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로이터 — ABC 방송이 인기 심야 토크쇼 진행자 지미 키멀(Jimmy Kimmel)을 돌연 정지시킨 조치는, 연방통신위원회(FCC)가 가한 압력과 맞물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주류 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을 어떻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2025년 9월 2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키멀은 보수 성향 활동가 찰리 커크(Charlie Kirk) 피격 사건의 용의자에 대해 언급했다가 FCC의 브렌던 카(Brendan Carr) 위원장으로부터 ‘허위 사실’ 지적과 함께 방송 면허 취소 위협을 받았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편향적’이라고 판단하는 기관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한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가 더욱 증폭됐다.
FCC는 방송 면허뿐 아니라 미디어 기업 인수·합병(M&A) 승인권까지 쥐고 있어, 현 정부의 규제 시그널은 업계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디즈니(Disney)의 자회사 ABC가 키멀 프로그램을 중단한 것은, 2024년 12월 조지 스테퍼너폴로스(George Stephanopoulos) 발언 관련 소송을 1,500만 달러 합의로 마무리한 이후 두 번째 ‘정치적 타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 보수 진영 거물·재벌의 미디어 지배력 확대
트럼프 재선 이후 주요 미디어와 빅테크 기업 경영권은 보수 성향 억만장자들이 속속 장악하고 있다. 오라클 공동창업자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은 틱톡(TikTok) 미국 사업 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해, 1억 7,000만 명 미국 이용자를 보유한 플랫폼 지배권을 노리고 있다. 메타플랫폼(Meta Platforms)은 보수 논객 데이나 화이트(Dana White)를 이사회에 영입했고,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의 팩트체크 프로그램을 사실상 해체했다.
또한 엘리슨의 아들 데이비드 엘리슨(David Ellison)이 이끄는 스카이댄스 미디어(Skydance Media)는 파라마운트(Paramount)를 인수하면서 “CBS 뉴스의 이념적 다양성을 보장”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어 CNN을 보유한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인수 타진까지 나서, 미국 방송 뉴스 지형이 급속히 우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 진단
“미디어 정책·정치경제학을 연구하는 펜실베이니아대 빅터 피카드(Victor Pickard) 교수는 ‘지금 미국 주요 미디어는 눈에 띄게 우측으로 기울고 있으며, 이를 견제할 반대 세력이 없다’고 평가했다.”
2. FCC의 ‘면허 카드’와 방송사 압박
카 위원장은 보수 팟캐스터 베니 존슨(Benny Johnson) 인터뷰에서 “쉽게 갈 수도, 어렵게 갈 수도 있다”며 지역 방송국이 키멀 쇼를 송출할 경우 면허 취소 가능성을 언급했다. 실제로 미국 최대 방송국 소유주 넥스타(Nexstar Media Group)와 신클레어(Sinclair)는 즉각 프로그램을 선(先)편성 중단했고, 일부 ABC 계열사는 해당 시간대에 ‘찰리 커크 스페셜’을 대체 편성했다.
여기에는 총 62억 달러 규모의 테그나(Tegna) 인수·합병 심사를 코앞에 둔 넥스타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넥스타 대변인 게리 와이트먼(Gary Weitman)은 “FCC와 사전 교감은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업계에서는 면허 규제 리스크를 염두에 둔 자구책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편, 미국 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타임스·펭귄랜덤하우스 등을 상대로 제기한 언론 관련 9건의 소송 가운데 일부를 각하했다. 그러나 15억 달러 규모 타임스·랜덤하우스 명예훼손 소송과 100억 달러 월스트리트저널 소송은 계속 진행 중이다.
3. 주요 개념 설명
FCC(연방통신위원회)는 미국 방송·통신을 규제하는 독립기구다. 지상파·케이블 방송 면허 부여, 주파수 관리, 미디어 기업 M&A 심사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Make America Great Again(MAGA)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 슬로건으로, 열성 지지층을 포괄하는 정치 브랜드다. FCC 카 위원장이 문제 삼은 ‘MAGA 연계 허위 주장’은 트럼프 진영-반트럼프 진영 간 극심한 대립을 상징한다.
4. 전문가 시각과 전망
제1 수정헌법(표현·출판의 자유)을 연구하는 콜롬비아대 나이트 자유언론연구소 제밀 재퍼(Jameel Jaffer) 소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정부 권한 남용을 통해 비판 언론을 침묵시키려는 양상이 노골적”이라고 비판했다. 자유시장 연구소 캐토(Cato) 인서라(David Inserra) 연구원 역시 “바이든 행정부 당시 보수 진영이 문제 삼았던 ‘검열’ 논리를, 이번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똑같이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널리스트 코멘트
언론 자유를 둘러싼 이번 갈등은 단순히 한 예능 프로그램의 중단에 그치지 않는다. 2024년 이후 미디어 생태계는 거대 자본과 정치권력이 긴밀히 결합하며 ‘편향·검열·보복’ 삼중 압박을 강화해 왔다. 특히 FCC의 면허 심사, 대규모 명예훼손 소송, 플랫폼 인수·합병 등 ‘법적·제도적 수단’이 총동원되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계와 시민사회가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편집자 노트
본 기사는 로이터 원문을 완역·재구성한 것이며,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실 관계만을 다루되, 쟁점별 해설·분석을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