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의회 소환투표, 판도를 뒤흔들까
타이베이/로이터발 — 여야 구도를 뒤흔들 ‘사상 최대 규모’의 의원 소환(리콜) 투표가 7월 27일(토) 대만 전역 24개 선거구에서 실시된다. 대상은 모두 야당인 국민당(KMT) 소속으로, 전체 113명 의원 가운데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24명이 한날한시에 신임을 묻는다.
2025년 7월 22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투표 결과에 따라 집권 민주진보당(DPP)이 지난 총선에서 잃었던 의회 과반을 ‘잠시나마’ 되찾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투표는 시민단체의 청원으로 발의됐으며, 그 배경·절차·파급효과 모두가 대만 정치권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1. 소환투표란 무엇인가
대만 헌법은 ‘취임 1년이 경과한 공직자’에 대해 소환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유권자 10% 이상이 서명한 청원서가 중앙선거위원회의 확인을 거치면 투표가 확정된다. 투표가 성사되려면 ‘찬성표가 반대표를 앞서고’, 동시에 ‘찬성표 수가 해당 선거구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을 넘어야 한다. 즉, 투표율이 관건이다.
한국의 ‘주민소환제’와 유사하지만, 대만은 국회의원까지 소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의원만 소환할 수 있으나, 대만은 중앙 입법부 의원도 직접 심판대에 오른다.
2. 현재 의회 권력 구도
지난 총선에서 라칭더(賴清德) 총통은 당선됐지만, DPP는 의회 과반(57석)을 잃었다. 현재 의석 분포는 KMT·대만민중당(TPP)·무소속 등 야권 62석, DPP 51석이다. 야당 연합은 이를 발판삼아 국방비 삭감·예산 동결 등 정부가 반대해온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견제에 힘을 실어 왔다.
DPP는 이번 소환으로 최소 12석만 확보해도 과반(57석)을 회복, ‘단기간이더라도’ 예산과 법안 처리를 주도할 수 있게 된다.
3. 소환 추진 배경 — “반공(反共) 운동” vs “악의적 폭주”
시민단체들은 KMT가 “
중국 공산당의 이익을 대변해 국방예산을 깎고, 의회 권한을 확대해 총통 권력을 약화시키려 한다
”며 소환을 주도했다. 이들은 투표를 “반공 운동”으로 규정하고 지지를 호소한다.
반면 KMT는 “악의적(말리셔스) 소환”이라 규정하고 총력 방어전에 나섰다. KMT는 “낮은 임금·경제 침체·정부 부패 등 민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산 낭비를 감시했을 뿐”이라며, 오히려 DPP가 “의회·행정·사법을 독점해 ‘사실상 독재’를 노린다”고 반박한다.
KMT 의원들은 베이징 방문 전력이 잦다는 점을 두고 ‘친중(親中)’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라칭더 정부가 ‘분리주의자’라는 이유로 중국이 대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소통 채널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4. 누가 표적이 됐나
시민단체는 애초 KMT·DPP 의원 다수를 겨냥했으나, 소환 요건(10% 서명)을 충족한 후보군은 KMT 31명뿐이었다. 이 가운데 24명이 7월 27일 1차 투표에, 나머지 7명은 8월 23일 2차 투표에 오른다.
특히 신베이시, 타이중시, 장화현 등 농어촌 보수 색채가 강해 ‘철옹성’이라 불리는 지역도 포함돼 결과를 가늠하기 어렵다. KMT는 “설사 낙마해도 3개월 내 보궐에서 재탈환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DPP는 “보궐 전 공백 기간만으로도 개혁 법안을 처리할 기회”라며 승부수를 던졌다.
5. 라칭더 정부의 입장
라 총통과 DPP 지도부는 공식적으로 “시민단체가 주도한 일”이라며 선을 긋는다. 그러나 지난달 라 총통은 당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소환운동을 지원하라”고 주문했고, DPP 중진들은 현장을 돌며 유세를 벌이는 중이다.
대만 정치권 관측통들은 “라 총통이 전면에 나서면 ‘정치 보복’ 이미지가 강해질 수 있어, ‘그림자 지원’ 방식을 택한 것”으로 풀이한다.
6. 절차와 향후 시나리오
① 소환 성립 요건: 찬성 > 반대 & 동시에 찬성 ≥ 유권자 25%
② 낙마 시점: 투표 결과 공표 직후 직위 상실
③ 보궐: 3개월 이내 실시, 정당 재공천 가능
주요 변수는 ‘투표율’이다. 대만은 총통·의원선거와 달리 소환투표는 휴일 지정이 의무가 없다. 27일은 토요일이지만 지방 축제가 겹쳐, ‘소환 찬성층’ 동원력이 핵심이 될 전망이다.
7. 경제·시장 파급
정치 이벤트지만 방위산업·반도체·건설주 등 국내 업종의 정책 리스크가 달라질 수 있어, 타이완 가권지수(TAIEX) 변동성 확대가 예상된다. 외국계 증권사는 “DPP가 과반 탈환 시 국방·인프라 투자 예산이 살아날 수 있다”고 분석한다.
8. 전문가 시각분석
정치학자들은 “소환제도가 대의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로 보완한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정쟁 악용’ 우려도 제기한다. 일각에선 “한국·일본 등 아시아 민주주의가 직면한 ‘협치 마비’ 현상이 대만에서도 반복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필자는 KMT 의석 3~5석이 공백이 될 가능성을 중간 시나리오로 본다. 그 경우 DPP는 ‘짧은 과반’ 동안 예산안 우선 처리에 집중한 뒤, 보궐 선거에서 수성(守城)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반면 KMT가 방어에 성공하면, 라 총통의 후반기 국정동력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9. 용어 설명
소환(리콜) 투표: 공직자의 임기 중 일정 요건을 충족한 유권자가 직접 해임 여부를 묻는 제도.
선거구(Constituency):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지역 단위. 한국의 ‘지역구’와 동일.
타이완민중당(TPP): 2019년 타이베이 시장 커원저(柯文哲)가 창당한 중도 성향 제3정당.
10. 전망
이번 결과는 2026년 지방선거, 2028년 총통선거의 풍향계로 평가된다. 투표율 35% 내외가 관건으로, 변수가 많은 ‘휴일 투표’라는 점에서 막판 표심이 결과를 갈라놓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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