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와 휘발유 가격이 약세로 돌아섰다. 9월물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은 -1.13달러(-1.70%) 하락한 배럴당 65.50달러에, 9월물 RBOB 휘발유는 -0.0107달러(-0.51%) 내린 갤런당 2.08달러에 각각 장을 마감했다. WTI 기준으로 1주일 만에 최저치다.
2025년 8월 6일, 나스닥닷컴 보도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에너지 수요 둔화 우려와 함께 OPEC+ 증산 결정, 러시아의 공습 휴전 가능성 등 여러 악재를 동시에 소화했다. 특히 같은 날 발표된 미국 7월 공급관리협회(ISM) 서비스업 지수가 예상(51.5)보다 낮은 50.1로 내려가면서 경기 둔화 불안이 확대됐다.
유가 하락에 더욱 힘을 실은 것은 블룸버그 통신이 전한 “러시아가 2차 제재를 피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상공에서의 공습을 잠정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가 금요일(8월 8일)까지 휴전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산 에너지 수출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해왔다. 미국 대통령 특사 제이슨 위트코프가 이번 주 러시아를 방문해 마지막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어서, 시장 참가자들은 향후 외교 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제 지표 부진과 공급 과잉 공포
미국뿐 아니라 유로존의 경기 지표도 부정적이었다. 유로존 7월 S&P 글로벌 종합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잠정치 51.0에서 50.9로 하향 수정됐다. PMI가 50을 간신히 상회한다는 것은 제조·서비스업 전반의 경기 확장세가 거의 멈췄음을 의미한다.
“경기 지표가 기대치를 밑돌면서 단기적으로 원유 수요가 추가 위축될 수 있다는 시각이 빠르게 확산됐다.” (뉴욕 소재 헤지펀드 매니저)
이처럼 경기 둔화 우려가 짙어지는 시점에 OPEC+ 산유국 연합은 지난 3일 일요일 회의에서 9월 1일부로 일평균 54만7천 배럴 규모의 추가 증산에 합의했다. 이는 2026년 9월까지 2년간 단계적으로 220만 배럴을 복원하는 장기 로드맵의 일환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고가 이미 일일 100만 배럴 속도로 불어나고 있으며, 2025년 4분기에는 글로벌 수급이 수요 대비 1.5% 초과 공급 상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관측한다. 실제로 7월 OPEC 산유량은 전월 대비 2만 배럴 감소한 하루 2831만 배럴로 집계됐지만, 이는 계획된 증산 물량(166만 배럴)이 2026년까지 여전히 유보돼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공급 과잉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미·러 외교전이 불러온 가격 변동성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월요일 “러시아가 휴전에 합의하지 않으면, 러시아산 원유를 구입하는 모든 국가에 3자 관세(Triple-Digit Tariffs)를 부과하겠다”라고 경고했다. 월가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는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세계 석유 공급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100%대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시장은 7년 만의 공급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간 서방 제재를 우회해온 러시아 ‘그늘선단(Shadow Fleet)’도 감시가 강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승인한 14차 대러 제재 패키지에서 러시아 은행 20곳을 국제금융통신망(SWIFT)에서 추가 차단하고, 인도 로스네프트 지분 합작 정유소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제재 대상 선박은 400척을 돌파했다.
탱커 내 저장유 감소도 관전 포인트다. 조사업체 보텍사(Vortexa)에 따르면 7일 이상 정박한 부선 내 재고는 8월 1일 기준 전주 대비 15% 감소한 7912만 배럴로 집계됐다. 일시적이나마 공급 긴축 효과를 낳는 요인이다.
EIA·베이커휴스 지표로 본 미국 내 동향
시장 컨센서스는 7일(수) 발표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주간 재고에서 원유가 -260만 배럴, 휘발유가 -100만 배럴 줄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직전 주간 보고서에 따르면 7월 25일 기준 미국 원유 재고는 5년 평균보다 5.6%, 휘발유 재고는 0.7%, 중간유 재고는 15.2% 각각 적었다.
공급 측면에서는 미국 원유 생산량이 그 주간 1331.4만 배럴(주간 +0.3%)로, 2024년 12월 기록한 역대 최고치(1363.1만 배럴)에 근접했다. 반면 베이커휴스가 집계한 미국 내 가동 중인 원유 시추기(Oil Rig)는 8월 1일 기준 410기로, 3.75년 만의 최저수준을 또다시 경신했다. 2022년 12월 627기에서 2년 반 만에 35% 넘게 급감한 수치다.
전문가 시각과 추가 변수
시장 전문가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선이 단기 휴전 국면에 들어설 경우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안팎까지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고율 관세를 집행한다면, 단숨에 공급 쇼크로 반전돼 “70~80달러대 재진입”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한편, OPEC+가 공식 회의에서 ‘수요 추이를 지켜보겠다’며 문구를 언급한 것은 향후 즉각적인 감산 재개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4월에도 같은 논법을 사용해 100만 배럴 이상의 전격 감산을 단행한 전례가 있다.
주요 용어 해설
• ISM 서비스업 지수: 미국 공급관리협회가 매달 발표하는 서비스업 경기 선행지표로, 50 이상이면 확장·50 미만이면 위축을 의미한다.
• RBOB 휘발유: Reformulated Blendstock for Oxygenate Blending의 약자로, 미국에서 가장 활발히 거래되는 휘발유 선물.
• Shadow Fleet: 서방 제재를 피해 원유를 운송하는 러시아 계열 선박 집단을 지칭.
• Baker Hughes Rig Count: 미국 에너지 서비스 기업 베이커휴스가 매주 발표하는 시추기 가동 현황으로, 원유·가스 시추 투자 추이를 가늠하는 선행지표.
따라서 투자자들은 이번 주 후반 열릴 미·러 협상 테이블, EIA 주간 재고 발표, OPEC+ 추가 논평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변동성이 확대되는 구간인 만큼,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한 원자재 투자에는 주의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