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정부가 미국의 반도체 생산량을 절반씩 분담하자는 제안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이번 결정은 글로벌 칩 공급망 재편을 둘러싼 양측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5년 10월 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정 리췬 대만 부총통(경제담당 최고 교섭대표)은 현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만은 ‘50 대 50’ 생산 약속을 한 적도, 앞으로 그와 같은 조건을 받아들일 생각도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대만 공식 통신사인 중앙통신(CNA)이 주관한 간담회에서 “대만의 주권적 산업 전략은 외부 압력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 부총통의 발언은 미국 상무부의 하워드 루트닉 장관이 주말 동안 미국 뉴스 네트워크 뉴스네이션(News Nation)과의 인터뷰에서 “워싱턴은 대만과 반도체 생산을 50 대 50으로 나누는 방안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힌 직후 나왔다. 루트닉 장관은 “미국 국내 제조 기반을 강화해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고자 한다”고 설명했으나, 구체적인 이행 경로와 재정적 지원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대만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를 보유한 ‘칩 강국’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는 전 세계 첨단 공정(5나노 이하) 반도체 생산의 약 60%를 담당한다. 미국은 ‘절반 이전’ 목표를 통해 최소 30% 이상의 첨단 공정을 본토로 이전하고자 하지만, 업계에서는
“설비 투자·인력 확보·인허가 절차를 감안하면 10년 안에 실현 가능성이 낮다”
는 회의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TSMC가 생산하는 칩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인 인공지능(AI) 산업의 핵심 부품이다. 특히 엔비디아(NVIDIA)가 설계한 고성능 GPU와 AI 서버용 프로세서는 모두 TSMC의 4나노·3나노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최근 3년 사이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TSMC의 매출 역시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대만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국’으로, 2024년 기준 400억 달러 이상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70%가 반도체 및 관련 부품이다. 그러나 대만산 칩은 현행 20% 관세를 적용받고 있으며, 대만 정부는 이를 ‘부당한 무역장벽’으로 보고 있다.
정 부총통은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린 미·대만 이니셔티브(US-Taiwan Initiative on 21st-Century Trade)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 측에 관세 인하 및 원천기술 공동개발과 같은 특혜적 무역조치를 요구한 상태”라며 “협상이 계속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 용어로 살펴본 이번 사안
파운드리(Foundry)는 설계(IP)를 보유한 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제조하는 방식을 말한다. TSMC,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대표적이다.
뉴스네이션(News Nation)은 미국의 케이블 뉴스 채널로, 정치·경제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매체다. 루트닉 장관이 해당 매체를 통해 구상을 밝힘으로써 미국 내 정치권·산업계 여론을 동시에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베스팅닷컴(Investing.com)은 글로벌 금융·경제 전문 포털이다. 실시간 시황, 경제지표, 기업 뉴스 등을 제공하며, 이번 기사 역시 해당 플랫폼의 영문판을 바탕으로 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대만이 ‘50 대 50’ 요구를 거부한 것은 주권적 산업 경쟁력을 지키려는 방어적 조치”라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공장 신·증설을 통해 일부 생산이 이전되는 흐름은 불가피하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TSMC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400억 달러 규모의 공장을 건설 중이며, 2026년 양산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대만 내부에서는 TSMC의 해외 진출이 ‘산업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만 국립정책연구원 린위안경 박사는 “설비와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갈 경우 기술 노하우의 유출뿐 아니라 현지 생태계가 약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미국 측은 “미국 내 생산 비중이 늘어날수록 글로벌 공급망이 안정화된다”고 주장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CHIPS and Science Act를 통해 반도체 시설 투자 기업에 최대 390억 달러의 보조금을 제공하며, 세액공제·연구개발 지원까지 포함해 총 520억 달러 규모의 산업육성 패키지를 추진 중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대만의 거부가 협상 레버리지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카드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글로벌 투자은행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는 “대만이 공개적으로 거부 입장을 드러내면, 향후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나 기술 협력 논의에서 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어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추가 협상 일정과 구체적 이행 방안은 양측 정부가 조율 중이며, TSMC·애플·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 또한 생산지 다변화 전략과 비용 구조를 면밀히 따져 대응 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