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다시 한 번 급락세를 탔다. 9월물 WTI(서부텍사스산 원유) 선물은 전일 대비 -1.70% 내린 배럴당 65.15달러*1주 최저가에 마감했고, 같은 월물 RBOB(휘발유) 선물도 -0.51% 떨어졌다. 시장 참여자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공중 휴전(air truce)’을 고려한다는 블룸버그 통신 발 보도에 즉각 반응했다.
2025년 8월 6일, 나스닥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휴전 가능성은 미국의 2차 제재를 피하려는 러시아의 ‘최후 협상 카드’로 해석된다. 앞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8월 8일까지 휴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러시아 에너지 수출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수요 둔화 징후도 유가 하락에 무게를 더했다. 7월 미국 ISM 서비스업 지수는 전월 대비 0.7p 하락한 50.1로 집계돼, 시장 예상치(51.5)를 밑돌았다. 같은 날 유로존 S&P 합성 PMI도 확정치가 50.9로 하향 조정되면서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확산했다.
러시아발 지정학 리스크 완화 가능성
블룸버그는 “러시아가 ‘공중 휴전’이라는 제한적 군사 조치를 약속하는 대신, 미국이 부과할 2차 제재를 피하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데이비드 위트코프 미 에너지특사*전 트럼프 행정부 상무부 차관보가 이번 주 모스크바를 방문해 세부 협상을 조율할 예정이다.
반면, JP모건체이스는 보고서에서 “만약 미국이 실제로 러시아산 원유에 세 자릿수 관세를 적용하면, OPEC 유휴 생산능력이 제한적인 만큼 공급 쇼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OPEC+ 증산 결정에 ‘공급 과잉’ 그림자
OPEC+는 8월 3일 회의에서 9월 1일부터 하루 54만7천 배럴 추가 증산을 승인했다. 2026년 9월까지 누적 220만 배럴/d을 단계적으로 복원해 팬데믹 이후 2년간 유지했던 감산 기조를 사실상 종료한다는 방침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고가 하루 100만 배럴씩 쌓이고 있어 2025년 4분기에는 세계 소비량의 1.5%에 해당하는 초과 공급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7월 OPEC 원유 생산량은 전달 대비 2만 배럴 줄어 2,831만 배럴에 그쳤다.
“OPEC은 수요 상황을 면밀히 지켜본 뒤, 증산을 유지하거나 중단하거나 심지어 감축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는 단서를 달았다.
EU, 러시아산 원유 추가 제재 단행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군사행동을 이유로 20개 은행을 국제결제망 ‘스위프트(SWIFT)’에서 추가 차단하고, 제3국서 재정제된 러시아산 석유까지 제재 범위를 확대했다. 인도 구자라트주에 소재한 ‘나얜가르 정유소’*러시아 로스네프트 지분 49%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로써 ‘러시아 그림자 선단’ 105척이 추가 제재를 받아 총 400척을 넘어섰다.
재고·시추 지표로 본 공급 추이
선박 추적업체 보텍사(Vortexa)는 8월 1주차 유휴 탱커(7일 이상 정박) 저장 물량이 전주 대비 15% 감소한 7,912만 배럴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8월 6일 발표 예정인 주간 재고 보고서에서 원유 재고가 260만 배럴, 휘발유 재고가 100만 배럴 감소했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주 EIA 확정치에 따르면 7월 25일 기준 미국 원유 재고는 5년 평균 대비 -5.6%, 휘발유 재고는 -0.7%, 중간유 재고는 -15.2% 낮았다. 같은 기간 미국 일일 원유 생산량은 1,331만4천 배럴로 사상 최고치였던 2024년 12월 첫째 주(1,363만1천 배럴)에 근접했다.
베이커휴즈는 8월 1일 기준 미국 내 가동 중인 원유 시추 장비가 전주보다 5기 감소한 410기로, 3년 9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집계했다. 2022년 12월 627기에서 2년 반 만에 34.6% 급감한 수치다.
용어 설명
- WTI(서부텍사스산 중질유)는 미국 텍사스주 서부에서 생산되는 고품질 원유로,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선물가격이 글로벌 벤치마크로 사용된다.
- RBOB는 Reformulated Blendstock for Oxygenate Blending의 약자로, 환경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산소화제를 혼합하기 전 단계의 휘발유 선물을 일컫는다.
- Air Truce는 전면적 휴전과 달리, 공군력(공격기·무인기 등)을 제한적으로 중단해 민간 피해를 최소화하는 임시 군사조치를 의미한다.
기자 관전평
러시아가 ‘공중 휴전’을 시사한 배경에는 에너지 외교의 벼랑 끝 전술이 자리한다. 단기간 가격 변동성은 확대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미·러 갈등과 OPEC+ 증산이 상쇄 효과를 내며 65~75달러 박스권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EU 제재가 강화되고 미국의 ‘관세 폭탄’이 현실화될 경우, 공급 차질이 오히려 유가를 극단적 랠리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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