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법 위반 이유로 텔레그램·왓츠앱 통화 제한

모스크바발 – 러시아 정부가 텔레그램(Telegram)왓츠앱(WhatsApp)의 음성‧영상 통화를 부분적으로 차단하기 시작했다. 디지털개발부는 13일(현지시간) 이들 외국계 메신저가 사기 및 테러 관련 수사에서 법 집행 기관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25년 8월 13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와 해외 빅테크 플랫폼 간 갈등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는 ‘디지털 주권(Digital Sovereignty)’을 명분으로 자국 인터넷 공간에 대한 통제를 확대하고 있으며, 자국산 서비스 이용을 장려하고 해외 플랫폼 의존도를 낮추려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정부 서비스와 통합된 국가 지원형 메신저 개발을 승인했다. 이는 국가 주도 네트워크 생태계 구축의 일환으로, 왓츠앱·텔레그램 같은 대중적 메신저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통신 규제기관 로스콤나드조르(Roskomnadzor)는 인터팍스 통신을 통해 “범죄자 대응을 위해 외국 메신저의 통화를 부분적으로 제한한다”며 “기능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추가 제한도 없다”고 밝혔다.

메타 플랫포럼즈 산하 왓츠앱과, 두바이에 본사를 둔 텔레그램 측은 즉각적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텔레그램은 러시아 일간지 RBC에 “폭력과 사기를 조장하는 콘텐츠에 계속 맞서고 있으며, AI 기반 모니터링 도구로 매일 수백만 건의 악성 메시지를 삭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 취재진은 8월 11일부터 텔레그램 음성통화 기능이 거의 작동하지 않았고, 왓츠앱 통화는 금속성이 섞인 잡음으로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확인했다*1.

디지털개발부는 두 플랫폼이 사기·테러 활동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거부해 왔다고 비판했다. 통화만을 대상으로 한 이번 차단은 ‘러시아 법령 준수’ 시 즉시 해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원 정보기술위원회 부위원장 안톤 고렐킨은 플랫폼이 러시아 법에 완전히 협조하고, 현지 법인 설립‧데이터 저장·로스콤나드조르 및 사법 당국과의 무조건적 협력을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2년 메타가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됐음에도 왓츠앱은 대중성을 이유로 예외적으로 운영이 허용돼 왔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은 차단 위협과 벌금 부과 등 압박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다.

고렐킨은 지난달 “왓츠앱은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다른 하원의원은 왓츠앱의 유지 자체가 ‘국가안보 위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판적 시각에서는, 정부가 추진 중인 새 국산 메신저가 사용자 활동을 추적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왓츠앱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춰 이용자를 국산 플랫폼으로 유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러시아 정부는 인터넷 인프라를 통제할 기술적 역량을 키우고 있으며, 비인가 웹사이트·우회 접속 도구에 대한 차단과 트래픽 저하를 확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 해설: 로스콤나드조르와 ‘디지털 주권’

로스콤나드조르(Roskomnadzor)는 러시아의 연방 통신·정보 기술·매스미디어 감독기관이다. 플랫폼 차단, 데이터 국적화(데이터를 자국 서버에 저장하도록 하는 정책), 불법 콘텐츠 삭제 요구 등 러시아의 사이버 영토주의를 집행하는 핵심 부처다.

‘디지털 주권’은 해외 IT 기업 의존성에서 벗어나 자국 서비스·클라우드·네트워크를 육성하려는 러시아 정부 정책이다. 이는 제재 리스크 최소화와 정치·사회 통제 강화라는 두 목표를 함께 추구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자 관전평

이번 통화 차단은 ‘부분적’이라는 단서를 달았으나, 실사용자 체감은 전면 차단에 가깝다. 러시아 내 스마트폰 메신저 시장에서 왓츠앱과 텔레그램의 합산 점유율은 80% 이상으로 추정된다*2. 통화 기능이 막힐 경우 러시아인은 업무·가족 연락수단을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 정부가 선보일 국산 메신저가 곧 출시된다면, 시장은 사실상 유도된 독점 상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 해외 플랫폼이 현지 법인을 세우고 정부 요구를 수용할지 여부, 둘째, 러시아 일반 소비자와 중소기업이 느끼는 ‘서비스 품질 저하’에 따른 불만이 체제 비판으로 이어질지다. 텔레그램·왓츠앱의 대응 수위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유럽연합(EU)·미국 규제 당국과의 마찰, 글로벌 이용자 반응도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결국 러시아 정부가 제시한 ‘협력 또는 철수’라는 이분법은 외국계 플랫폼의 러시아 시장 전략뿐 아니라, 글로벌 인터넷의 분절화(Fragmentation) 흐름에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