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식품 대기업 네슬레(Nestlé)가 최고경영자(CEO) 로랑 프레이슈(Laurent Freixe)를 전격 해임했다. 이는 그가 직속 부하 직원과의 사내 연애 사실을 회사 측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네슬레는 1일 성명을 통해 “기업 윤리 강령 위반은 용납할 수 없다”며 해임 결정을 공식화했다.
2025년 9월 1일(현지시간),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네슬레 이사회는 조사 결과 프레이슈가 회사의 ‘비즈니스 행동 강령(Code of Business Conduct)’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 지었다. 조사에는 폴 불케(Paul Bulcke) 회장과 파블로 이슬라(Pablo Isla) 수석 독립이사가 직접 관여했다. 프레이슈는 불과 1년 전 전임 CEO 마크 슈나이더(Mark Schneider) 해임 이후 대표직에 올랐으나, 이번 조치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났다.
후임 CEO로는 24년간 네슬레에서 근무해 온 필리프 나브라틸(Philipp Navratil)이 즉시 임명됐다. 나브라틸은 2001년 내부 감사팀으로 입사한 후 중남미 상업 부문, 온두라스 지사장(2009년), 멕시코 커피·음료 사업 총괄(2013년)을 거쳤다. 2020년부터는 본사 커피 전략 사업부를 이끌었고, 2024년 7월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 Nespresso 대표로 자리를 옮겼으며, 2025년 1월 1일부로 네슬레 경영위원회 이사에 합류했다.
경영 공백 우려와 소비 경기 둔화 속 불확실성
네슬레는 킷캣(KitKat), 네스퀵(Nesquik)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소비 둔화와 무역 관세(trade tariffs)* 리스크가 지속되는 가운데 최고경영자 교체라는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회사 측은 “전략은 바꾸지 않을 것이며, 실적 가속도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일부 시장 참가자들은 단기적 변동성 확대를 우려하고 있다.
*무역 관세는 국가 간 수입품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보호무역주의 강화 시 소비재 기업 실적에 직접적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네슬레의 가치와 거버넌스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번 결정은 불가피했다. 네슬레의 가치와 거버넌스는 우리 회사를 지탱하는 강력한 토대다.” — 폴 불케 회장
불케 회장은 프레이슈의 다년간 기여에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도, 윤리 규정 준수를 위한 무관용 원칙을 재확인했다. 네슬레는 올 6월 불케 회장이 내년 사임할 예정임을 밝힌 바 있어, 회장·CEO 동시 교체라는 중대 과제에 직면했다.
글로벌 소비재 업계 인사 태풍
네슬레뿐 아니라 올해 들어 글로벌 소비재 기업 전반에서 경영진 교체가 잇따르고 있다. 유니레버(Unilever), 디아지오(Diageo), 허쉬(Hershey) 등 경쟁사들도 최고경영자 또는 고위 임원 물갈이를 단행했다. 미국 유통업체 콜스(Kohl’s)는 5월 애슐리 뷰캐넌(Ashley Buchanan) CEO를 임명 100여 일 만에 해임했는데, 그 배경 역시 친분 있는 벤더와의 거래 압박 의혹이었다.
키 인물 프로필
로랑 프레이슈: 1967년생. 네슬레에 1986년 입사, 스페인·라틴아메리카·북미 지역을 돌며 경영 경험을 쌓았다. 2024년 8월 CEO 취임, 재임 기간 1년.
필리프 나브라틸: 1974년생. 2001년 네슬레 입사, 회계·내부 감사에서 커리어 시작. 중남미 지역 영업·마케팅, 멕시코 사업 총괄, 글로벌 커피 전략 사업부장, 네스프레소 CEO를 거쳐 2025년 9월 CEO 임명.
시장 반응 및 전망
아직 주가 변동률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애널리스트들은 네슬레가 빠른 일정으로 CEO를 교체함으로써 조직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특히 커피 사업 전문가인 나브라틸의 발탁은 네스프레소·커피 캡슐 시장 강화 의지를 시사한다. 네슬레는 지난해 이 부문에서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사내 ‘스타 브랜드’로 공고히 자리매김했다.
한편,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이 다국적 기업 전반에 ‘공개 투명성’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리스크 관리’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최근 투자자들은 리더십 리스크를 기업 가치 훼손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물질적·비물질적 리스크 모두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 용어 설명
- Lead Independent Director(수석 독립이사): 이사회 내에서 회장 또는 CEO와 독립적으로 주주 관점을 대변하며 거버넌스 감시를 강화하는 역할.
- Code of Business Conduct(비즈니스 행동 강령): 임직원이 준수해야 할 윤리·법규·이해상충 가이드라인 모음.
- Nespresso: 네슬레가 1986년 출시한 프리미엄 캡슐 커피 브랜드. 고급화 전략으로 높은 마진율을 창출한다.
네슬레는 후속 브리핑을 통해 구체적 전략 수정 여부와 임시 경영 공백 해소 방안을 조만간 공개할 방침이다. 향후 12개월간 나브라틸 신임 CEO가 글로벌 매크로 불확실성 속에서 수익성 개선과 ESG 거버넌스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업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