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이 보건보험업계 최고경영자(CEO) 브라이언 톰프슨 피격 사망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 루이지 망지오네(27)에게 적용된 테러리즘 관련 혐의 두 건을 기각했다. 그러나 망지오네는 여전히 2급 살인을 포함한 9개 주(州) 형사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2025년 9월 16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그레고리 캐로 뉴욕주 대법원 판사는 “피고인이 보건보험 종사자를 위협하거나 정부 정책에 영향을 주려 했다는 의도(intent) 입증이 불충분하다”며 테러리즘 조항 적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판결문에서 “이번 범죄가 흔한 ‘스트리트 크라임’(길거리 범죄)이 아님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비(非)스트리트 범죄가 테러리즘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명시했다.
망지오네는 이날 갈색 수감복 차림에 수갑과 족쇄를 착용한 채 로어맨해튼 법정에 출석했다. 재판부는 다음 심리를 12월 1일로 지정했다.
남은 혐의는 2급 살인 1건, 총기·흉기 불법소지 7건, 위조 신분증 소지 1건이다. 2급 살인에 대해 유죄가 확정될 경우 그는 최대 종신형을 받을 수 있다. 연방(聯邦) 차원에서는 별도의 대배심이 망지오네를 기소했으며, 미 법무부는 사형을 구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주·연방 모두에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맨해튼 지방검사 앨빈 브래그 대변인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며, 2급 살인을 포함한 나머지 9개 혐의로 기소 절차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사건 배경과 주요 쟁점
2024년 12월 4일 밤, 맨해튼 미드타운의 한 호텔 앞에서 유나이티드헬스 그룹 산하 보험 자회사 유나이티드헬스케어 전 CEO 브라이언 톰프슨(사망 당시 56세)이 총격을 받고 숨졌다. 당시 회사 측은 투자자 콘퍼런스를 개최 중이었다.
뉴욕주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리즘법을 제정해, 특정 집단·기관을 위협하거나 공포를 조성할 의도로 살인을 저질렀을 때 가중처벌(최대 종신형)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의도’(intent) 요건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배심이 의결한 기소 내용 일부가 기각된 셈이다.
美 연방·주 사법체계의 ‘이중주권’
미국은 연방과 주(州)가 각각 입법·사법권을 갖는 이중주권(Federalism) 체제를 운영한다. 이번처럼 동일 사건이 주·연방 법정에 병행해 제소되는 것이 가능하며, 한쪽에서 혐의 일부가 기각돼도 다른 관할 사건에는 법적 영향이 없다. 따라서 캐로 판사의 기각 결정은 연방 법무부의 사형 구형 계획에 직접적 파급효과를 미치지 않는다.
관련 정치·사회적 파장
톰프슨 살해는 공화·민주 양당 인사 모두에게서 규탄 성명이 이어졌으나, 일부 시민 단체는 ‘높은 의료비에 대한 항의’라며 망지오네를 ‘민중 영웅’으로 추켜세우고 있다. 이날도 법정 밖에서는 닌텐도 캐릭터 ‘루이지’ 복장을 한 지지자, 이탈리아 삼색기에 “Healthcare is a human right”라고 적힌 깃발을 든 참가자 등이 나타났다.
공판을 지켜보려는 20여 명의 방청객 중 상당수가 20대 여성이었으며, 한 참가자는 “Free Luigi”라고 적힌 검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사건 직후 ‘#FreeLuigi’ 해시태그가 생성돼 24시간 만에 20만 회 이상 언급됐다.
한편 보수 성향 운동가 찰리 커크가 지난주 유타주에서 살해된 별도 사건으로 미 전역에서 정치적 폭력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두 사건의 동기는 상이하며, 연관성을 확대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문가 분석 및 전망
법조계에서는 ‘테러 살인’ 적용 요건이 까다로운 점을 다시금 확인한 사례라 평가한다. 테러 혐의가 빠지면서 배심원 설득 부담이 완화돼, 검찰은 남은 2급 살인 혐의 입증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피고 측은 연방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피하기 위해, 정신 질환 또는 정당방위와 같은 방어논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뉴욕주의 2급 살인죄는 ‘고의적 살인’을 의미하며, 40년~종신형이 선고될 수 있다. 사형제는 주법상 폐지돼 있으나, 연방 법정에서는 여전히 최고형이 가능하다. 실제 판결은 사건의 계획성·잔혹성·사회적 영향 등을 종합 고려해 결정된다.
기자 해설: 이번 결정은 ‘의도(intent) 증명’의 어려움이 테러리즘 사건 성립을 가로막는 대표적 사례다. 9·11 이후 마련된 각 주의 테러 법규가 실제로는 극단주의 단체 가담 사례 외에는 적용이 드문 배경도 여기에 있다. 검찰이 만일 테러 혐의를 고집했다면 공판이 장기화될 수 있었으나, 현재 구도라면 비교적 신속한 2급 살인 재판이 가능해진다. 다만 연방 차원의 사형 구형은 정치·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을 전망이어서, 배심원 선정부터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또한 의료비 부담 논쟁이 사건의 사회적 맥락으로 부각되면서, 망지오네를 지지하는 일부 여론이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가중처벌이 결정될수록 ‘순교자 프레임’이 작동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피고 측이 의료비 문제를 부각하며 ‘시민 불복종’ 성격을 주장할지 주목된다.
재판부는 12월 1일 예비 심리를 진행하며, 이후 배심원 선정·증거개시(discovery)·사전동의(plea bargain) 절차가 병행될 전망이다. 연방 재판 일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통상적으로 수개월~1년가량 시차가 발생한다.
향후 본안 심리에서 가장 큰 쟁점은 피고가 ‘계획적·의도적’ 살인을 저질렀는지 여부다.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CCTV 영상, 총기 탄도 검사, 그리고 피고 휴대전화 기록 등이 열쇠 증거가 될 전망이다. 반면 변호인단은 피고의 정신 상태 평가 결과와 과도한 의료비로 인한 경제적 절박성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끝으로, 이번 사건은 의료비 부담과 총기 규제, 테러리즘법 적용 한계 등 미국 사회 다층적 문제를 한꺼번에 드러냈다. 최종 판결은 단순한 형사적 책임을 넘어, 사법·정책·여론의 첨예한 교차로에서 미국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가늠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