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최대 은행이었던 스베르은행(Sberbank)이 러시아의 핵심 전자부품·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제조업체인 엘리먼트(Element)의 지분을 대규모로 인수했다. 이 거래는 모스크바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첨단 부품의 국내 생산 자립을 강화하려는 정책 기조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2026년 1월 23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스베르은행은 사모펀드 시스테마(Sistema)와 확인되지 않은 소수 지분 보유자들로부터 엘리먼트 지분 41.9%를 총 270억 루블(약 3억 5,573만 달러)에 인수했다. 로이터는 해당 인수 발표 직후 스베르은행 최고경영자(CEO) 게르만 그레프(German Gref)가 크렘린에서 열린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산업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엘리먼트는 집적회로(IC), 반도체 장치 및 마이크로칩을 생산하며 러시아 내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생산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이 회사는 국영 방위·기술 콘글로머릿인 로스텍(Rostec)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로스텍은 현재 엘리먼트 지분의 약 41.6%를 보유하고 있으며, 여러 러시아 매체는 로스텍이 자체 지분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배경과 맥락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첨단 기술 접근을 제한하기 위해 반도체와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핵심 부품의 수출을 통제하고 제재를 가해왔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기존 수입에 의존하던 전자·반도체 부품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고자 하는 필요성이 커졌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가 밀반입된 서방 부품을 점차 국내 기술로 대체하고 있다고 경고해왔다.
스베르은행의 변신과 전략적 의의
스베르은행은 2020년 이후 사명을 스베르(Sber)로 바꾸고 단순 은행을 넘어 기술 콘글로머릿으로서 사업 구조를 전환해왔다. 이번 엘리먼트 지분 인수는 스베르의 기술·제조 역량 확보 전략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된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스베르는 소수주주에 대한 공개 매수 제안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력 다툼의 가능성
그러나 이번 거래는 국영 기업인 로스텍과의 충돌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 로스텍의 최고책임자 세르게이 체메조프(Sergei Chemezov)는 장기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로스텍은 엘리먼트 설립 시 자체 전자 제조 자산을 시스테마와 합병해 만든 배경이 있다. 로스텍 경영진은 크렘린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향후 이해관계 조정 과정에서 마찰이 예상되는 신호로 해석된다.
크렘린과 푸틴의 발언
스베르의 엘리먼트 지분 인수 발표 직후, 푸틴 대통령은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산업 회의를 통해
“미국, 중국, 유럽연합 등 주요 국가들이 전자 생산 체인의 핵심 요소에 대한 주권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고 언급했다. 또한
“러시아 군대는 자국 솔루션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기술로 장비되어야 하며, 이는 민간 부문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라고 강조했다. 푸틴은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팅에서의 진전 역시 국내 제조 기반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국제적 맥락
한편,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러시아의 기술 수입에 대한 보다 면밀한 감시를 촉구하며, 러시아가 중국·유럽·미국·대만에서 조달되는 “핵심 부품” 없이는 미사일을 생산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로이터와 우크라이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자체적인 대체 기술 개발과 내수 공급망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용어 설명
여러 독자들이 잘 모를 수 있는 몇 가지 용어를 정리한다.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반도체 칩, 집적회로(IC), 센서 등 매우 작은 전자부품을 설계·제조하는 분야이다. 이러한 부품은 군사용 유도무기, 드론, 통신장비, 인공지능 하드웨어 등 첨단 시스템의 핵심 요소로 사용된다. 시스테마(Sistema)는 러시아의 대형 민간 투자회사(사모펀드 성격)를 의미하고, 로스텍(Rostec)은 국영 방산·기술 그룹으로서 방위 산업과 첨단 기술 분야에서 주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시장·경제적 영향 분석
이번 거래가 경제와 시장에 미칠 영향은 다층적이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스베르의 기술 포트폴리오 확대가 국내 반도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생산의 규모 확대를 촉진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서방 제재로 인한 부품 공급 차질을 완화하고, 군수품 및 민간 전자제품에 대한 내재적 자급률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로스텍과의 지분 충돌이 장기화될 경우,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 확대와 투자 지연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금융시장 측면에서는 스베르가 기술기업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면 중장기적으로 기술 투자 확대와 연관 산업(반도체 소재, 장비 제조, 소프트웨어 등)으로의 자본 유입을 촉진할 수 있다. 다만 서방의 추가 제재 가능성과 국제 결제·무역 채널의 제약은 외국인 투자 유입을 제한할 전망이다. 루블화 및 관련 기업의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재 리스크, 내부 구조조정, 생산성 개선 정도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날 것이다.
정책·안보적 함의
국가적 관점에서 스베르의 이번 인수는 푸틴 정부의 기술 주권(technological sovereignty) 정책을 구현하는 실무적 조치다. 전쟁 수행과 국방 현대화를 위해 핵심 부품의 국내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것은 전략적 우선순위다. 그러나 민간·국영 기업 간 지분 충돌과 중앙집권적 결정 구조는 효율적 자원배분을 저해하고, 기술혁신을 위한 민간기업의 창의적 역량을 제약할 위험도 내포한다.
향후 전망
향후 관전 포인트는 △스베르의 소수주주 공개매수 진행 여부와 그 결과, △로스텍의 대응 방식 및 양측의 협상 결과, △국내 생산능력의 실제 증강 속도, △서방의 추가 제재 여부 및 러시아의 대체 공급망 확보 성공 정도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제도·경영적 불확실성으로 변동성이 높아질 가능성을 경고하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와 제조 역량 강화가 현실화될 경우 러시아 내 반도체 생태계의 확장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환율 참고 : 보도에 언급된 환율은 $1 = 75.9000 루블이다.
이번 거래는 러시아의 기술·안보 전략, 기업 지배구조, 국제 제재 환경이 얽힌 복합적 사건이다. 향후 수주 내에 공개매수 절차와 로스텍의 공식적 대응이 발표되면 시장과 정책 측면에서 보다 명확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