고 대출 수요가 견조해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을 기록한 뒤,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이 본격화되면 늘어나고 있는 연체 대출 우려가 조기에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치고 있다.
2025년 7월 24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시장조사에 참여한 애널리스트들은 러시아 중앙은행(Bank of Russia)이 26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00bp(2.00%p) 인하해 18%로 조정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2022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인하로, 2년에 가까운 긴축 국면이 끝나고 완화 사이클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처럼 21%라는 고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은행들의 최대 리스크는 신용위험이다. 투자은행 르네상스 캐피털의 안드레이 멜라셴코 이코노미스트는 “1%p 정도의 미세 조정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완화 사이클이 이어진다면 연말에는 대손충당금 부담이 줄어들고 대출 포트폴리오가 확대되면서 부실채권 비중 역시 감소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러시아 은행권은 올해 상반기에 총 1조7,000억 루블의 순이익을 거두며 자본여력을 확대했다. 이는 중앙은행이 10월부터 6월까지 20년 만에 최고 수준인 21%의 기준금리를 유지하는 동안 대출 상환 능력이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마련한 충분한 완충재다.
국영 대형은행 VTB는 로이터에 “기준금리가 1%p만 내려가도 200억 루블의 추가 이익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최고재무책임자(CFO) 드미트리 피아노프는 변동금리부 대출 비중이 높아 연체 및 구조조정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자사가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의 재무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기업 대출에서의 디폴트다. 소매 부문의 연체는 큰 피해를 주기 어렵다.” ― 드미트리 피아노프, VTB CFO
부실채권은 ‘관리 가능한 수준’
기준금리가 소폭 인하됐음에도 소비자 대출 연체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위기설을 일축하며 “모든 부실채권에 대해 이미 충당금이 적립돼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은행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금리 인하는 은행의 이익을 끌어올려 자본 비율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독일 그레프 스베르은행(Sberbank) 최고경영자(CEO) 또한 이달 초 “연체 소비자 대출이 증가하고 있지만 모두 충분히 충당금으로 커버돼 있다”고 말했다.
스베르은행은 러시아 정부가 과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서방 제재로 해외 투자자금이 차단된 상황에서도 지난달 100억 달러(약 1조 루블) 규모의 사상 최대 배당을 승인했다.
일부 대형은행은 2022년 제재 여파로 적자를 냈으나, 외국계 경쟁이 제한되고 국방 지출이 견인한 경기 확장에 힘입어 2023년과 2024년 두 해 연속 사상 최대 순이익을 시현했다.
중앙은행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 대출 중 부실채권 비중은 지난해 12월 3.7%에서 4.5%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예금 금리는 하락세를 보였다.
중앙은행은 “소매 포트폴리오의 질이 악화됐음에도 은행들은 마진을 방어하고 있다”고 밝혔다. 멜라셴코 역시 “부실채권이 서서히 증가하고는 있지만 현재 수치는 통제 가능한 범위”라고 분석했다.
애널리스트들은 투자자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일부 이동하더라도 중앙은행이 완만한 속도의 금리 인하를 약속한 만큼 예금 유출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본다.
‘디폴트 가능성은 낮다’
부실채권이 늘자 중앙은행은 거시건전성 한도(macroprudential limits)를 상향 조정해 은행들이 추가 충당금을 적립하도록 했다. 충분한 자본을 보유한 은행은 신용위험이 완화되는 대로 대출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수 있지만, 일부 은행은 대출 금리를 인하하거나 부채 부담이 적은 자산으로 재편해 자본 완충을 강화하고 있다.
시나라 인베스트먼트뱅크의 올라 나이데노바 수석연구원은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이 파산을 맞이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며, “국가가 반드시 지원해 재자본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용어 설명: ‘bp(베이시스포인트)’는 0.01%p를 의미한다. 200bp는 2.00%p와 동일하다. ‘거시건전성 한도’는 금융시스템 전체의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특정 대출상품의 총량이나 성격에 상한을 두는 규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