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엔비디아, 중국 수요 급증에 TSMC에 H20 칩 30만 개 추가 발주

엔비디아(티커: NVDA)가 대만의 반도체 위탁생산기업 TSMCH20 AI 그래픽처리장치(GPU) 30만 개를 새로 주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중국 시장의 견조한 수요가 재차 확인되면서, 회사가 기존 재고만으로 버티려던 방침을 수정한 결과다.

2025년 7월 29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주문은 지난주 체결됐으며, 복수의 소식통이 “엔비디아가 이미 보유 중인 60만~70만 개의 H20 재고에 더해 추가 물량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소식통들은 언론에 공식적 발언권이 없다는 이유로 익명을 요청했다.

H20은 2023년 말 미국 정부가 자사 주력 AI 칩(H100 시리즈)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하자, 엔비디아가 중국용으로 별도 설계한 모델이다. 연산 성능은 글로벌 버전인 H100이나 차세대 ‘블랙웰(Blackwell)’ 시리즈에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요구하는 가격 대비 성능 비율(Price-Performance)을 충족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재개된 수출·생산 결정 배경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이달 초 국가안보 우려를 이유로 올 4월 도입했던 H20 판매 중단 조치를 전격 해제했다. 동시에 엔비디아가 H20을 중국에 다시 공급하려면 미 상무부의 개별 수출 허가가 필요하다고 명시했으며, 현재 엔비디아는 이 라이선스를 신청해 승인 대기 중이다.

엔비디아 측은 7월 중순 “미 정부로부터 곧 승인을 받을 것이라는 확약을 받았다”고 밝혔지만, 이번 보도 시점까지 상무부가 최종 서류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제3의 소식통을 통해 확인됐다.

주문·생산 일정

제너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베이징 출장 당시 “H20 주문 규모가 일정 수준(critical mass)을 넘어서면 생산 라인을 재가동할 것”이라며, “공급망을 재편해 웨이퍼 생산을 재개하려면 최대 9개월이 소요된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고객사에 남은 재고가 제한적이므로, 신규 주문을 서둘러 달라”고 권유한 바 있다.

미국 반도체 리서치사 세미애널리시스(SemiAnalysis)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2024년 한 해 동안 약 100만 개의 H20을 중국에 판매했다. 따라서 이번 추가 발주는 단일 연간 판매량의 30% 수준에 달해, 시장에서는 “생산 재개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 품목으로 부상

트럼프 행정부는 H20 규제 완화를 ‘희토류 영구자석’ 협상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가 전기차·방산·재생에너지 등에 필수적인 희토류 자석 수출을 제한하자, 미국이 AI 칩 규제를 완화해 협상 동력을 확보하려 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미 의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중국에 H20 칩을 허용하면 미국의 AI 기술 우위를 잠식한다”는 비판이 즉각 제기됐다. 그럼에도 엔비디아와 다수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시장을 포기하면, 고객들이 화웨이 등 토종 기업 생태계로 완전히 이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텐센트·바이트댄스·알리바바 등 중국 빅테크는 지난 4월 판매 중단 전까지 H20을 대거 확보해 DeepSeek 등 자체·외부 AI 모델 학습에 활용해 왔다. H20 수입이 막히자 화웨이산 GPU가 점유율을 일부 가져갔지만, 성능 격차가 여전히 존재해 엔비디아 제품의 ‘대체 불가성’이 부각됐다.


수출 통관·문서 요건 강화

로이터가 입수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중국 고객사들에게 “최종 사용자와 예상 발주량이 명시된 신규 서류”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미 정부가 각종 제재 리스트에 오른 기업·기관과의 거래를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관계자는 7월 29일 “추가 발주나 라이선스 진행 상황에 대해 논평할 수 없다”고 밝혔고, TSMC 역시 “고객사 관련 사안”이라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용어 설명: GPU와 AI 칩

GPU(Graphics Processing Unit)란, 원래 3D 그래픽 연산을 위해 개발된 프로세서지만, 병렬 연산 능력이 뛰어나 AI 학습·추론 작업에 최적화된 칩으로 각광받고 있다. H20, H100, 블랙웰 등은 모두 GPU 기반 AI 프로세서다.

H20은 특히 ‘인터커넥트 대역폭’과 ‘AI 정밀도(precision)’를 미국 수출 규정 한도 내로 조정해, 중국 고객이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 결과 미국 정부가 ‘첨단 AI 칩’으로 분류하지 않는 선에서 AI 학습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 관점 및 전망

시장조사업체들은 “단기간 내 미 상무부 허가가 나올 경우, 엔비디아는 2025 회계연도 중국 매출 가이던스를 상향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다만 미·중 간 지정학적 긴장과 수출 규제가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는 점은 상시 리스크로 남아 있다.

또 다른 관측통들은 “H20 칩의 주문 재개는 화웨이, 상하이발 쿤펑(鲲鹏) 등 중국 토종 AI 칩 생태계의 성장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미국 기업이 중국 시장 지배력을 일부 회복하는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정치적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엔비디아는 4월 판매 중단 여파로 55억 달러 상당의 재고를 손상 처리해야 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제너슨 황 CEO는 “잠재 매출 150억 달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번 조치가 재무적 손실 회복에 핵심적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결론

이번 30만 개 추가 발주는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라이선스 승인, 생산 재개 일정, 글로벌 공급망 변화가 맞물리며, H20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지표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