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의 통상 협상이 막바지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할 만한 ‘충분히 좋은(good enough)’ 제안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 대(對)EU 30% 관세 발동 시한(8월 1일)을 불과 며칠 앞둔 상황이라 시장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2025년 7월 27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러트닉 장관은 폭스뉴스(FOX News) 일요 인터뷰에서 “EU가 미국산 제품에 대한 시장 개방 의지를 분명히 보여야만 트럼프 대통령이 보복 관세 철회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협상 타결 가능성을 50 대 50으로 본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결국 핵심은 EU가 어느 수준까지 양보할 수 있느냐”라고 선을 그었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15일 피츠버그 카네기멜런대학교에서 열린 ‘펜실베이니아 에너지·혁신 정상회의’ 연설에 이어, EU를 “미국 최대 교역 파트너”로 지목하며 “1미국산 농산물·자동차·에너지 제품에 대한 실질적 관세‧비관세 장벽 철폐”를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주의 관세(recprical tariff)’를 내세운 만큼, EU가 먼저 양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논리다.
‘충분히 좋은’ 제안이란 무엇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를 이룰 확률이 50% 이하일 수도 있다”는 발언으로 협상 난항을 시사해 왔다. 그러나 EU가 시장 개방 확대라는 ‘가시적 성과’를 제시할 경우, 미측 관세 철회 혹은 인하 카드가 테이블 위에 오를 가능성을 열어 둔 셈이다.
“관건은 EU가 제시할 ‘충분히 좋은’ 조건이다. 일부 유럽 측 인사들은 이를 ‘농축산물 쿼터 확대’나 ‘미 IT·클라우드 기업에 대한 데이터 현지화 규제 완화’로 해석하지만, 백악관은 구체적 기준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 통상 전문가는 CN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협상 시계는 ‘8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은 7월 27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단에 “EU와의 협상 항목이 20가지나 미해결 상태”라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7월 29일 미국 워싱턴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대면 회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업계는 이 회담에서 관세 연기 또는 단계적 완화 방안의 윤곽이 잡힐지 주목하고 있다.
한편 EU는 ‘반강제수단(Anti-Coercion Instrument, ACI)’ 가동 검토에 나섰다. ACI는 회원국 경제가 ‘협박성 일방 조치’로 피해를 입을 경우, EU 차원에서 상대국 수출품에 전면 금수·추가관세·입찰 제한 등 강력한 보복을 단행할 수 있도록 한 조약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를 “무역 바주카(trade bazooka)”로 부르며, 실제 발동 시 미국 기업의 EU 조달시장 진입 차단 등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관측한다.
30% 관세 현실화 시 파급 효과
만약 8월 1일 0시를 기해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30% 고율 관세가 실제 적용될 경우, 미국과 EU 간 연간 7천억 달러(약 920조 원) 규모의 교역 흐름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 미국 내 완성차 제조사들은 “일본과의 협상 때보다 더 높은 관세도 수용 가능하다”는 러트닉 장관 발언에 ‘신중 찬성’ 입장을 보였지만, 유럽산 부품 사용 비중이 높은 일부 업체는 공급망 재편 비용 압력을 우려하고 있다.
무역 전문 로펌 베이커맥켄지의 통상 변호사는 “고율 관세는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직결돼, 양측 모두에 상처를 남기는 ‘치킨게임’이 될 소지가 크다”면서 “ACI 발동과 미 측 맞보복까지 이어진다면 글로벌 가치사슬(GVC) 불확실성이 증폭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미국 공화당 내 일각에서는 “대선 국면에서 농업 주(州) 유권자 결집을 위해서라도 EU 양보가 곧바로 관세 인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 대변인은 “EU는 협박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원칙론을 유지했다.
용어‧배경 설명
상호주의 관세(Reciprocal Tariff): 상대국이 미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만큼 동일 수준의 관세를 되돌려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원칙이다.
Anti-Coercion Instrument(ACI): EU가 2023년 도입한 조치로, 2제3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응해 공동 보복을 단행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말한다.
양측이 “상호 호혜적이고 공정한 협정”이라는 수식어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적용 기준과 시점이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협상 피로감이 늘고 있다. 특히 관세 철회 범위·디지털세 면제·농업 보조금 등 복합 쟁점이 얽혀 있어, 마지막까지 ‘치킨게임’ 양상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