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방통계청이 2분기 국내총생산(GDP) 잠정치를 발표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카테리나 라이헤 독일 연방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이 “시급한 구조개혁”을 요구하며 경제계와 정치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예상치를 뛰어넘는 성장률 하락을 “경종”이라고 표현하며, 경쟁력 회복을 위한 과감한 정책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2025년 8월 22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2분기 GDP는 전기 대비 더 크게 후퇴해 시장 컨센서스를 깨뜨렸다. 라이헤 장관은 공식 성명에서 “1이번 수치는 행동의 시급성을 보여 준다”라며 “독일 경제가 다시 경쟁력을 얻으려면 더 멀리 나아가는, 그리고 대담한 구조개혁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유연근무제 확대 △비임금성 인건비 감축 △행정규제 완화 △에너지 가격 인하 △기업 조세 부담 경감 등 다섯 가지 핵심 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특히 비임금성 인건비(non-wage labor costs)는
“기업이 직원 1명을 고용할 때 임금 외로 내야 하는 사회보험료와 각종 부담금”
을 뜻하며, 독일 제조업계가 경쟁국 대비 상대적 약점으로 지적해 온 항목이다.
GDP 급락의 의미와 배경
GDP는 한 나라 안에서 일정 기간 동안 새로 생산된 재화·서비스의 합계를 뜻하는 가장 종합적인 경기지표다. 이번 2분기 수치는 “예상보다 강한 역성장”으로 표현될 만큼 충격을 줬는데, 에너지 가격 불안·중국 수요 둔화·내수 위축·제조업 PMI 부진 등 복합 요인이 원인으로 꼽힌다. 라이헤 장관은 통계청 수치를 인용하며 “잠재성장률과 실제 성장률 간 격차(output gap)가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연근무제와 노동시장 개혁
장관이 첫 번째 개혁과제로 제시한 ‘유연근무제’는 시간 선택제·재택근무·압축근무제 등을 포함한다. 그는 “노동시간 규제를 21세기 현실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고령화와 숙련 인력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복합 처방으로,
“일의 시간·공간·방식을 유연하게 설계할 때 생산성과 삶의 질을 함께 높일 수 있다”
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비임금성 인건비 부담 완화
두 번째 과제는 기업의 사회보험료 비중 축소다. 라이헤 장관은 “회사가 신규 투자를 꺼리는 가장 직접적 이유 중 하나가 인건비”라며 “연금·건강보험 기여율을 일정 한도에서 동결하거나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단순히 기업을 위한 감세가 아니라 고용 창출을 위한 투자”라고 주장했다.
행정규제 완화와 ‘붉은 테이프’ 절감
독일 산업계는 Bürokratieabbau 즉 ‘관료 절차 감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라이헤 장관도 “신규 설비 인허가에만 평균 18개월이 걸리는 현실”을 지적하며 ‘원스톱(One-Stop) 전자 인허가 플랫폼’ 도입을 예고했다. 정부는 연내 관련 법안을 마련해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에너지 가격과 친환경 전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등한 천연가스·전력 요금은 독일 제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장관은 “화석연료 가격에 휘둘리지 않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재생에너지 투자 세액 공제와 그리드(전력망) 확충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2중장기적으로는 수소경제를 통해 ‘메이드 인 저먼(독일산)’이라는 품질보증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 조세 부담 경감
“세금은 올리기보다 낮춰야 한다”라는 라이헤 장관의 발언은 연립 정부 내에서도 논쟁거리다. 중도좌파·녹색당이 세입 확보를 위해 법인세 인상안을 검토해 온 만큼, 정책 조정 과정이 복잡할 전망이다. 다만 그는 “투자 회수 기간이 짧아질수록 생산 설비가 독일을 떠날 가능성도 줄어든다”며 법인세 인하의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다.
전문가 진단 및 국제 비교
베를린 자유대(Free University of Berlin) 경제학과의 사빈 슈뢰더 교수는
“독일은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지만, 최근 10년간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정체됐다”
며 “구조개혁 없이 버티면 유럽연합(EU) 내 상대적 입지가 약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뮌헨 Ifo 연구소는 “단기 침체는 불가피하지만, 에너지 전환 투자와 디지털화가 속도를 내면 2026년부터 완만한 반등이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용어 해설: 비임금성 인건비와 붉은 테이프
비임금성 인건비는 직원 급여 외에 고용주가 의무적으로 부담하는 비용(연금·의료·실업·요양보험 등)을 의미한다. 반면 붉은 테이프(red tape)는 과도한 행정 절차·서류 작업으로 인한 시간·비용 낭비를 지칭하는 관용어다. 두 요소 모두 기업 경영지표에서 총소유비용(TCO)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자 의견 및 전망
본 기자는 “라이헤 장관이 제시한 5대 개혁안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본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친환경 전환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독일이 경쟁력을 지키려면 에너지·노동·세제라는 3대 고비용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 다만 연립 정부의 이념적 차이, EU 차원의 정책 조율, 국제 경기 방향 등 변수가 많아 속도 조절이 관건이다. 앞으로 독일 의회의 관련 법안 심의 일정, 10월 예정된 중기재정계획 업데이트, 그리고 11월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의 독일 입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론
2분기 GDP 충격 이후 라이헤 경제장관이 꺼내 든 ‘대담한 구조개혁’ 카드는 독일 경제의 ‘경쟁력 되찾기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다. 산업계는 세부 실행 로드맵을 촉구하고 있으며, 정치권은 재정 건전성과 투자 촉진 사이 접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향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얼마나 실질적·지속 가능한 해법이 도출되는지가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체 경기 흐름을 좌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