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하늘 휴전’ 가능성에 국제 유가 1주일 만에 하락

[국제 에너지 시황] 9월물 WTI(서부텍사스산 중질유) 선물 가격과 9월물 RBOB 가솔린 선물 가격이 5일(현지 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각각 1.70%, 0.51% 하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두 종목 모두 1주일 만의 최저치를 기록해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2025년 8월 6일, 나스닥닷컴 보도에 따르면 이날 유가는 경기 둔화 우려와 공급 과잉 가능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약세 흐름을 이어 갔다. 특히 미국과 유로존의 주요 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하회한 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하늘(공중) 휴전”을 검토하고 있다는 블룸버그 보도가 더해져 매도세가 가팔라졌다.

WTI는 미국 서부 텍사스 지역에서 생산되는 중질유로, 세계 원유 시장의 기준 가격 역할을 한다. RBOB 가솔린은 Reformulated Blendstock for Oxygenate Blending의 약자로, 미국 동부 해안에서 소비되는 고옥탄 가솔린의 벤치마크다. 이처럼 WTI와 RBOB는 글로벌 석유 제품 가격의 바로미터로 활용되기에, 두 상품의 하락은 곧 국제 석유 시장 전반의 약세 심리를 가리킨다.


■ 경기 지표 부진이 낳은 수요 둔화 우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7월 서비스업 지수는 50.1로, 전월보다 0.7포인트 떨어졌다. 시장 예상치(51.5)와 비교해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S&P가 공동 집계한 유로존 7월 종합 구매관리자지수(PMI) 역시 50.9로 하향 조정돼, 서비스업·제조업 모두 확장과 위축의 경계선(50)을 간신히 넘어서는 데 그쳤다. 이러한 수치는 원유 및 석유 제품 수요가 단기간에 반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졌다.

글로벌 서비스업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면서 교통·물류·레저 부문의 연료 소비가 광범위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해석이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 확산됐다.

■ 러시아의 양보안? ‘하늘 휴전’ 카드
블룸버그는 “러시아가 미국의 2차 제재를 피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의 공중전(空中戰)을 중단하는 안을 포함, 다양한 외교적 양보를 고심 중”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8일(금)까지 휴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러시아산 에너지에 세 자릿수(100% 이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존 윗코프(Whitkoff) 미 특사가 이번 주 모스크바를 방문해 중재에 나서기로 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는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러시아의 하루 평균 원유 수출량(약 470만 배럴)을 대체할 여력이 OPEC에도 없어, 단기간에 공급 쇼크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시장은 당장은 휴전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 ‘러시아산 수급 차질’ 시나리오를 일부 철회, 유가를 끌어내리는 모습이다.


■ OPEC+ 증산 결정이 겹친 ‘이중 악재’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 연합체인 OPEC+는 3일 회의에서 9월 1일부터 하루 54만 7,000배럴을 추가로 증산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2026년 9월까지 220만 배럴을 순차적으로 복원한다는 2년간의 증산 로드맵 일환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4분기에는 세계 석유 수요 대비 1.5% 규모(일 150만 배럴)의 초과 공급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참고로 OPEC+는 이미 1.66백만 배럴의 공급을 중단한 상태이며, 필요 시 물량을 재투입하거나 증산 계획을 철회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증산 발표 자체가 ‘공급 과잉’ 불안을 부추기면서 가격 압력을 높였다.

■ 유럽연합의 대러 신규 제재, 국제 원유 운송망에 충격
EU는 최근 발표한 14차 제재 패키지에서 러시아 은행 20곳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했다. 또한,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츠(Rosneft)가 지분을 보유한 인도 내 대형 정유공장까지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이와 함께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으로 불리는 러시아 계열 선박 105척이 추가 제재 대상에 포함돼, 총 400척 이상으로 늘었다.

이러한 물류 제약은 장기적으로 공급 경색 요인이 될 수 있으나, 단기적으로는 러시아가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석유 수출량을 늘려 현금을 확보하려는 유인이 커 가격 인하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 해상 저장 물량 감소가 지지선 형성
해상 에너지 분석업체 보텍사(Vortexa)는 8월 1주 기준, 7일 이상 정박한 채 머물고 있는 유조선 적재 원유가 전주 대비 15% 감소한 7,912만 배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단기적 공급 타이트닝(긴축)을 시사하는 요소로 작용하며 유가 하락 폭을 제한했다.

시장 컨센서스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6일 발표할 주간 재고는 원유가 260만 배럴 감소, 휘발유가 10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7월 25일 주간 보고서에서는 원유 재고가 5년 평균보다 5.6%, 증류유 재고는 15.2% 낮아 장기적 재고 부족 우려는 여전히 유효하다.

■ 미국 내 생산·시추 동향
같은 기간 미국 원유 생산량은 일 1,331.4만 배럴로 주간 기준 0.3% 증가했다. 다만, 베이커휴스(Baker Hughes) 집계 유전 가동 리그 수는 410기로 줄어 3년 9개월 만의 최저치를 새로 썼다. 2022년 12월 627기와 비교하면 2년 반 만에 34% 감소한 셈이다.

리그(rig)는 시추 장비를 가리키며, 이 지표는 향후 생산량 변화를 가늠하는 선행지표로 활용된다.


■ 기자 해설 및 전망
단기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외교 전선에서의 진전 여부가 유가 방향성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다. 미국이 예고한 고율 관세가 실제 발효되면 공급 쇼크로 급등이 불가피하겠지만, 시장은 휴전 가능성을 선반영해 당분간 가격 박스권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중기적으로는 OPEC+의 증산 속도와 서방의 제재 강도, 그리고 글로벌 매크로 지표가 조합돼 유가를 결정할 전망이다.

국내 정유·화학 기업은 원가 변동성에 대비한 헤지 전략 확대가 필요하며, 항공·해운 업계 역시 연료비 변동성 리스크를 면밀히 관리해야 한다. 개인 투자자는 원유 ETF 및 ETN 상품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손실 제한 장치를 마련한 뒤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본 기사는 원문(Rich Asplund, Barchart.com)을 전문 번역·소개한 것이며, 투자 판단의 책임은 독자에게 있음을 알려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