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는 올해 두 가지 분위기가 동시에 공존했다. 한쪽에서는 인공지능(AI)의 상용화와 그에 대한 거대한 자본 유입 가능성이 낙관적으로 논의되었고, 다른 쪽에서는 관세·지정학적 긴장·특히 그린란드 발언과 같은 정치적 변수들이 투자 심리를 흔들었다.
2026년 1월 24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다보스 행사장과 호텔 로비, 회의실을 넘나드는 참석자들 사이에서 때로는 서로 다른 회의 두 개가 병행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에서는 “세계 모델(world models)”이나 “물리적 AI(physical AI)” 같은 용어가 오가며 기술 낙관론이 확산됐고, 다른 한편에서는 관세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대화의 중심으로 되돌아왔다.
현지에서 만난 참여자들은 서로 다른 의제가 동시에 논의되는 점을 지적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가족경영 무역기업 Tsao Pao Chee의 회장 차발릿 프레더릭 차오(Chavalit Frederick Tsao)는 부대 행사에서 “기술은 빠르게 진전하고 있지만 집단적 지혜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다보스가 부각시킨 것은 혁신 위기가 아니라 일관성의 위기와 신뢰의 상실이다”라고 밝혔다.
첫날은 트럼프 연설이 분위기를 좌우했다. 수요일에는 수천 명이 의회홀(Congress Hall)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해 한 시간 이상 줄을 섰다. 기자도 약 90분을 줄 섰으며, 실내 분위기는 정책 포럼이라기보다 공연장에 가깝다고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이 그린란드를 인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공기를 바꿨다. 그 발언 직전까지 웃음을 터뜨리던 청중들은 갑자기 침묵했고, 일부는 고개를 젓거나 불편한 표정을 교환했다. 이후 몇 시간 동안 그린란드와 관세 문제가 대화의 주요 주제로 떠오르며 AI 인프라와 에너지 투자에서 무역적 레버리지와 정치적 리스크로 논의가 급선회했다.

다음 날에는 일론 머스크의 등장이 분위기를 다시 기술 낙관으로 되돌렸다. 다보스에 수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로봇택시(robotaxis), 휴머노이드 로봇, AI 발전에 대한 야심찬 비전을 제시했다. 머스크는 테슬라의 자율주행 로봇택시가 2026년 말까지 미국에서 매우 널리 보급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일부 발언에서는 AI가 올해 안으로 인간 지능을 능가할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이 세션 이후 참석자들의 대화는 다시 데이터센터, 배터리 저장, 컴퓨팅 파워, 도시와 전력망이 향후 급증할 에너지 수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로 옮겨갔다. 전날의 지정학적 논의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다보스가 보여준 것은 혁신의 위기가 아니라 일관성의 위기와 신뢰의 상실이다.” — 차발릿 프레더릭 차오, Tsao Pao Chee 회장
투자자들은 ‘확신 기반(conviction-driven)’ 전략을 강조했다. 아부다비 투자거대기업 무바달라(Mubadala)의 부사장 겸 부CEO 왈리드 알 모카라브 알 무하이리(Waleed Al Mokarrab Al Muhairi)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2026년 투자 스탠스는 “conviction driven”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는 확실히 더 분열되고 있다”며 “이는 기회이자 함정을 동시에 가져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자본을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확신을 바탕으로 배치할 능력이 있으면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적 관점에서의 AI에 대해서는 지멘스에너지(Siemens Energy) 의장 조 카이저(Joe Kaeser)가 AI를 소비자 경쟁이 아닌 산업적 기회로 규정했다. 그는 “산업화, 기계화, 자동화에 관한 데이터만큼 풍부한 대륙은 없다. 유럽이 그 중심에 있다“며 유럽이 컴퓨팅 파워와 결합해 물리적 세계와 가상 세계의 접점을 정의할 최적의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카이저는 정책 발표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각국 재무장관들은 투자자 안심시키기에 주력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재무장관 에녹 고동과나(Enoch Godongwana)는 최근 신용 등급 상향, 미국 금융행동특별기구(FATF)의 회색 리스트에서 제외된 사실, 정치적 안정 등을 강조했지만 대화는 곧 워싱턴과의 관계 관리 및 무역 협상으로 이어졌다. 고동과나 장관은 “남아공 경제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은 지정학적 상황”이라며 “예측하기 어렵고 그 함의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재무장관 모함메드 알자단(Mohammed Al-Jadaan)은 대화의 필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하며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확실성”이라며 분쟁은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용어 설명: 세계모델(world models), 물리적 AI(physical AI), 로봇택시, FATF 회색 리스트
다보스 토론에서 자주 등장한 일부 전문 용어에 대한 명료한 설명이 필요하다. 세계모델(world models)은 AI가 외부 환경을 내부적으로 시뮬레이션해 미래 상태를 예측하거나 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의 내부 표현을 의미한다. 물리적 AI(physical AI)는 가상 환경을 넘어 실제 물리적 로봇이나 장비와 결합된 AI를 뜻하며, 이는 제조업·물류·도시 인프라 등에서의 자동화 수준을 높인다. 로봇택시(robotaxis)는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는 자율주행 차량을 통한 모빌리티 서비스 모델을 지칭한다. FATF(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 회색 리스트는 자금세탁·테러자금조달 대응 체계에 취약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 국가 리스트로, 목록에서 벗어나면 국제 금융 신인도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두 개의 다보스가 공존했다. 주간 말미에 분명한 패턴이 드러났다. AI·에너지 전환·산업적 재창조를 주제로 한 패널은 참가자로 빽빽했고 사적인 대화는 확장·배치·장기적 전망에 집중됐다. 그러나 커피 타임이나 복도, 셔틀 안에서는 대화가 다시 그린란드 발언, 관세, 정책의 급격한 변화로 돌아왔다. 즉 한쪽은 기술적 전선을 향해 어떤 잠재력을 열어줄지에 대한 논의를, 다른 한쪽은 그 진전을 가능케 하는 국제적 규칙과 환경을 어떻게 보전할지에 대한 논의를 병행했다.
시장·경제적 시사점
이번 다보스의 양면적 논의는 투자자들이 자본 배분을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핵심 변수를 재정의한다. 첫째, AI와 관련 인프라(데이터센터, 고성능 컴퓨팅, 배터리·에너지 저장)는 장기적인 수요 확대가 예고되므로 관련 설비 투자와 전력 수요 증가는 분명한 추세다. 이는 전력망 투자, 전기요금 구조, 배터리·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 지정학적 불확실성(예: 그린란드 발언, 관세 인상 시나리오)은 단기적으로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리스크 프리미엄을 상향시킬 수 있다. 이는 주식·채권 시장의 변동성 확대와 안전자산 선호로 연결될 수 있다. 셋째, 국가 간 대화와 정책 실행력 차이는 지역별 투자 매력도를 재편할 수 있다. 예컨대 정책 실행력이 높은 지역은 산업용 AI와 자동화 분야에서 더 빠르게 혜택을 볼 것이며, 자본은 “확신 기반(conviction-driven)”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지정학적 뉴스에 민감한 종목(무역·소비주 등)의 변동성이 상승할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는 AI 인프라 관련 장비업체, 데이터센터 운영사, 전력망·저장 솔루션 제공업체가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다. 투자 전략 측면에서는 지역·정책 리스크를 고려한 분산투자와, 장기적 수요 증가를 전제로 한 인프라·산업용 AI 관련 포지셔닝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결론. 다보스에서 관찰된 것은 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두 가지 논의 흐름이다. 기술 낙관론은 자본과 실행을 촉발할 잠재력이 크지만, 지정학적·정책적 불확실성은 그 실행 가능성과 투자 수익을 흔들 수 있다. 투자자들은 확신 기반의 전략을 통해 기술적 기회와 정치적 위험을 동시에 관리할 필요가 있다. 다보스는 이 같은 균형 찾기가 향후 투자 환경을 규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임을 재확인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