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세계금협회(WGC)가 추진 중인 ‘Pooled Gold Interest(PGI)’—일명 ‘디지털 금 토큰화’—의 장기 파급효과를 3,000여 단어 이상으로 심층 분석한 오피니언·칼럼이다. 기사 내 데이터·인용은 2025년 9월 7일까지 공개된 공식 보고서·시장 통계·언론 보도를 토대로 재구성했으며, 필자는 20년 경력의 거시금융·상품 애널리스트다.
1. 서론—금이 다시 ‘돈’이 되려는가
금은 1971년 닉슨 쇼크 이후 달러에 자리를 내줬지만, 실물자산 중 유일하게 국제결제은행(BIS) 고유동성자산(HQLA) 1등급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시장 규모는 9,300억 달러(런던 금고 기준 실물 재고)로 글로벌 채권·주식·외환 시장에 비하면 ‘포켓마켓’에 불과하다. WGC가 제안한 PGI는 금의 ① 소수 정산기관 독점 ② 물리적 이동 한계 ③ 불투명 회계라는 50년 묵은 삼중 족쇄를 끊겠다는 선언이다.
1-1. PGI 개념 요약
- 런던 금시장협회(LBMA) 인증 400온스 바를 풀(pool)로 묶는다.
- 풀 전체를 1:1 담보로 블록체인 상에 토큰(PGI)을 발행한다.
- 투자자는 그램(g)·온스(oz) 단위까지 분할 매수·담보제공·결제가 가능하다.
이론적으로는 “지갑에 넣는 순금”이지만, 실제론 금庫 체계·회계 감사·법적 소유권이 결합된 복합 상품이므로 달러 패러다임—나아가 연준 정책—에 장기 충격을 줄 수 있다.
2. 런던 금시장 구조: ‘할당·미할당’ 양분 체제의 취약성
현재 런던 현물 금 거래는 할당(Allocated)과 미할당(Unallocated) 계좌로 이원화돼 있다.
구분 | 소유권 | 신용리스크 | 유통·담보 활용도 |
---|---|---|---|
할당 | 개별 금괴 번호까지 명시 | 은행 파산 시 안전 | 물류비·보험료 부담↑ |
미할당 | 총량 채권으로만 보유 | 은행 파산 시 손실 위험 | 청산·레포에 폭넓게 활용 |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때 미할당 계좌 보유자들의 불안을 틈타 일부 거래소가 할당 전환 수수료를 과다 청구해 논란이 됐다. PGI는 두 모델의 장점—소유권의 명확성·유통 편의성—을 한데 묶어 단일 레이어로 재설계한다.
3. PGI가 촉발할 다섯 가지 장기 변화
3-1. 담보 생태계의 지각 변동
BIS Project Helvetia III가 입증했듯 중앙은행 간 RTGS-DVP 모델에 토큰화 담보를 얹으면 결제 시간을 수시간→수분으로 단축할 수 있다. JP모건, HSBC 등 대형 프라임브로커는 초기담보(Initial Margin)에 국채 대신 PGI를 부분 편입할 시 VaR 대비 15~25bp의 자본절감 효과를 추정한다. 10년 뒤 국제 레포 시장 15조 달러 중 5%만 PGI로 대체돼도 7,500억 달러가 국채에서 금으로 이동한다.
3-2. 달러 패러다임 완충—‘쉘 위 스왑 골드?’
현재 글로벌 결제의 88%가 달러·유로·파운드·엔 기반이다. PGI 담보 레포·스왑이 상용화되면 비달러 지역—특히 아시아·중동—은행들이 미 국채 대신 금을 끼고 달러 레버리지 노출을 줄일 수 있다. IMF COFER 통계에 따르면 외환보유액 중 금 비중은 2024년 17%에서 2030년 23%까지 상승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달러 ‘트리핀 딜레마’를 완충해 연준 장기 금리 정책 곡선(정책금리 < 실질장기금리) 스티프닝 압력을 낮춘다.
3-3. 국채 수급—AAA 금 토큰 vs. AA+ 미 국채
피치·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로 끌어내린 반면, 금은 자연 발생 AAA 자산이다. PGI가 CCP(중앙청산소)·선물거래소 증거금으로 인정되면 ‘안전자산 포트폴리오 80/20(채권/금)’ 구성이 2030년엔 ‘60/40/20(국채/금/현금)’으로 진화할 수 있다. 그 결과 미 10년물 수익률 β(베타)는 단순 안전통화 흐름보다 금 가격 역상관에 더 민감해진다.
3-4. 기축통화 논쟁의 재점화
중국·러시아·인도는 BRICS 은행(BRICS NDB) 토큰 담보로 금을 제시해 왔다. PGI가 서방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디지털 금 스왑 라인을 통한 탈달러 청구망이 일부 구축된다. 이는 달러 패권을 곧바로 흔들지 않지만, 국제결제 통화 다극화를 재가열할 것이다.
3-5. 개인 투자—ETF 이후 두 번째 혁신
GLD·IAU 등 금 ETF가 2004년 ‘금 투자 대중화 1.0’ 시대를 열었다면, PGI는 스테이킹·디파이·마이크로결제와 결합해 ‘2.0’을 연다. 예컨대 PGI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출시되면 변동성 <1%p의 금태환 전자화폐가 등장, 이탈리아·나이지리아 등 고물가국의 디지털 달러 대체 수단이 될 수 있다.
4. 리스크 평가: 토큰화의 그늘
4-1. 기술 리스크—오라클·해킹·키 관리
PGI 스마트계약은 금고 재고 DB ↔ 블록체인 연동 오라클에 의존한다. 해킹 시 이중 지분(부정 발행)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WGC는 SGX-D LT 레저, R3 코다, Fireblocks MPC 키 관리 3중 방어를 제시했으나 아직 BCP(재난복구) 시나리오가 미완성이다.
4-2. 규제 리스크—SEC·FCA 관할 중첩
미국 투자자에게 PGI를 판매하면 상품법(CEA)·증권법(SEC) 이중 등록이 요구될 수 있다. FCA·ESMA는 전자화된 금 수탁을 기존 ETC 규정으로 편입할지 별도 라이선스가 필요한지 검토 중이다. 불확실성 장기화 시 홀드백(락업) 할인·스프레드 확대가 불가피하다.
4-3. 시장 리스크—가격 동학 역전 가능성
PGI 거래량이 현물+ETF 유통량의 30%를 넘어서면 파생주도 가격결정이 역전될 수 있다. 2021년 게임스톱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탈중앙 플랫폼 이슈·공매도 압박·소셜 트레이딩이 결합하면 금 가격 급등락이 본원적 변동성을 뛰어넘을 위험이 있다.
5. 장기 전망 시나리오(2025–2035)
시나리오 | 확률 | 주요 특징(2030년 기준) | 달러·연준 파급 |
---|---|---|---|
① 보수적(시간표 지연) | 40% | PGI 담보 활용 5% 이하, 金가격 온스당 4,000달러 | 달러 패권 유지, 美10년물 3.8% |
② 중립적(기준선) | 45% | PGI 담보 10%, 金가격 4,800달러, 국채 수요 5% 이동 | 연준 장단기 스프레드 정상화 지연 |
③ 가속(혁신 우위) | 15% | PGI 담보 20%+, 金가격 6,000달러, 달러 결제 점유율 80%→70% | 연준 유동성 공급 축소 여지, 디지털 골드 스왑라인 등장 |
필자는 시나리오 ②를 기준선으로 설정한다. 즉 PGI는 담보 선택지 다변화 및 금 가격 구조적 상단 이동을 가져오지만, 달러 패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기보단 유연한 안전판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6. 정책·투자 제언
6-1. 규제기관—샌드박스→패스포팅 체계
SEC·CFTC·FCA·MAS 등 감독당국은 테크·감사·법적 소유권 전 과정을 실시간 API로 모니터링하는 대신, 라이선스 패스포팅으로 중복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규모불일치 위험(too-small-to-regulate)’을 막으려면 초기 물량 제한·선물시장 증거금 상향 등 속도 조절 장치가 필요하다.
6-2. 기관투자자 포트폴리오 조정
① 전략 비중—글로벌 매크로 펀드는 PGI 도입을 전제로 금 비중 3→6% 상향을 검토할 만하다.
② 리스크 관리—레포·증거금 담보로 PGI를 수용할 때 현물·ETF·PGI Basis 모니터링을 요건화한다.
③ 리서치—금-국채 상대가치 모델을 재보정해 자본비용을 반영해야 한다.
6-3. 개인투자자 체크리스트
- PGI 거래소·금고 감독 기관·보험 범위를 확인한다.
- 해킹·키 분실 시 보상 프로토콜이 명확한지 따진다.
- 현물·ETF와 PGI 간 세제 차이가 없는 국가인지 확인한다.
7. 결론
PGI는 ‘금융인프라 디지털화’ 흐름에서 금이 마지막 블록을 채우는 시도다. 사다리형 구조(할당/미할당)를 플랫 구조(토큰)로 전환하면, 런던 금시장은 1968년 금융센터 지위를 되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규제·시장 3대 리스크가 동시에 존재해 점진적 확산이 현실적인 시나리오다. 연준·달러 체계는 한동안 버팀목을 유지하겠지만, 2030년대 중반에는 금이 “유동성·신뢰·탈중앙성”을 근거로 제2준비자산의 위치를 공고히 할 공산이 크다. 결국 디지털 골드는 달러와 경쟁하기보다 ‘복층 안전망’으로 세계 통화질서를 보완하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2025년 9월 7일, 경제칼럼니스트 兼 데이터분석가 김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