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타이베이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가 대만과의 통상합의를 추진하며, 미국 내 반도체 제조 및 첨단산업 현장에서 미 노동자 교육·훈련과 대만 측 신규 투자를 연계하는 방안을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통한 다섯 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미국의 공급망 강화와 제조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하며, 교육훈련 조항이 포함되는 것이 특징이다.
2025년 11월 26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이번 구상 아래에서 대만반도체제조회사(TSMC) 등 대만 주요 기업들은 미국 사업장 확대를 위한 신규 자본투입과 핵심 인력 파견에 나서고, 동시에 미 현지 인력의 현장 중심 반도체 제조·공정 기술 훈련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현재 대만의 대미 수출품에는 20% 관세가 적용되고 있으며, 타이베이는 워싱턴과의 포괄적 합의 틀 속에서 이 비율을 낮추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반도체는 스마트폰부터 서버, 자동차까지 핵심 고부가가치 부품으로 꼽히지만, 미국이 자국 내 생산능력을 구축하는 기간에는 예외 품목으로 분류돼 관세가 면제되고 있다.
한 소식통은 대만이 약속할 미국 내 총투자 규모는 한국과 일본 등 주요 역내 경쟁국에 비해서는 작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신 대만식 ‘사이언스 파크(과학기술 산업단지)’ 모델 구축을 위한 인프라 조성에 대만의 노하우를 활용하는 지원이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안의 민감성을 이유로 이 소식통을 포함한 관계자들은 익명을 전제로 발언했다.
한국과 일본은 대부분 품목의 대미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조건 아래 각각 3,500억 달러와 5,500억 달러의 미국 내 투자 계획을 약속한 바 있다.
다만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대만과의 최종 합의 시점과 구체적 조항은 아직 변동 가능성이 크다. 협상에서 최종 문구가 확정되기 전까지 어떤 조항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 노동자 대상의 현장 훈련 조항은 이번에 처음으로 부각된 내용이다. 백악관 대변인 쿠시 데사이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하기 전까지, 잠재적 통상합의에 대한 보도는 모두 추측에 불과하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최첨단 공장 가동 초기 단계에서 미국인 교육을 위해 숙련된 외국 인력의 일시적 투입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대만, ‘사이언스 파크’ 모델의 미국 이식 시도
TSMC는 이번 통상협상에 대해 언급을 자제했지만, 미국 프로젝트에서 적합한 인력 수급의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점은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C.C. 웨이 최고경영자 겸 회장은 올해 1월 “애리조나 신공장 건설은 대만 대비 최소 두 배의 기간이 소요됐다”고 말하며, 숙련공 부족과 공급망 공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예컨대 건설 인력의 절반을 텍사스에서 애리조나로 이동시켰고, 이로 인해 이전·숙박 비용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대만 경제부 무역교섭판공실은 성명을 통해 ‘대만 모델’ 하에서 미국과의 공급망 협력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만은 1980년대부터 반도체 제조의 중추인 사이언스 파크를 단계적으로 조성해, 설계–제조–후공정–소재·장비로 이어지는 수직·수평 통합형 공급망을 구축해왔다.
조정태 대만 행정원장은 수요일(현지) 타이베이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 양측은 세부 조항을 구체화하기 위한 문서 교환 단계에 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런 종류의 일을 다른 나라가 수행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만이 이른바 ‘서비스 파크’의 개념과 실천, 그리고 실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것이 미국에서 이 같은 구상을 추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지난달 정 ли췬(Cheng Li-chiun) 대만 부원장은 대만산 수출품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하를 목표로 한 협상을 주도하고 있으며, “미국 내 투자 확대”에 대해 양측이 합의에 이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타이베이는 트럼프의 미국 제조업 강화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면서도, 가장 첨단 반도체 기술과 연구는 대만 내에 유지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미-사우디 투자 포럼 연설에서 숙련 외국 인력 수용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을 언급하면서도, 핵심 산업 지배력 확보를 위해선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만의 당신 친구와 함께 대규모 공장을 열 것”이라며 “그곳에서 컴퓨터 칩 사업의 40~50%를 우리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 국민은 배워야 한다. 그들이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일이며, 수십억 달러를 설비와 공장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공장을 가동·운영하기 위해 자국 인력을 상당수 데려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공할 수 없다.”
폭스콘 회장 류양웨이(Young Liu)는 엔비디아 최대 서버 제조 파트너로서, 최근 “미국 및 타국과 협력해 사이언스 파크를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으며, 이것이 통상협상 진전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상향된 트럼프 관세’가 협상을 촉발
린신이(Lin Hsin-i) APEC 대만 대표는 이달 한국에서 열린 정상회의 계기 회동에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과 공급망·반도체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린 대표는 베센트 장관이 대만의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경험에 강한 관심을 표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반도체 수입에 약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미국 내 생산 중이거나 그 계획을 확약한 기업(예: TSMC)은 예외로 두겠다고 밝혔다. 다만 로이터는 이달 미 정부 당국자들이 비공식적으로 해당 관세를 단기간 내 실제 부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TSMC는 인공지능(AI) 관련 수요 급증에 힘입어 사업이 호조를 보이는 가운데, 애리조나에 1,650억 달러 규모의 칩 공장을 건설 중이다. 다만 생산의 대다수는 여전히 대만에 남을 예정이다. 이 밖에도 GlobalWafers(실리콘 웨이퍼) 등 여러 대만 기업들이 미국 내 신규 투자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한편, 대만과의 어떤 합의도 베이징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월요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대만의 “중국으로의 귀속”이 국가에 있어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통화에서 이 부분에 대해 논평하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대만의 가장 중요한 국제적 후원자이자, 공식 외교관계가 없음에도 사실상 최종 안보 보장자로 평가된다.
용어 풀이 및 배경
사이언스 파크(Science Park)란, 반도체·디스플레이·바이오 등 첨단 제조 및 연구 기업을 한곳에 모아 인력·장비·소재·후공정까지 밀집 생태계를 조성하는 산업단지를 뜻한다. 대만의 신주·타이난 등 사례가 대표적이며, 공급망 효율, 기술 확산, 공정 최적화에 강점을 가진다.
계약생산(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직접 설계 없이 고객사의 칩 설계를 받아 생산에 집중한다. 이 모델은 수율 관리와 미세공정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구축했고, AI 가속기·고성능 컴퓨팅(HPC) 수요 확대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관세는 수입품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무역보호·산업정책·협상지렛대로 활용된다. 미국의 품목별 탄력적 예외는 국내 생산능력 구축과 공급망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정책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분석과 전망: 미 노동자 훈련 조항의 함의
첫째, 현장 훈련 조항은 투자 유치와 인력 양성을 결합해 속도전을 가능케 한다. 애리조나 사례에서 드러났듯, 숙련공 부족과 공급망 공백은 공정 통합이 핵심인 반도체에서 치명적 병목으로 작용한다. 대만 기업 인스트럭터와 엔지니어의 초기 투입은 생산라인의 조기 안정화와 기술 내재화에 유리하다.
둘째, ‘대만 모델’의 이식은 사이언스 파크형 집적지를 중심으로 소재–장비–후공정 동시 유치 전략을 시사한다. 이는 단일 팹(fab) 투자를 넘어 클러스터 구축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암시한다. 관세 감면과 연계될 경우, 중간재의 현지화율 제고가 필수 조건으로 붙을 수 있다.
셋째, 정치·외교 리스크는 상수다. 베이징의 대만 관련 레드라인을 자극할 여지가 있으며, 고율 관세 카드(최대 100%)는 협상 압박과 산업정책의 동시 수단으로 기능한다. 다만 예외 인정과 부과 지연 가능성을 함께 시사한 점은 기업의 계획 가시성을 일정 부분 보전하려는 접근으로 볼 수 있다.
넷째, 기술 국경 관리가 병행될 것이다. 타이베이가 최첨단 공정·R&D의 대만 내 유지 원칙을 확인한 만큼, 미국 내 확장은 선단(先端)–전단(前端) 중 일부 구간에 집중될 수 있다. 이는 지식재산권 보호, 인력 이동 관리, 장비 수출통제 등과 맞물려 정교한 거버넌스를 요구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협상은 관세 인센티브와 훈련·투자 패키지를 교환하는 정책 결합형 거래에 가깝다. 합의 시점과 규모가 유동적이지만, AI 수요 확대로 파운드리 캐파(생산능력) 확보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미국 내 생산 생태계의 조기 안정화라는 전략적 목표는 유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