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이젠은행, 라스페리아 청구권 14억1천만 달러 회수 기대분 손상 처리

오스트리아 라파이젠은행 인터내셔널(이하 RBI)이 러시아 투자사 라스페리아 트레이딩 리미티드(Rasperia Trading Limited)를 상대로 오스트리아 내 자산에 대해 집행하던 법적 청구권 가운데 12억 유로(미화 약 14억 1천만 달러)를 2025년 2분기부터 재무제표에서 제외(derecognize)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2025년 7월 24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 같은 회계 처리 변경은 국제회계기준(IFRS)의 인식 요건을 더 이상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사회 판단에 따른 것이다. RBI는 해당 손상 처리로 인해 2025년 상반기 연결 실적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면서도, 러시아 부문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부문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2024년 6월 러시아 법원은 RBI가 현지 자회사 매각 금지 가처분을 해제해 달라는 청구를 기각했다. 이 가처분은 2023년 체결이 무산된 거래와 관련해 라스페리아가 제기한 20억 유로 규모 손해배상 소송과 연결돼 있다.

RBI는 “회계 처리 방식은 바뀌었으나 법적 청구 자체의 타당성과 오스트리아 내 자산 집행 가능성에 대해 여전히 높은 신뢰를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데레코그나이즈(derecognize)’란 무엇인가?

일반 투자자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데레코그나이즈’는 자산·부채·수익·비용 등 계정 항목이 더 이상 회계 기준에서 요구하는 인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때, 해당 항목을 재무제표에서 제거하는 회계 용어다. 다시 말해, 예상 현금흐름이나 법적 권리가 충분히 확실하지 않을 경우, 이를 재무상태표 및 손익계산서상에서 제외함으로써 회계 정보의 신뢰성을 유지하려는 절차다.

RBI는 이제 오스트리아 법원에서 라스페리아의 현지 자산 환수를 위한 소송을 지속해, 러시아에서 부과된 20억 유로 손해배상액 중 상당 부분을 회수한다는 전략이다. 은행 측은 “러시아 법원의 압류 명령에도 불구하고, 국경을 넘어선 집행 절차를 통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경: ‘스트라바그 지분 인수’ 무산 사건

RBI와 라스페리아 간 갈등의 단초는 빈(Vienna) 소재 건설사 스트라바그(Strabag SE) 지분 인수가 좌초되면서 비롯됐다. 당시 RBI는 러시아 내 동결자산 일부를 해제하기 위해 스트라바그 지분을 인수하려 했으나, 미국 정부의 대러시아 제재 압박으로 거래를 철회했다. 이에 라스페리아가 계약 불이행을 이유로 20억 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러시아 법원은 2023년 12월 RBI에 책임을 인정했다.


실적 전망 및 시장 파급효과

RBI는 2025년 상반기 실적 발표(7월 말 예정)에서 12억 유로 손상 차손이 반영될 예정이지만, 핵심 자기자본비율(CET1)을 포함한 자본 건전성 지표가 규제 수준을 상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러시아 부문 자산을 포함할 경우 변동성이 커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시장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손상 처리가 유럽 은행권의 러시아 익스포저 관리가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재확인해 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특히 IFRS 기준에 따라 법원 판결·집행 가능성·정치적 리스크를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대형 은행들은 자산 가치 조정에 극도로 보수적인 접근을 택하고 있다.

향후 관전 포인트

  • 오스트리아 법원의 자산 환수 판결이 실제 집행으로 이어질지
  • 러시아-서방 간 외교·제재 환경 변화가 소송 절차에 미칠 영향
  • RBI의 자본비율배당 정책 조정 여부

RBI는 “법적 절차와 재무적 리스크를 면밀히 관리해 주주 가치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또한 2025년 하반기 이후에는 러시아 자산 매각을 재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1 = 0.8494 유로 환율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