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앙은행(BoE)이 일부 주요 시중은행에 미국 달러 유동성 충격에 대한 내부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로이터 통신이 익명의 소식통 3명을 인용해 17일(현지시간) 단독 보도했다.
2025년 7월 17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영란은행의 감독기구인 프루덴셜 규제청(PRA)은 런던 금융허브에 소재한 다수의 글로벌 은행에 대해 달러 자금조달 계획과 단기 차입 구조를 재점검하라는 개별 지시를 내렸다.
한 소식통은 “특정 은행은 최근 몇 주 동안 미국 달러 스왑 시장이 완전히 마비되는 극단적 시나리오까지 포함해 자체 스트레스테스트를 수행하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PRA는 은행별로 비공개 요청서를 전달했으며, 요청 대상·규모와 구체적 평가지표는 공개되지 않았다.
달러는 국제 무역·투자의 기축통화로서 ‘글로벌 금융의 생명줄’로 불린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이후 자유무역·방위·동맹 정책에서 기존 스탠스를 뒤집으면서, 위기 때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달러를 무제한 공급해 줄 것이라는 전통적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어떤 은행이라도 달러 스왑 시장이 멈추는 ‘블랙아웃’ 상황을 며칠 이상 버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 로이터 소식통
스왑 시장 경색이 현실화되면 은행의 달러 조달 비용이 급등하고, 차환 실패가 연쇄적으로 발생해 예금 인출 요구를 제때 처리하지 못할 위험이 높아진다. 이는 신뢰 붕괴와 자금 유출로 이어져, 시스템 리스크를 증폭시킬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로선 확률이 낮은 극단적 시나리오지만, 감독당국과 은행 모두 더 이상 달러 접근성을 ‘당연한 전제’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BoE 대변인은 로이터 요청에 “논평할 사안이 없다”고 답했고, 바클레이스·HSBC·스탠다드차타드 등 영국계 글로벌 은행들도 모두 언급을 거부했다.
글로벌 은행들은 대차대조표상 달러 비중이 상당하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24년 말 전 세계 통화파생상품 명목 잔액은 130조 달러이며, 이 가운데 90%가 달러 거래다. 하루 평균 4조 달러의 외환(FX) 스왑 계약이 신규 체결된다는 점은 달러 의존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Fed는 여전히 달러 스왑라인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제롬 파월 의장을 수차례 공개 비판하고, ‘해임설’까지 제기된 상황은 Fed의 독립성 훼손과 달러 신뢰 약화를 동시에 우려하게 만든다.
현행 스왑라인은 Fed와 유럽중앙은행(ECB)·영란은행·스위스국립은행(SNB) 등이 체결해 두었다. 그럼에도 유럽 감독당국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과연 라인을 그대로 유지할지” 회의적 시각을 드러내며, 자국 은행에 달러 유동성 점검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6월 SNB가 일부 은행의 외화(달러) 유동성 공백 가능성을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용어 해설: FX 스왑 시장이란?
FX 스왑은 두 통화를 일정 기간 교환한 뒤 만기에 다시 원화·달러 등을 되돌려 받는 파생상품 계약이다. 글로벌 은행은 국가별 지점을 통해 현지 통화로 예금을 받지만, 본사 차원에서 달러 결제를 해야 할 때가 많다. 이때 FX 스왑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달러를 확보한다. 시장이 경색되면 달러 ‘숨통’이 막혀 은행 유동성이 급속히 줄어들 수 있다.
❖ 전문가 관점
로이터가 전한 바와 같이, BoE의 이번 조치는 ‘가능성이 극히 낮은’ 상황도 미리 대비하겠다는 선제적 리스크 관리로 해석된다. 달러 패권이 당장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정치적 리스크가 통화 리스크로 전이될 때 금융시장은 예상보다 빠르게 냉각된다. 영국 은행권이 미국보다 더 엄격한 바젤Ⅲ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을 적용받는 만큼, 실제 스트레스테스트 결과가 시장 신뢰를 높일지 주목된다.
이와 동시에 투자자·예금주들은 자신이 거래하는 은행의 외화 유동성 관리 프레임과 중앙은행 스왑라인 현황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변동성이 커질수록, 달러자금 시장 변동성은 금융시장의 ‘보이지 않는 구조적 리스크’로 남을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