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전 세계 투자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공격적 재정지출이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와 미국 증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해 세웠던 전략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유럽·신흥국 자산 가격을 끌어올렸던 이른바 ‘미국 회피’ 매매가 잇따라 청산되는 양상이다.
2025년 7월 31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하를 보류하고 미국 성장 지표가 예상보다 견조하게 발표되면서 달러는 올해 상반기 최악의 성적(1973년 이후 최저)을 기록한 뒤에도 7월 한 달 만에 반등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연준의 금리 동결과 더불어 미·중 무역전쟁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된 점이 달러 반등의 핵심 동력으로 꼽힌다. 이는 달러 약세에 베팅하며 유럽·아시아·신흥시장 자산을 확대했던 ‘RoW(Rest of the World)’ 전략에 직격탄을 가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같은 날 미국 주가지수선물은 장 초반 1% 이상 상승을 시사해 올해 들어 유럽 주식이 보여 온 초과수익 흐름을 단숨에 꺾을 조짐을 보였다. 이에 반해 유로화, 아시아 및 신흥국 통화·주식은 급락세를 연출하며 자금 회귀 현상을 뚜렷이 드러냈다.
“시장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잡고 있던 포지션이 바로 ‘달러와 미국 자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었다.” — 샤니엘 람지, 픽테 자산운용 멀티에셋 공동책임자
람지 책임자는 그간 ‘거의 제로’ 수준으로 유지했던 달러 비중을 단계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물가상승 압력을 억제하기 위해 달러 강세를 용인하거나 오히려 선호할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관세로 수입물가가 상승한 상황에서 달러 강세는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정책적 완충장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신흥시장 ‘반짝 랠리’ 어디까지
유럽 주식은 1~3월 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미국 대비 초과수익을 기록했지만, 연초 이후 상승률은 현재 8.4%에 그쳐 같은 기간 S&P500의 8.1%와의 격차가 사실상 사라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조사에 따르면, 7월 중순까지만 해도 글로벌 펀드매니저들이 꼽은 ‘가장 붐비는 거래’는 달러 약세 베팅이었다.
외환선물 시장에서 1,800억 달러(USD18 billion) 규모로 추산된 대규모 유로 매수·달러 매도 포지션은 연준 회의 직후 유로/달러 환율이 1.1789달러에서 1.1401달러로 급락하자 큰 손실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유로화는 올해 상반기 동안 사상 최고의 6개월 상승률을 기록했으나, 7월에는 2023년 5월 이후 최대 월간 하락으로 돌아섰다.
이 여파로 MSCI 신흥국 통화 지수는 올해 첫 월간 손실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영국 파운드화도 주간 기준 1.6% 급락해 1월 이후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시장 심리·전략 지형의 ‘회전 교차’
“우리는 미국 주식으로, 통화시장에서는 달러로, 그리고 전반적인 모멘텀 전략에서도 회전(rotations)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있다.” — 미카엘 니자르, 에드몽드드로칠드자산운용 멀티에셋 부문장
니자르 부문장은 이러한 추세가 연말까지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하며, 유로/달러 환율이 1.14달러 부근에서 저점을 형성할 경우 유로화를 저가 매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반면, 리버 글로벌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베티나 에드먼드스턴은 달러 강세가 미국 인플레이션 완화에 기여할 수 있어 사실상 새로운 ‘Fed Put’(중앙은행이 시장 하락 시 통화정책으로 방어하는 현상)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그는 “금리 인하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달러 강세는 합리적 귀결”이라고 덧붙였다.
아문디 투자연구소 책임자 모니카 디펜드는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적자 확대와 연준에 대한 압박이 궁극적으로 달러 약세를 초래하리라는 장기 시각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 성장률이 예상보다 지속적으로 높게 나온다면 관점을 재고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넛셸 자산운용의 최고투자책임자 마크 엘리스는 8월이 전통적으로 변동성 확대와 약세장이 겹치는 시기라며 “이번 주를 전후해 위험자산 비중을 축소하고 방어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CTA·Fed Put 등 전문용어 풀이
Fed Put은 주식시장이 급락할 때 연준이 금리 인하나 유동성 공급으로 시장을 지지해 주는 현상을 일컫는 투자 업계 은어다. CTA(Commodity Trading Advisor)는 추세추종 전략을 구사하는 헤지펀드를 의미하며, 이들의 포지션 변화는 시장 심리를 읽는 바로미터로 활용된다.
실제로 바클레이스 유럽 주식전략 총괄 에마누엘 코는 7월 30일 보고서에서 CTA들이 미국 국채 숏 포지션을 청산하고 유럽 주식 노출을 줄였다는 점을 거론하며, 달러 강세가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고통 거래(pain trade)’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 시각: ‘달러와 위험자산의 역학’
올해 들어 유럽·신흥국 자산군으로 이동했던 자금이 빠르게 역류하고 있다. 복합적인 거시 변수 가운데서도 달러 유동성이 여전히 글로벌 금융시장의 진앙지임이 재확인된 셈이다. 달러가 강세로 전환하면, 위험자산 가격은 밸류에이션 리레이팅 압력을 받게 되므로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의 지역·통화 분산 효과를 점검해야 한다.
달러 강세가 장기화될 경우, 신흥국의 달러표시 부채 상환 부담 증대와 유럽 제조업체들의 가격경쟁력 약화가 2차 충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미국 내 물가 안정과 해외 자본 유입 가속은 S&P500의 실적·밸류를 추가로 지지할 수 있어 글로벌 자산배분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현재 시점에서 시장 참여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두 갈래다. 첫째, 달러 강세 지속에 베팅하며 미국 자산 비중을 늘리고, 유로·신흥국 노출을 줄이는 것이다. 둘째, 과도한 달러 쇼크로 인한 과매도 국면을 노려 유럽·신흥시장 자산을 분할 매수하며 중장기 포지션을 구축하는 접근이다.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리스크 관리와 정책 불확실성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