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 기준금리 인하 ‘점진·신중’ 기조 재확인

SOCHI발(러시아) — 러시아 중앙은행(CBR)의 엘비라 나비울리나(Elvira Nabiullina)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를 극도로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총재는 정부가 2025년부터 부가가치세(VAT)를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지나친 완화 속도는 인플레이션 재가열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5년 9월 25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나비울리나 총재는 “우리는 앞으로도 한 걸음 한 걸음을 세밀하게 조율해 나갈 것”이라며 “너무 급격한 통화 완화는 인플레이션 스파이럴이 재개될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총재는 이어 “추가적이면서도 과속(過速)적인 통화 조건 완화는 위험 요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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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단계마다 경제 데이터와 재정 여건을 정밀하게 점검해 가파른 인플레이션 재상승을 막겠다.”


부가가치세 인상과 인플레이션 영향

러시아 정부는 내년부터 VAT를 인상하겠다는 초안 예산을 공개하면서, 물가 상승률에 일시적인 충격이 가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나비울리나 총재는 “일회성 단발(單發) 효과에 불과하다”며 장기적·구조적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VAT(Value-Added Tax, 부가가치세)는 소비자가 지불한 최종 가격에 포함되는 간접세다. 세율 인상은 소비 단계의 가격을 끌어올려 단기에 물가 상승률을 자극할 수 있다. 그러나 총재는 재정 적자 확대를 국채 발행으로 메우는 것보다는 VAT 인상이 장기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오일 머니·재정준비기금 방어

나비울리나는 정부가 제안한 ‘오일 컷오프 프라이스(cut-off price)’ 인하에 대해 “재정준비기금(National Wealth Fund·NWF) 건전성을 제고하는 조치”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해당 방안은 국제유가가 일정 수준을 넘어설 때 초과 석유 수익을 자동으로 NWF로 적립해 재정 완충 장치를 강화하는 구조다.

컷오프 프라이스는 산유국 예산제도에서 ‘원유 가격 계상 기준선’을 뜻한다. 기준선을 낮추면 국제유가가 조금만 올라가도 초과 수익이 준비기금으로 유입되어 경기 변동 완충력이 커진다. 이는 러시아 재정의 ‘세이프티넷’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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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 기조와 중기 전망

러시아 중앙은행은 9월 12일 기준금리를 1%p 내린 연 17%로 조정했다. 중앙은행은 2026년 평균 기준금리를 12~13% 선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현재 약 8% 수준인 물가상승률을 목표치 4%로 되돌리지 위한 완화 속도를 ‘계단식’으로 설정했다.

나비울리나는 “물가 기대심리가 완화되고 있으나, 인플레이션 목표 복귀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경제 주체의 기대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명·용어 해설

인플레이션 스파이럴: 임금 및 가격 상승이 상호 작용하며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재정준비기금(NWF): 러시아 정부가 원자재 수출로 얻은 초과 세수를 적립해 경기 침체나 재정 쇼크에 대비하도록 설계한 기금이다.
컷오프 프라이스: 국제유가가 해당 가격을 초과할 때 발생하는 추가 수익을 특정 목적으로 배분하는 가격 기준선을 의미한다.


전문가 시각 및 함의

시장 참여자들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금융 안정성 확보를 위해 ‘매파적 신중함’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 기준금리가 여전히 두 자릿수 후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비울리나 총재의 발언은 단기적 자본 유출 억제와 루블화 방어를 겨냥한 ‘보험성 코멘트’로 해석된다. 또한 VAT 인상 및 오일 컷오프 조정은 재정 여력 확보와 인플레이션 파급효과 간 균형을 모색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결국 러시아 통화정책은 물가 목표(4%)·재정 건실성·환율 안정이라는 세 가지 축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다중(多重)목표 게임’에 직면해 있다. 나비울리나 총재가 언급한 ‘조율(calibration)’은 이러한 복합 목표 하에서 점진적·데이터 중심 정책 경로를 채택하겠다는 결정적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