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메르세데스, 반도체 공급난 심화에 잇따라 ‘비상’ 경고

닛산자동차메르세데스-벤츠가 글로벌 반도체(semi-conductor) 수급 악화에 대해 잇따라 경종을 울렸다. 양사는 네덜란드 정부와 중국 간 갈등으로 촉발된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Nexperia) 문제를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며, 자동차 산업이 다시 한 번 공급망 리스크에 노출됐음을 강조했다.

2025년 10월 2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닛산의 기욤 카르티에(Guillaume Cartier) 최고성과책임자(CPO)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재팬 모빌리티 쇼 기자 간담회에서 “이번 사태는 작은 문제가 아니라 매우 큰 문제”라고 경고했다. 그는 현 시점에서 자사 칩 재고가 “11월 첫째 주까지는 괜찮다”면서도, 그 이후 상황에 대해선 “전체적인 가시성이 없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사태의 발단: 네덜란드–중국 갈등
네덜란드 정부는 2025년 9월 안보 우려를 이유로 넥스페리아의 경영 통제권을 회수했다. 넥스페리아는 중국 Wingtech Technology가 2019년 인수한 기업으로, 자동차 전장(전기·전자장치)용 파워 반도체와 센서 IC를 대량 공급하고 있다. 네덜란드 당국은 첨단 기술의 중국 유출 가능성을 문제 삼았고, 이에 반발한 중국은 자국 내 넥스페리아 공장에서 생산된 완제품 반도체의 해외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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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치로 완성차 업체들은 즉각적인 칩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특히 자동차 전장 품질 기준은 일반 소비자용 반도체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에, 대체 공급처를 찾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카르티에 CPO는 “1차 공급업체(Tier 1)까지는 재고 파악이 비교적 수월하지만, 2·3차 이하 협력사로 내려갈수록 정확한 재고량과 생산 계획을 파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 용어 설명
Tier 1 공급업체는 완성차 기업에 직접 부품을 공급하는 1차 협력사를 의미한다. 반면 Tier 2·3는 1차 협력사에 원·부자재나 소부품을 납품하는 하위 단계 협력사를 지칭하며, 공급망의 깊은 곳에 위치해 정보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대응
올라 켈레니우스(Ola Kaellenius) 메르세데스-벤츠 최고경영자(CEO)도 같은 날 독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전 세계를 뒤져서라도 대체 칩 공급선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켈레니우스 CEO 역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불확실성을 인정했다.

독일 자동차업계는 이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EU 탄소국경조정제(CBAM) 등 신통상 장벽에 대응하느라 공급망 대체 전략을 가속해 왔다. 이번 넥스페리아 이슈는 반도체라는 핵심 부품에서 급소를 찔린 셈이다.


브라질 공장도 ‘셧다운’ 위기
로이터 통신은 또 다른 관계자를 인용해 “브라질 자동차 클러스터에 속한 일부 제조사는 2~3주 내 칩 재고가 고갈될 경우 가동을 일시 중단할 수 있다”고 전했다. 브라질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중국 정부와 직접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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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전반에 드리운 지정학 리스크
미국은 2020년 이후 중국 반도체 기업을 잇달아 제재 리스트에 올리고 있으며, 중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희토류 수출 규제반도체 소재 수출 허가제 등 맞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네덜란드-중국 갈등도 결국 이 같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자동차는 수천 개의 반도체로 움직이는 ‘바퀴 달린 컴퓨터’이기에, 한 종류의 칩이 끊겨도 생산 전 라인을 멈춰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전기차·자율주행차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요는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공급망 안정화는 완성차 업체의 최우선 전략 과제로 떠올랐다.


기자 해설 및 전망
1차적으로 닛산과 메르세데스는 현재 확보한 재고로 단기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납기 지연·모델 출시 연기·가격 인상과 같은 2차 파급효과가 불가피하다. 동시에 각국 정부는 ‘경제 안보’라는 이름으로 자국 산업 보호에 치중하고 있어, 글로벌 공급망의 정치화가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완성차 업계가 선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다변화(diversification) 전략으로 유럽·미국·동남아 등지의 파운드리(위탁생산)와 장기 구매 계약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둘째, 리쇼어링(reshoring) 또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을 통해 조달·생산·조립을 단일 권역 내로 묶어 지정학 리스크를 축소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두 방법 모두 막대한 초기 비용이 수반되며, 단기간에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이 장애요인으로 꼽힌다.

결국 자동차 기업들은 재고 관리 시스템 고도화협력사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보이는 공급망(visible supply chain)’을 구축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동시에 정부 차원의 외교·통상 협의가 뒷받침돼야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태를 통해 재확인됐다.

향후 주목 포인트
• 네덜란드·중국 간 협상이 단기간에 타결될지 여부
• 닛산·메르세데스 외 다른 글로벌 OEM의 생산 차질 확대 가능성
• 반도체 시장 가격 변동 추이 및 파운드리 증설 계획
• 각국 정부의 전략물자 통제 목록 확대 움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