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원유 및 가스 가격 급등이 러시아 정부로 하여금 재정준비금(국부펀드·National Wealth Fund)의 운용 규칙 변경을 연기하도록 만들었다고 해당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 세 명이 로이터에 밝혔다. 이번 결정은 단기 재정 압박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2026년 3월 23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 작전과 국제 제재로 비용 부담이 큰 상황에서도 미·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군사 충돌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혜택을 받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가 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약 $70 수준에서 거래됐으나, 전쟁 발발 이후 배럴당 $100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천연가스 가격도 동반 급등했다.
로이터 계산에 따르면, 과세 목적의 기초 유가를 배럴당 $75로 가정할 때 러시아의 예산 수입 중 석유·가스 관련 수입은 3월 대비 4월에 70% 증가하여 0.9조 루블(9000억 루블)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2025년 10월 이후 최고 월간 수준이라는 평가다.
컷오프(기준) 가격은 얼마나 많은 수입이 기금으로 흘러들어가는지를 결정한다. 전쟁 이전 러시아는 더 많은 석유 수입을 준비기금으로 배분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며, 이른바 컷오프 가격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예산 지출 삭감도 논의된 바 있다.
현재 컷오프 가격은 $59이며, 이 가격을 초과하는 모든 수입은 국부펀드(National Wealth Fund)로 흘러간다. 익명으로 발언한 소식통들은 정부가 이제 이 컷오프 가격 변경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컷오프 가격 변경을 위해서는 예산법의 법적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변경 시점이 보다 가능성 있게는 2027년으로 미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변경은 매우 임박한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재무장관 안톤 실루아노프(Anton Siluanov)는 전쟁이 시작되기 사흘 전인 2월 25일 컷오프 가격을 낮추는 변화를 2주 이내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월요일(기사 기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높은 유가로 발생하는 수입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균형 있는 결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날 실루아노프는 푸틴과의 회동 이후 정부가 중기적으로 예산이 유가 변동에 덜 취약하도록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예산은 연평균 유가를 컷오프 가격과 동일하게 계산한다. 월평균 유가가 컷오프 가격보다 낮으면 그로 인한 적자는 준비기금에서 보전되며, 반대로 월평균 유가가 컷오프 가격보다 높으면 초과분이 기금으로 적립된다.
다른 두 명의 소식통은 고위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이번 해에는 컷오프 가격을 유지할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으며, 예산 지출 삭감의 필요성도 재검토 대상이 됐다고 전했다.
새로운 거시 전망과 외환시장 영향
정부는 4월에 새 거시경제 전망을 발표할 예정이며, 이 전망에는 예산의 지침이 되는 올해 평균 유가 전망치가 포함될 것이다. 준비기금은 외화 준비로 보유되고 있으며, 현재는 대부분 위안화(중국 위안)로 구성되어 있어 외환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새로운 컷오프 가격을 논의하면서 기금의 외환 매각을 중단하기로 한 결정은 3월에 루블화의 달러 대비 환율을 약 6%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 엘비라 나비울리나(Elvira Nabiullina)는 지난주 금리 인하 후 발언에서 높은 유가가 러시아 경제에 미칠 영향을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녀와 제1부총재 알렉세이 자봇킨(Alexei Zabotkin)은 예산 규칙이 외부 충격에 대한 러시아의 최선의 방어 장치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설사 이란 위기가 갑자기 종결되더라도 대부분의 러시아 정책 입안자들은 일정 기간 유가에 리스크 프리미엄(위험 프리미엄)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용어 설명
컵오프(cut-off) 가격은 정부가 예산 수입을 계산할 때 기준으로 삼는 유가 수준을 뜻한다. 이 가격을 초과하는 수입은 국부펀드로 흘러가고, 밑돌면 준비기금에서 적자를 보전한다. 이렇게 설정된 예산 규칙은 유가 변동으로 인한 재정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국부펀드(National Wealth Fund)는 러시아의 재정 안정성 확보를 위한 준비자금으로, 비상시 예산 보전용이나 장기 투자에 사용될 수 있다. 최근에는 외화 보유 비중을 늘려 위안화 자산을 확대해 왔다.
정책적 함의 및 향후 전망
이번 결정은 단기적으로는 정부 재정의 유연성을 확보해준다. 유가 급등으로 인한 추가 수입이 당분간 예산으로 흘러들어오지 않게 되면, 정부는 즉각적인 지출 확대나 사회정책에 대한 재원 배분을 더 신중히 검토할 수 있다. 반대로 컷오프 가격을 낮출 경우 초과분이 기금으로 적립되어 장기적 재정 완충 역할을 강화한다.
금융·경제 분석가들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주목한다. 첫째, 유가가 현재 수준(배럴당 $100 이상)을 유지하거나 더 상승하면 단기 수입이 크게 늘어나 예산 흑자 폭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정부는 방위비·사회복지·인프라 투자 등 중대한 재정 결정을 앞두고 균형적 사용을 모색할 것이다. 둘째, 유가가 하락해 컷오프 수준 근처로 돌아가면 준비기금에서 적자를 보전해야 해 재정 여건이 조여질 수 있다. 셋째,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지속돼 유가에 영구적인 리스크 프리미엄이 붙을 경우, 중·장기적으로 러시아는 높은 유가를 전제한 예산 구조 개편을 강하게 고려하게 된다.
외환시장 측면에서는 기금의 외화 매각 중단 또는 재개 결정이 루블 환율에 즉각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미 정부의 일시적 외환 매각 중단이 루블 약세를 초래한 전례가 있는 만큼, 중앙은행은 필요 시 시장 안정화를 위한 통화정책 수단(금리 조정·외환시장 개입 등)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금리·통화정책에서는 나비울리나 총재의 발언처럼 아직 평가가 완전치 않으나,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상방 리스크와 루블 환율 변동성을 고려하면 중앙은행은 완화와 긴축 사이의 신중한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결론
요약하면, 러시아 정부는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상승을 배경으로 당초 계획했던 컷오프 가격 변경을 연기하기로 했다. 이는 단기 재정 압박을 완화하지만, 장기적 재정안전성 확보와 외환시장 안정화라는 과제를 남긴다. 4월 발표될 새 거시 전망과 향후 유가 흐름이 향후 정책 선택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과 시장참가자들은 유가의 향방과 리스크 프리미엄 지속 여부, 그리고 준비기금 운용과 외환시장 정책의 연계를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