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발 로이터 특약—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 크리스티안 제빙(Christian Sewing)이 2013년 이탈리아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내부감사 책임자로 참여한 사실이 10여 년 만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거래 당사자였던 전(前) 임직원이 1억5,200만 유로(약 1억7,80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2025년 8월 2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해당 소송은 올해 12월 프랑크푸르트 지방법원에서 본격 심리될 예정이며, 은행 측은 최근 수개월간 자체 재조사를 실시한 결과 “위법행위는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번 절차는 2018년부터 도이체방크 수장을 맡아 ‘정화(클린업)’ 작업을 추진해온 제빙 CEO의 리스크 관리 역량을 공개적으로 시험대에 올릴 전망이다.
주요 쟁점은 제빙 CEO가 수석 감사책임자(chief auditor)로 재직하던 2013년, 이탈리아 은행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Monte dei Paschi·MPS)와의 복합 파생거래 구조를 어떻게 조사·보고했느냐는 점이다. 원고 다리오 시랄디(Dario Schiraldi)는 ‘딜 팀(Deal Team)’이 손실 숨기기에 가담했다는 내부 감사보고서가 사실상 희생양 만들기를 목적으로 작성됐다고 주장한다.
배경 설명 — 파생상품(derivative)
파생상품은 기초자산(주식·채권·통화·금리 등)의 가치 변동을 토대로 가격이 결정되는 금융계약을 말한다.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은 잠재적 수익이 큰 반면, 회계 처리 방식에 따라 위험노출과 자본적정성(capital adequacy)이 달라질 수 있어 감독당국의 주된 관리 대상이다.
이번 사건은 2019년 이탈리아 법원이 시랄디 등 6명의 전·현직 도이체방크 직원에게 ‘MPS 손실 은폐 공모’ 혐의로 유죄를 선고한 데서 비롯됐다. 해당 판결은 2022년 상급심에서 전원 무죄로 뒤집혔지만, 시랄디 측은 “은행 경영진이 내부 허가를 내주고도 현장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했다”라며 독일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도이체방크는 2014년 자행한 자체 감사결과를 이탈리아 중앙은행에 제출하면서 “중대한 문서 누락이 있었고, 적절한 보고 절차가 작동했다면 거래를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도이체방크는 기초자산인 수십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대량 매집하면서도 이를 공시하지 않아, 해당 거래를 파생상품이 아닌 대출(loan)로 분류해 규제상 요구자본을 축소할 수 있었다.
“적절한 처리(appropriate handling)가 이뤄졌다면 해당 트랜잭션은 거부되거나 최소한 고위층에 escalated(위험 보고)됐을 것” — 2014년 도이체방크가 이탈리아 중앙은행에 제출한 프레젠테이션 중
시랄디 측은 올해 3월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서 “은행이 보유한 수백만 건의 이메일·문서를 확보한 결과, 내부 감사가 사전에 결론을 정해놓고 제한된 자료만 활용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도이체방크 대변인은 로이터에 “감사는 독립적으로 실시됐으며 핵심 결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반박했다.
도이체방크 이사회 전폭 방어
알렉산더 바이넨츠(Alexander Wynaendts) 감독이사회 의장은 “본 사안은 10년 이상 공개적으로 논의돼온 만큼 모든 사실관계가 명확하다”며 “경영진을 전폭 지원해 소송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은행은 2024년 사업보고서에서 해당 건을 ‘중대한 민사·규제 리스크’ 목록에 포함했다.
제빙 CEO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연임 직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완료하고 규제·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가 추진한 ‘슬림다운 전략’으로 도이체방크는 수년간의 적자를 벗어나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독일 정부의 ‘Made For Germany’ 산업 부흥 프로젝트에서도 핵심 금융파트너로 발돋움했다.
전문가 시각 — 국제 금융업계 관점에서 볼 때, 글로벌 은행 CEO가 과거 파생거래 감사 업무로 법정 증언대에 서는 사례는 드물다. 이는 감독당국이 ‘문화(culture) 및 책임소재’를 점점 더 중시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도이체방크가 “위법 없음”을 강조하더라도 소송 과정에서 추가 내부 문서가 공개될 경우, 지배구조와 리스크 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시장의 재평가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시랄디는 은행 퇴사 후 스위스 패밀리오피스 등에서 경력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원·피고가 모두 ‘명예와 평판’을 핵심 쟁점으로 내세우는 만큼, 이번 분쟁은 법정 외 합의로 귀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 (1유로 = 1.1726달러, 기사 작성 시점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